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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단’ 바둑 명문, 충암학원 이홍식 명예이사장

“뭐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 이게 아이들을 크게 만들죠”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450단’ 바둑 명문, 충암학원 이홍식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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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설립 당시엔 충암실업고등공민학교였다. 1968년 충암종합고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고, 1973년 인문계인 충암고등학교로 전환했다. 현재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으며, 280여 명의 교직원과 4000여 명의 학생이 충암의 구성원이다.

▶ 설립자 이인관 선생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아버님은 북간도 명천 출생인데, 일본에서 유학하고 함경북도 청진 철도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장단중학교 교장, 경기공업고등학교와 성동고등학교, 경기공업전문학교 교장을 지내셨어요.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과 유럽의 산업시설과 교육계를 시찰하고 돌아오셔서, 선진국 경제성장의 동력이 공업이라고 인식하고, 공업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셨죠. 그래서 경기공업전문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시면서, UNKRA(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국제연합한국재건단)에 찾아가 경기공업전문학교에 실험실을 지을 원조금을 받아내셨어요. 이승만 대통령이 경기공업전문학교 실험실 개관식에 참석해 축하 연설을 1시간도 넘게 하며 기뻐했던 일은 교육계에 널리 알려진 일화죠.”

▶ 명예이사장께서도 교직생활을 하셨다죠?

“학교 건물 증축 공사가 몇 년 동안 계속됐어요. 제가 공사감독을 맡았으니 대학 졸업 후에도 다른 직장을 구할 겨를이 없었죠. 자연스럽게 충암에서 교편을 잡았어요.”



이홍식 명예이사장은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나왔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아버지가 설립자이니 아주 반듯한 교사였을 듯한데 “나는 날라리 교사였다”며 웃는다.

“1969년 호주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1966년부터 3년간 화학을 가르쳤는데, 학교 공사 감독하고 행정적인 일까지 처리하느라 늘 피곤했어요. 1인3역을 하려니…. 우리 학교는 개교 이래로 1년에 2번, 학기말에 학생들에게 백지를 나눠주고 교사에 대해 평가하도록 해요. 불만사항이나 개선되기를 바라는 내용을 자유롭게 적도록 하죠. 제가 교사로 있는 동안 아이들 불만 사항에 제 이름이 가장 많이 나와서 아버지께 꾸중을 들었죠. 하지만 학교 공사일로는 칭찬을 들었어요. 벽돌을 직접 굽고 인부들을 독려해 공사비를 대폭 줄였거든요. 잠꼬대로 공사 얘기를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어요.”

‘날라리 교사’는 나이 서른에 교장이 됐다. 학교를 설립한 지 5년째 되는 해에 부친이 돌연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대학교 부지를 둘러보러 부산에 갔다 오셔서는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과로하신 탓이죠. 1970년, 제 나이 서른 살 때예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어머니를 위로하고 동생들을 돌보며 학교를 운영했어요.”

▶ 젊은 나이에 교장이 되는 것에 교직원들의 반발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제가 장남이니 아버지의 뒤를 잇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장례식을 마치고 전체 교직원 회의를 소집해 제가 중학교 교장을 맡고,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장은 새로 임명해 화합으로 학교를 이끌어갔죠.”

‘450단의 학교’

충암은 바둑 명문으로 이름이 높다. 프로기사 이창호 9단과 유창혁 9단이 충암 출신이며 최근 후지쓰배(杯) 세계바둑대회에서 우승한 박정상 6단도 충암고를 졸업했다. 이밖에 허장회 9단, 정수현 9단, 조대현 9단, 강만우 9단, 양재호 9단, 김승준 9단, 이상훈 9단, 윤성현 9단, 김성룡 9단, 안조영 9단, 조한승 9단, 최철한 9단, 박영훈 9단 등 88명의 충암 출신 프로기사의 단수를 모두 더하면 450단이다(2006년 7월3일 현재).

일본의 기타니 도장은 일본의 바둑 거물 기타니 미노루 선생이 제자를 양성하던 사설 바둑도장이다. 그곳 출신인 이시다 요시오, 도타케 히데오, 가토 마사오, 다케미야 마사키, 고바야시 고이치, 조남철, 조치훈 등의 프로기사가 한때 일본 바둑계를 좌지우지했다. 기타니 출신 프로기사의 단수 합이 500단인데, 1975년 기타니 선생이 사망하면서 도장문을 닫았다. 현재 기타니 출신 기사가 가진 바둑대회 타이틀은 없다. 신예 기사들에게 권좌를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충암학원은 기타니 도장의 기록을 넘어서는 세계 바둑 신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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