
교문 가까이에서 야구복을 입은 학생들이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다가가자 학생들이 일제히 “안녕하십니까?” 하고 우렁차게 인사를 한다. 뜻밖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져 “학생들, 나 알아요?” 하고 물으니 “아니요” 하고 씩씩한 대답이 돌아온다.
“학교에 오신 분이면 누구에게나 밝게 인사하는 것이 충암의 전통입니다.”
버스 옆에 서 있던, 감독으로 보이는 남자가 웃으며 말한다. 야구부원들은 동국대 일산캠퍼스로 훈련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충암학원엔 야구연습장이 없다. 연습장도 없는 학교가 ‘야구 명문’이라니….
사람들에게 충암학원을 아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야구”나 “바둑”을 이야기한다. 1969년에 만들어진 충암고 야구부는 고교야구가 인기 절정이던 1970∼80년대 최강의 자리에 있었다. 충암고 출신인 심재학 선수(기아 타이거즈)는 “동대문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이기고 돌아오라, 충암의 용사!’로 시작되는 응원가를 들으며, 최선을 다해 싸웠다”며 “충암고 재학생은 물론 동문들까지 와서 불러주던 응원가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고 회상한다.
야구부 학생들을 뒤로하고 이사장실로 향했다. 충암학원엔 이사장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서무실’이란 작은 팻말이 붙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홍식(李弘植·65) 명예이사장과 그의 아들 이태건 이사장이 방을 나눠쓰고 있었다.
이홍식 명예이사장은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덥지요?”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실내 공기가 덥고 무거운 바깥 공기와는 달리 한결 시원함을 느낀다. 에어컨이 필요없겠다 싶다.
“1965년에 지은 건물이라 그래요. 교실 4개짜리 가건물로 시작해 해마다 500평씩 증축했습니다. 덕분에 건축업자 다 되었지요.”
1965년 부친 私財 털어 설립
▶ 건물을 손수 지으셨나요.
“그런 셈이죠. 제가 대학 4학년 때 해병대에 입대했어요. 제대하고 보니 아버지께서 황무지 6000평을 사서 터를 닦고 막 가건물을 세우셨더군요. 제가 장남이라 아버지 혼자서 많은 일을 감당하시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공사현장에 나와 자재와 장부를 꼼꼼히 비교해보니 문제가 많은 걸 알겠더라고요. 공사감독을 불러 ‘운동장에 있는 모래와 자갈더미 양이 장부에 기록된 것과 다른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공사감독이 ‘내가 감독인데, 당신이 이사장 아들이면 다요?’ 하면서 장부를 내던지고 나가버렸어요. 결국 아버지께 사실을 알리고, 제가 직접 공사를 지휘하기 시작했죠.”
충암학원은 이홍식 명예이사장의 선친 이인관(李仁寬) 전 경기공업전문학교 교장이 1965년 30년 교직 생활을 정리하며 사재(私財)를 털어 설립했다. ‘지식과 학문에 뛰어난 지성인을 양성하기 전에, 먼저 성실·근면하고 책임감이 강한 민주시민의 자질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설립이념. 오는 11월 개교 40주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