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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대특집 | 쇼크! 북핵 이후

장성택 사고와 핵실험 미스터리

극단으로 표출된 김정일-군부 선명성 파워게임?

  •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 lancer@kida.re.kr

장성택 사고와 핵실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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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대 제도의 관계는 정권이나 체제의 큰 변환이 일어날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 한 비교적 안정성을 갖는다. 그러나 개인과 제도의 관계는 개인적 업적이나 카리스마의 부침, 그리고 개인과 제도를 맺어주는 이익의 변화에 따라 공생의 관계가 붕괴될 수 있는 취약성이 상존한다.

이는 현재 북한의 최고 권력엘리트 그룹의 구성을 살펴봐도 분명히 나타난다. 1998년의 헌법 개정 이후 ‘군사부문의 최고 주권기관’으로 부상했고 사실상의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 위원들은 대부분 60대 후반에서 70대의 고령이다. 특히 국방위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군부 인사들의 연령은 70대 이상이다. 반면 ‘혁명 2세대’의 젊은 군부 인사들은 여전히 국방위원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이 당·정의 주요 간부들을 비교적 젊은 인물로 세대교체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군부가 아직 무풍지대로 남은 것은 결국 군부 내의 혁명 2세대 인사들을 김정일이 충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현재 국방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6·25전쟁 세대와는 달리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혁명 2세대의 장교단은 당에 대한 이념적 충성 못지않게 군사적 전문성과 군의 고유 이익을 중요시하는 성향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공산권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흐름이다.

6·25세대가 은퇴하기 전에…

이는 결국 혁명 2세대 장교단에게 있어서는 주체사상이나 공산당에 대한 이념적 동조 못지않게 개인적 입신이나 군부의 이익 역시 충성의 중요한 동기임을 의미한다. 혁명 2세대의 선두주자 오극렬 노동당 작전부장이 1980년대 인민군 총참모장을 맡아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다음의 군 실력자로 떠올랐다 실각한 이유가 군내 정치조직의 활동 약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게 많은 탈북자의 증언이다. 혁명 2세대가 지닌 군 고유이익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 그는 복권됐지만 공식적인 군내 위상은 여전히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념적 충성도가 6·25전쟁 세대에 비해 떨어지는 혁명 2세대 장교들로 노령의 국방위원들을 대체했을 경우 최고권력구도 진입에 성공한 이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바칠까, 아니면 그의 정통성이나 업적이 약화되면 반기를 들까. 김 위원장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 확신이 부족한 상태로 보인다. 2000년대 이후 연형묵, 백세봉 등의 국방위원회 진입이 암시했듯 김 위원장은 노령화한 국방위원들을 급속히 민간 당·정 간부로 대체하는 대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또한 군부의 반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즉, 김정일 위원장은 현재의 6·25세대들이 완전히 은퇴하기 전에 군부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숙청을 통해 권력의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진 듯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칫 자신의 권력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엄청난 기세로 성장한 군부를 다루기 위해서는 전통적 우방국인 중·러에 최고지도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명확히 하는 한편,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것이 내부적 통제 못지않게 긴요할 것이다. ‘혁명가계(家系)’의 적통(嫡統)이자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의 공동창안자이며 신탁(神託)의 해석자인 내부적 입지에 더해 국제적으로도 북한의 유일무이한 통치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어떤 정치세력도 그에게 도전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 위원장의 희망과는 달리 미·일과의 관계는 계속 난항을 겪어왔으며, 오히려 미국은 2005년 이후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윤활유로 ‘궁정경제’의 원천 구실을 했던 해외계좌를 옥죄는 우회적 강압외교를 강화했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김정일의 초조함이 군부 이상의 강경책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대외 대결정책이 결국 재래군비 및 군사부문에 대한 자원 우선순위의 유지·강화로 이어진다는 군부의 계산과 동상이몽의 공생 관계를 형성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7월의 미사일 발사 및 10월의 핵실험 강행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미스터리의 열쇠

문제는 치밀한 준비보다는 심리적 불안감에서 촉발된 ‘자기충족적 예언’의 남발만으로는 대외관계든 대내관계든 안정화를 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김정일의 매제이자 잠재적 후계자 중의 하나로 거명돼온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의 최근 교통사고설을 일상적인 사건으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장성택 부부장은 직접적인 혈족은 아니지만 포괄적 범위에서 김 위원장의 가계에 속하며, 큰형 장성우와 작은형 장성길이 모두 군 고위장성으로 재직하고 있는 등 군부 내에서도 위상이 만만치 않다. 지난 수년에 걸쳐 거듭된 장 부부장의 부침이 김 위원장의 견제심리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김정일 이후를 노리는 군부나 여타 정치세력 역시 장 부부장을 최대의 정적(政敵)으로 견제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그가 생명을 위협할 만한 대형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북한 내의 파워게임이 지극히 과격한 형태로, 그것도 현재진행형으로 시작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핵실험과 장성택 부부장의 사고,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의 연결고리에 북한의 계속되는 폭주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들어 있는 것이다.

신동아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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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 lancer@kid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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