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세계 식물연료 大戰! ‘나는’유럽, ‘기는’한국

  • 강양구 프레시안 과학ㆍ환경팀 기자 tyio@pressian.com

    입력2006-11-08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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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젤차, 100년 전에는 콩기름으로 달렸다
    • 석유 떨어지자 식용유로 탱크 움직인 ‘사막의 여우’
    • 고유가 시대 타개할 식물연료 급부상
    • 세계는 지금 유채밭에서 ‘금’ 캐는 중
    • 산자부·정유사·업계 엇박자에 국내 식물연료는 고사(枯死) 직전
    세계 식물연료 大戰! ‘나는’유럽, ‘기는’한국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 중 하나인 북아프리카 전선.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던 독일의 로멜 장군은 큰 고민에 빠졌다. 전선이 확대되면서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 보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거리는 전차를 움직일 연료의 부족. 결국 로멜 장군은 전차에 경유 대신 폐식용유를 넣어 위기 상황을 극복했다. 물론 폐식용유를 넣은 전차는 아무런 문제없이 움직였다.

    로멜 장군의 임기응변은 전차에 사용된 디젤 엔진의 역사를 알고 나면 놀랄 일도 아니다. 독일의 엔지니어 루돌프 디젤이 1900년 프랑스 파리자동차박람회에 내놓은 세계 최초의 디젤 엔진 자동차 ‘오토 컴파니’의 연료는 다름아닌 콩기름이었다. 디젤은 디젤 엔진의 연료로 콩기름과 같은 식물연료를 사용할 것을 평생 주장했다. 이런 디젤의 바람은 그 후 석유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그저 꿈으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디젤의 ‘꿈’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고유가 상황을 돌파할 유력한 방안으로 경유 대신 콩기름(대두유), 유채유, 야자유와 같은 식물성 기름을 디젤 엔진의 연료로 사용하는 방안이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다. 100년 전 디젤이 품은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콩기름으로 달리는 자동차

    9월25일, 서울 서대문 사거리에 눈에 확 띄는 6인승 무쏘 승합차가 나타났다. 화사한 해바라기 사진으로 겉을 치장한 이 차는 겉모습만 특별한 게 아니었다. 이 승합차는 100% 폐식용유에서 정제한 콩기름만으로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이 차가 달리면서 내뿜는 배기가스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이 차의 주인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순수 식물연료(pure ve-getable oil)’를 생산하는 네오텍의 이근태 대표다.



    디젤 엔진 자동차를 경유 대신 콩기름으로 가동할 수 있는 것은 경유와 콩기름(식물성 기름)의 화학구조가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식물성 기름을 디젤 엔진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점도를 낮춰야 한다. 연료의 점도가 높으면 디젤 엔진에 연료를 분사할 때 필터가 막히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바이오디젤유’도 화학 처리를 통해 식물성 기름의 점도를 낮춘 것이다.

    바이오디젤유는 콩기름, 유채유, 야자유 등을 화학처리해 글리세린을 분리한 것이다. 식물성 기름에 알코올(메탄올)과 잿물(수산화나트륨)을 혼합하면 바이오디젤유와 글리세린이 분리된다. 이렇게 글리세린이 분리된 바이오디젤유(메틸에스테르)는 분자가 가늘어져 점도가 순수 식물성 기름보다 크게 낮아진다. 이렇게 점도가 낮아진 바이오디젤유는 경유 대신 디젤 엔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유럽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실용화한 바이오디젤유는 대개 경유와 섞어서 쓴다. 이 때문에 바이오디젤유와 경유의 혼합 비율에 따라 BD100(바이오디젤유 100%), BD50(바이오디젤유 50% + 경유 50%), BD20(바이오디젤유 20% + 경유 80%), BD5(바이오디젤유 5% 이하 + 경유 95% 이상)으로 나뉜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7월부터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경유에 바이오디젤유를 5% 이하(실제는 0.5%) ‘첨가’하기로 결정했다.

    이근태 대표의 무쏘 승합차에 넣은 식물성 기름은 이런 바이오디젤유와도 다르다. 특별한 화학처리 과정 없이 폐식용유에서 정제한 콩기름만을 연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 무쏘의 내부를 살피면 특별한 장치가 있다. 콩기름을 디젤 기관에 직접 분사하는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가 그것이다. 이 장치는 콩기름에 높은 열을 가해 점도를 낮게 한 상태에서 디젤 엔진에 분사한다.

