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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 전 국무총리 &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겸손하고 진지한 ‘대화의 기술’이 정치인 성장 자양분”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강영훈 전 국무총리 &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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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에서 재회

1978년 무렵 외무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은 박사급 연구원을 많이 확보해 질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릴 목적으로 분주했다. 당시 외무부에선 수시로 연구원에 특정 사안에 대한 분석을 요청했는데, 그럴 때면 박사급 연구원들이 20∼30쪽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해 외무부 담당자들은 물론 외교안보연구원장이던 강 전 총리까지 난감하게 했다. 그러던 중 강 전 총리 눈에 김 대표의 기사가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김 대표는 원장 비서로 발령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연구원들이 만든 보고서를 2∼3쪽 분량으로 간추려 강 전 총리와 외무부 담당자들에게 보고하는 일을 주로 했다.

강 전 총리와 김 대표는 스물다섯 살의 나이 차가 난다. 아버지와 아들 같은 나이 차다 보니 강 전 총리는 부하직원인 김 대표를 아들처럼 대했다. 집으로 초대해 대화하기를 즐겼다. “미스터 김, 내일 저녁에 내가 미국에서 도움을 받은 분들이 오시는데, 시간 나면 우리 집으로 오지” “미스터 김, 오늘 저녁에 뭐해? 별일 없으면 우리 집에 같이 가지” 하며 김 대표를 격의 없이 대했다.

강 전 총리는 5·16군사정변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반혁명분자로 몰려 투옥된 바 있다. 그 후 예편한 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에 오래 머물렀다. 만학으로 사우스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미국에 머무는 동안 감시의 눈이 두려워 친척들과도 연락을 못하고 지냈다. 김 대표는 “오랜 인고의 세월을 보낸 강 총리가 겉으로는 무척 겸손하고 소탈하며 속은 한없이 넓고 깊다”고 말한다.

1981년 강 전 총리가 영국 주재 대사로 임명되면서, 김 대표는 강 전 총리와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강 전 총리가 외국에 머무는 동안 김 대표의 신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1982년 대통령비서실로 자리를 옮긴 것. 그리고 4년 뒤인 1986년부터는 국무총리정무비서관으로 근무했다.



1987년 어느 날, 총리실에 느닷없이 영국풍의 트렌치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강 전 총리가 들어섰다. 주 영국대사와 주 로마교황청대사를 역임하고 귀국한 강 전 총리는 그렇게 종종 김 대표를 만나기 위해 총리실을 방문했다고 한다.

“일하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강 총리께서 저를 향해 손짓, 몸짓을 하고 계신 거예요. 오시기 10분 전에라도 연락을 주시면 마중을 나가겠다고 몇 번이나 당부를 드려도 매번 그렇게 나타나곤 하셨어요. 대사까지 지내신 분이 그렇게 소탈하셨죠.”

인연이란 게 참 묘하다. 1989년 강 전 총리가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국무총리실 정무비서관으로 있던 김 대표와 공식적으로 다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재미난 인연을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할 겨를도 없었다. 당시 13대 국회가 처음으로 여소야대(與小野大)이던 때라 국무총리가 국회에 불려 나가면 야 3당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곤 했다.

그런데 이듬해인 1990년 1월에 3당이 통합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이 두 번째로 많은 원내 의석을 가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3당인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이라는 거대 여당을 만든 것. 이로써 최대 야당이던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을 고립시키고, 국회를 여대야소로 전환했다.

‘세 가지 조건’에 꿈을 접다

이런 정치 상황이 현실 정치 참여를 꿈꿔온 김형오 대표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마침 부산 영도에 민자당 출신 국회의원이 없었다. 3당 통합 때 통일민주당 소속 부산 국회의원 대부분이 민자당에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남중·고등학교를 다닌 김 대표에게 영도는 고향이나 진배없었다.

김 대표는 2년 후에 있을 국회의원선거 때 영도에서 민자당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 뒤로는 토요일 근무가 끝나자마자 부산으로 내려가 월요일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계속했다. 정치 신인이 부산에서 입지를 다지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강 전 총리와 충분히 의견을 교환한 뒤의 일이다.

그 와중에 김 대표는 당시 최창윤 정무수석비서관으로부터 다시 청와대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최 수석은 1982년 김 대표가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할 때 직장상사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김 대표는 이미 고인이 된 최 수석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더듬었다.

“최 박사와는 아주 중요한 일을 참 재미있게 했어요. 대통령 단임제가 실현되도록 일을 진행시켰고, ‘학원안정법’을 정무비서관이던 최 박사와 비서인 제가 무산시켰지요. 그땐 정말 비장했어요. 사표를 써서 가슴에 품고 다녔을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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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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