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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놀란 ‘대단한 실험’

성장과 장수, 번식과 노화의 희비 쌍곡선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성장과 장수, 번식과 노화의 희비 쌍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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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장수, 번식과 노화의 희비 쌍곡선

2005년 당시 부부 나이가 205세여서 기네스북에 오른 미국인 허버트 브라운씨와 매그너 여사.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민물에 사는 히드라는 늙지 않는다. 단세포 생물로 가면 아예 노화와 수명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기회만 생기면 둘로 나뉘어 한없이 증식하는 세균은 영원히 산다고도 할 수 있다. 다세포 생물의 몸에서도 늙지 않는 세포들이 있다. 생식세포가 그렇고, 줄기세포가 그렇다. 그런 세포들은 장기간 열심히 일할수록 손상이 축적되어 노화가 일어난다는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다.

물론 그 이론들이 아예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그 이론들은 자유 라디칼, 그중에서도 이른바 활성산소라고 하는 유해 물질이 DNA와 단백질을 비롯한 세포 성분들을 손상시켜서 동맥 경화, 관절염, 암 등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퇴행성 질환에 관여한다고 본다. 많은 연구 결과는 그렇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활성산소는 세포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킨다. 미토콘드리아 손상은 당뇨병,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호흡을 깊게 하여 호흡 수를 줄이면 장수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호흡을 적게 하면 산소 공급량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미토콘드리아의 활동도 줄어들고 활성산소의 생산량도 줄어들며 신진대사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단편적이다. 생식세포처럼 활성산소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도 있다. 그것이 바로 노화 이론이 수백 가지나 되는 이유이다. 광고에 자주 등장하여 널리 알려진 엘리 메치니코프는 장내 세균이 유해 물질을 생산해 노화를 일으킨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산균을 열심히 먹어서 장내 세균을 억제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을까. 그 이론은 지금도 광고를 통해 계속 설파되면서 소비자에게 혹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있다.

노화는 적어도 다세포 생물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 모든 현상을 일관적으로 설명할 일반 이론이 없을까.



마이클 로즈는 진화 관점에서 보면 해답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추론했다. 그는 초파리가 번식 연령이 되어 알을 낳고 나면 그 초파리 개체가 받는 자연선택의 강도는 약해진다고 보았다. 이미 후손이 생겼으니 알을 낳은 개체가 어찌 되든 자연은 관심을 덜 보인다는 의미다.

번식 뒤 노화?

자연선택은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주시하면서 해로운 돌연변이를 지닌 개체들을 솎아낸다. 하지만 개체가 이미 번식을 끝냈다면 감시가 좀 느슨해질 수도 있다. 양육을 하거나 돕는 개체가 아니라면 말이다. 따라서 그 개체는 해로운 돌연변이가 쌓이고 몸에 손상이 축적돼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번식이 일어난 뒤에 노화가 진행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벨상을 받은 피터 메더워 같은 학자는 그 견해를 지지했다. 아니면 해로운 유전자들이 발현되지 않고 있다가 말년에 발현되는 것일 수도 있다. 조지 윌리엄스 같은 학자가 주장한 이 견해는 한 유전자가 여러 방면으로 복합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떤 유전자가 번식이 이뤄질 때까지는 유익한 영향을 끼치지만 번식이 끝난 뒤에는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면 자연선택은 그 유전자를 선호할 것이다. 가령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성적 성숙을 자극하지만, 나중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 따라서 에스트로겐 관련 유전자들은 윌리엄스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일 수 있다.

로즈는 메더워의 이론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실험이 윌리엄스의 이론을 지지한다고 보았다. 전자가 옳다면 초파리의 번식 시기를 늦췄을 때 해로운 돌연변이들의 영향이 심하게 나타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번식 시기를 늦추자 오래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장수 유전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즉 자연선택이 심하게 작용하는 시기를 늦추자 초파리의 수명이 늘어난 것이다.

수명과 번식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 1950년대에 메이너드 스미스는 초파리의 암수를 격리시키거나 불임으로 만들면서 번식과 수명이 상관관계가 있는지 조사했다. 그러자 번식을 적게 하거나 불임인 초파리가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은 어떨까. 최근에 미국에서 결혼한 사람에 비해 독신으로 사는 사람의 수명이 더 짧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독신자는 식생활이 불규칙하고 정신적으로 위안도 덜 받고 해서 더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초파리와 정반대인 셈이다. 그래도 사극을 보면 젊은 환관보다 늙은 환관이 등장하는 쪽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거세(去勢)나 금욕(禁慾)이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오랜 속설이 아니던가.

스티븐 어스태드는 마이클 로즈의 고전적인 연구에 자극을 받아서 노화의 진화 이론이 포유류에도 들어맞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자연선택이 극심하지 않은 곳에 산다면 동물도 좀 느긋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지 않을까. 동물원에서 보살핌을 받는 동물들이 자연 상태의 동물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경우가 많듯이, 같은 동물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곳에 살면 더 오래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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