    세계 식물연료 大戰! ‘나는’유럽, ‘기는’한국

    식물연료 도입을 주장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는 환경단체 회원들.

    유럽에서는 바이오디젤유, 순수 식물연료를 통틀어 ‘수송용 식물연료’로 규정하고 그 사용범위를 확대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3년 유럽연합(EU)은 2010년까지 수송 연료의 5.75%를 식물연료로 대체하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에는 전체 수송 연료의 25%를 식물연료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EU의 수송 연료에서 식물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0.97% 정도다.

    발등에 떨어진 불, ‘脫석유’

    유럽 각국이 식물연료 확대에 열을 올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수송 연료로서 석유의 지위가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고유가 상황이 계속되면서 ‘석유 생산 정점(Oil Peak)’의 도래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가까운 시일 안에 석유 생산 정점이 찾아온다면 이후에는 석유 생산량이 계속 줄어들어 유가는 급등할 수밖에 없다. 전세계적으로 석유 고갈 사태에 대비한 ‘석유로부터의 해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석유 고갈 사태가 먼 훗날의 일이라고 낙관하는 사람조차 인정하는 고민이 또 있다. 이산화탄소를 위시한 온실가스 문제다. 세계는 기상이변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기후변화협약을 맺고 있다. 2005년 2월16일 공식 발효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는 2008~2012년에 유럽 각국을 포함한 선진국이 1990년을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균 5.2% 줄일 것을 강제하고 있다.

    EU는 201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억2000만t 줄여 감축 목표량의 95%를 달성할 계획을 세워놓고 에너지 및 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왔다. 식물연료에 대한 유럽 각국의 관심은 이런 기후변화협약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수송연료가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염두에 두면 자동차의 배기구에서 배출되는 각종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식물연료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는 얼마나 될까. BD100을 디젤 엔진 자동차에 넣을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경유에 비해 78% 낮아진다. BD20을 사용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6% 낮아진다. 또한 순수 식물연료를 디젤 엔진 자동차에 넣을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경유에 비해 80%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식물연료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탁월한 것은 식물연료가 콩, 유채, 야자수처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식물에서 직접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 식물이 자라면서 대기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디젤 기관이 연소해 다시 배출하는 방식이므로 이론적으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거의 없다. 실제로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국제기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유채에서 바이오디젤유를 얻을 경우 1t당 이산화탄소 2.2t이 경감된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 때문에 식물연료는 석유 시대 이후, 또 기후변화협약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식물연료는 ‘지금 당장, 어떤 기술 변환도 없이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석유 대체수단이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가 보급되기까지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식물연료의 강점은 더 돋보인다.

    대기 질 개선하고, 농업도 살리고

    한국의 경우에는 유럽과는 다른 맥락에서 식물연료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9월2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앙헬 구리아 사무총장은 한국의 환경정책 성과를 평가한 결과를 공개하면서 “한국 도시의 대기오염 상태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나쁜 수준으로 평가됐다”고 경고했다.

    OECD의 경고를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대기오염 수준은 심각하다. 대기오염 물질 중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미세먼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2002년 OECD 오염도 순위에서 서울시는 OECD 평균(31㎍/㎥)을 두 배나 초과하며 ‘당당히’ 1위(71㎍/㎥)를 차지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평균치보다 30㎍/㎥ 이상 증가할 경우 평균 수명이 3년 단축될 것이라는 예방의학계의 지적을 염두에 두면 충격적인 수준이다.

    세계 식물연료 大戰! ‘나는’유럽, ‘기는’한국

    식물연료로 움직이는 독일의 청소차.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식물연료를 많이 쓰는 나라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 성과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대도시 대기오염의 70%를 차지하는 자동차 배기가스가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2005년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쏟아 부은 돈만 1895억원에 달하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대기의 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취임 일성이 대기오염을 잡겠다는 것이었을까.

