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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전시

마루키 부부의 연작(連作) ‘원폭의 그림’

1945년 여름, 히로시마의 절규

  • 글·고정일 (소설가, 동서문화 발행인)

마루키 부부의 연작(連作) ‘원폭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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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키 부부의 연작(連作) ‘원폭의 그림’
마루키 부부의 연작(連作) ‘원폭의 그림’
이는 ‘원폭의 그림’에 충격을 받은 나에게나 세계 순회전에서 원폭의 그림을 관람한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고요와 침묵. 하늘 높이 날아오른 연기. 먼지구름. 큰 빗방울이 하늘을 적셨다. 암흑 하늘에 일곱 빛깔 무지개가 눈부시게 떴다. 주검. 부상한 사람들 몸엔 구더기가 꼬이고 파리떼가 윙윙거린다. 주검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흐른다. 건빵을 가슴에 안은 채 죽어간 소녀. 유리 파편이 온몸을 찔러 검은 피가 흐른다. 손목도 허벅지도 똑같은 크기로 퉁퉁 부어버렸다.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어머니, 죄송해요” 외치며 혼자만 도망쳤다고 흐느끼는 사람.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부모는 아이를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이 떨어뜨린 원폭으로 미군포로 23명도 함께 죽어갔다. 조선인 피폭자의 무참한 얼굴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마지막까지 남은 시체들은 조선인이었다. 까마귀 무리가 날아들어 조선인 시체의 눈알을 파먹었다. 성당 위 하늘에 원폭이 작렬해 예배를 드리던 신자들과 신부님이 죽어갔다. 죽음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점점 늘어갔다. 나가사키에선 한 순간에 14만명이 스러져갔다.

인간은 세상을 사막으로 만드는 힘, 혹은 사막을 꽃피는 땅으로 만드는 힘을 애써 얻어냈다. 원자(原子) 속에는 사악함이 없다. 다만, 인간의 정신 속에 사악함이 있는 것이다.

신동아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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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정일 (소설가, 동서문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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