    다수의 환경 전문가는 “식물연료 도입이 이런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강력한 처방”이라고 입을 모은다. 식물연료를 디젤 엔진 자동차에 주유할 경우 미세먼지, 일산화탄소, 아황산가스 등의 대기오염 유발 물질이 50~70% 저감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세먼지의 경우 순수 식물연료 41.7%, BD100 55.4%, BD20 18%씩 줄어든다고 한다.

    연료가 불완전 연소했을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도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일산화탄소의 경우 순수 식물연료를 쓸 경우 42%, BD100을 쓰면 43.2%, BD20을 쓰면 12.6% 각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연료에는 황 성분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아황산가스와 같은 대기오염 물질은 아예 배출되지 않는다. 벤젠과 같은 암을 유발하는 독성물질도 거의 90% 가까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연료의 또 다른 장점은 ‘농업 살리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식물연료의 원료가 되는 콩, 유채 재배가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브라질,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식물연료 작물 재배가 농업 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콩, 유채, 야자수, 피마자 등은 노는 농지, 건조지 등을 활용해 쉽게 재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채의 경우에는 유채씨 기름을 짠 후 남은 찌꺼기는 양질의 가축 사료로 활용될 수 있어 일본에서는 지방정부, 유채 재배농가, 식물연료 생산업체, 비료 생산업체, 소비자가 연결된 ‘유채 네트워크’가 200여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2007년 예산안에 유채 재배를 지원하기 위해 18억원을 배정한 것도 늦게나마 이런 국제적 흐름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저만큼 앞서가는 유럽

    ‘일석다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식물연료의 가능성에 일찌감치 주목한 유럽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985년 세계 최초로 오스트리아에서 상업용 식물연료를 생산한 이후 지난 20여 년간 유럽에서는 식물연료 생산능력을 계속 키워왔다. 전세계에서 식물연료 생산능력이 가장 뛰어난 독일은 연간 268만1000t을 생산할 수 있다. 그 뒤를 이탈리아(85만7000t), 프랑스(77만5000t), 영국(24만t), 오스트리아(22만4000t) 등이 따르고 있다.

    독일에서는 전국 1900곳의 주유소에서 식물연료를 판매하고 있다. 이런 주유소에서 개인이 소유한 디젤 엔진 자동차로 직접 주유되는 양만 전체의 14%에 달한다. 이밖에 버스, 트럭 등을 운행하는 수송업계의 대량 소비도 두드러진다. 독일의 수송업계가 소비하는 양은 전체의 53%에 해당한다. 나머지 33%는 BD50, BD20 등 경유와 혼합되는 데 쓰인다.

    유럽 각국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도시의 버스, 대형 트럭, 청소차 등에 식물연료 사용을 의무화한 점이다. 배기가스 배출량이 많은 이들 디젤 엔진 자동차 연료로 식물연료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대기 질 개선을 도모한 것이다. 독일에서 버스는 전부 BD100을 연료로 쓴다. 이탈리아도 버스, 대형 트럭은 BD100을 연료로 쓴다. 프랑스에서도 버스, 청소차와 같은 관용 차량, 대형 트럭에서는 BD30을 연료로 사용한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시(市)는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본보기다. 이 도시는 1994년 단 2대의 버스를 시작으로 10년 만에 시내 전 버스의 연료를 식물연료로 교체했다. 이렇게 버스에 쓰인 연료는 대개 맥도널드 매장, 식당, 마을 곳곳에 설치된 폐식용유 수거함을 통해 얻은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선 이렇게 식물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12만5000개의 폐식용유 수거함을 설치했다.

    100% 식물연료 사용 가능한

    국내 디젤 자동차의 예(독일 기준)
    제조사 모델 연식
    기아갤로퍼 2001
    H100 2000
    스타렉스 2001
    갤로퍼 1998
    갤로퍼 1999
    갤로퍼 2000
    프레지오 2001
    레토나 2.01 TD 2000
    스포티지 2001
    베스타 1998
    쌍용 무쏘 FJ 1996
    코란도 2004
    무쏘 1996
    무쏘 2000
    무쏘 2003
    코란도 2000


    이렇게 순수 식물연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그간 사용이 확대돼온 바이오디젤유의 일부 단점이 지적된 데서 비롯됐다. 식물성 기름을 화학 처리해 점도를 낮추는 바이오디젤유의 경우 최종 생산된 연료 양의 10배 이상의 물이 세척제로 사용된다. 부산물로 나오는 잿물(수산화나트륨)과 글리세린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물이 수질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돼왔다.

    바이오디젤유를 연료로 사용할 경우 대부분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이 줄어들지만 질소산화물은 미미하게 늘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2005년에는 EU의 새로운 ‘배기가스 배출 기준(Euro Ⅳ)’의 질소산화물 배출량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BD100을 디젤 엔진 승용차에 사용되는 것이 제한되기도 했다. 순수 식물연료는 단순한 정제 과정만 거치기 때문에 오염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또 경유와 비교할 때 질소산화물도 18.9% 줄어든다.

    식물연료가 위험하다고?

    식물연료라고 해서 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식물연료는 어는 점이 경유(겨울철 기준 영하 17.5℃)보다 높아 겨울철에 젤처럼 굳으면서 필터를 막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식물연료의 문제점으로 겨울철 시동 꺼짐 현상이 지목되는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즉, 기온이 높은 지역에서는 식물연료를 사용하는 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국처럼 동절기가 4개월 이상 지속되는 곳에서는 사용에 위험이 따른다는 것.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20여 년 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품질개선 노력을 기울여왔다. EU에서 바이오디젤유의 표준(EN14214)을 정할 때 ‘필터 막힘 점(Cold Filter Plugging Point·CFPP)’을 영하 20℃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이 기준도 미심쩍어 별도로 바이오디젤유의 품질을 관리하는 협회(AGQM)를 만들고 EU의 표준보다 더 엄격한 자체 기준을 세워 품질을 관리한다.

    최근 산자부가 2002년 5월부터 4년간 BD20 보급 시범사업을 하고도 BD20의 유통을 오히려 축소한 것도 국내에서 유통되는 바이오디젤유의 품질이 유럽처럼 철저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지적은 바이오디젤유 생산업계에서도 일부 인정한다. 물론 여기에는 경유를 대체할 식물연료가 시장에 대거 진입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기존 정유업계의 반발도 한몫했다.

    그렇다면 좀더 안정적으로 식물연료를 공급할 방법은 없을까. 이미 해결책은 마련돼 있다. 앞에서 순수 식물연료를 분사할 때 쓰인다는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를 설치하면 바이오디젤유든 순수 식물연료든 무엇을 쓰든지 간에 필터가 막히는 현상이 근원적으로 예방된다. 일단 식물연료가 이 장치를 거치면서 열을 받아 점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디젤 엔진에 분사되는 과정에서 필터가 막히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실제 독일에서 BD100을 사용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는 네오텍에서 공급하는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와 대동소이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 이근태 대표는 “이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를 장착하면 순수 식물연료뿐만 아니라 바이오디젤유를 넣고 운행할 때도 필터가 막히는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며 “지난 겨울에도 식물연료를 넣고 무쏘를 운행했지만 필터가 막히는 현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장치의 가격은 6인승 승합차의 경우 150만원 정도. 다시 말해 150만원을 들이면 경유 대신 콩기름을 넣고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과 대전을왕복(324㎞)하는 데는 콩기름 10ℓ 정도가 사용된다.

    물론 콩기름뿐만 아니라 유채유, 야자유, 심지어 올리브유도 사용 가능하다. 이 대표는 “가격이 비싸지만 않다면 디젤 엔진 자동차에 가장 적합한 식물연료는 집에서 먹는 올리브유”라고 했다. 식물연료로 적합한 유채는 올레인산 함유량이 높도록 개량한 것인데 올리브유는 당초 이 올레인산 함유량이 높다.

    식물연료 보급을 막는 또 다른 장애물은 바로 가격이다. 그동안 식물연료의 원료가 되는 식물성 기름은 경유와 가격 경쟁이 되지 않았다. 생산단가만 놓고 보면 식물연료가 경유보다 30~50% 비싸다. 유럽 각국은 이런 사정을 감안해 세금 감면을 통해 식물연료를 육성해왔다. 국내에서도 식물연료에는 과세되지 않기 때문에 세후(稅後) 가격으로 비교하면 경유보다 10~20% 싸게 공급받을 수 있다.

    고유가 시대, 힘 받는 식물연료

    그런데 2005년을 기점으로 이런 상황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야자유의 한 종류인 팜유와 콩기름(대두유)의 국제 거래 가격이 처음으로 경유보다 싸진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유채유는 경유보다 여전히 비싸지만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콩, 야자수 재배량을 늘릴 경우 식물연료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식물연료 원료의 공급 안정성도 큰 문제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전 이남에서만 겨울철에 유채를 재배할 수 있다. 벼를 수확한 후 유채를 심을 수 있는 논 30만ha에서 생산할 수 있는 유채유는 38만t으로 국내 수송 연료로 쓰이는 경유 양의 3.2%에 불과하다. 수송연료의 20%를 식물연료로 대체하려면 국내의 논, 밭 전체 면적에 해당하는 182만ha로도 부족하다. 결국 식물연료의 원료 일부는 외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유럽 각국은 식물연료 원료 국내 재배를 계획적으로 장려하는 동시에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식물연료 원료를 확보할 방법을 수년 전부터 모색하고 있다.

    20세기에 유전을 찾아 헤매고 다녔듯, 21세기에 들어서는 식물연료의 원료가 될 수 있는 식물을 찾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근래 유럽 각국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나선 이유 중 하나도 가장 저렴한 야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열대지역에 지천으로 널린 ‘자트로파(Jatropha)’가 최상의 식물연료 원료로 부상했다. 자트로파는 독성이 있어 식물연료의 원료 외에는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없는 식물. 콩기름, 유채유, 야자유 등이 식용유 시장과의 경쟁 때문에 연료시장에서 가격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을 염두에 두면 자트로파의 장점은 크다.

    자트로파는 저항력이 강해 병충해를 입지 않으며 토양의 질이나 물 공급에 관계없이 열대지방 어디서나 손쉽게 재배할 수 있다.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에서도 생태계 파괴나 지역사회에 큰 부담 없이 재배가 가능하고, 같은 면적에서 유채보다 3배나 많은 양의 기름을 얻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업계에서는 유가가 1배럴당 6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자트로파가 유력한 식물연료의 원료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자트로파 원료를 정제해 순수 식물연료로 사용할 경우 식물연료의 경쟁력은 더 높아질 수 있다. 현재 순수 식물연료는 바이오디젤유와 비교했을 때 생산단가가 1ℓ당 0.2유로(약 240원) 정도 싸다. 이근태 대표는 “자트로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환경세만 감면받더라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고유가 시대가 ‘식물연료의 전성기’를 열어줄 것이라는 이야기다.

    식물연료, 피지도 못하고 枯死?

    그러나 국내 식물연료의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정부는 식물연료의 잠재력은 인정하면서도 보급 확대를 주저하고 있다. 최근 4년간 시범 보급 사업을 진행해놓고서도 품질, 공급 안정성을 이유로 바이오디젤유(BD20, BD100)의 유통을 제한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순수 식물연료는 아예 법적으로 ‘신재생 에너지’로 인정받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 식물성 기름을 판매하면 ‘유사 경유’로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업계의 대응도 답답한 형편이다. 대형 정유업체는 경유시장을 지키기 위해 식물연료 생산업체를 견제하는 한편, 일부 중소기업이 수년간 일궈놓은 식물연료시장까지 집어삼킬 궁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물연료 생산업체들도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대형 정유업체와의 제휴 여부를 놓고 대립하거나 순수 식물연료 생산업체를 견제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국내 식물연료 개발 현황을 지켜본 한 연구자는 “대형 정유업체의 견제가 심하고 산자부가 소극적일수록 업계가 합심해야 한다”며 “독일처럼 업계가 주도해 엄격한 품질 표준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환경연료 활성화 장치를 달아 안전사고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수송연료 혁명’이 한국에서 실현될 수도 있는데 현실은 전혀 딴판”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디젤 엔진을 처음 발명한 루돌프 디젤은 1913년 9월29일 독일에서 영국으로 향하던 여객기에서 실종됐다. 디젤의 시체는 2주 후 핀란드의 한 작은 어선에 의해 발견됐다. 평소 돈벌이에 집착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끔 한 이 위대한 발명가의 사인(死因)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디젤의 비극적인 죽음처럼 이 땅에서 식물연료는 피지도 못하고 고사할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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