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옹의 백수연은 여러 언론매체에 보도됐다. 이옹이 대학자 퇴계 선생의 종손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뿐더러 99세의 나이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건강 또한 화젯거리였다. 누구나 ‘참살이’를 꿈꾸는 시대에 귀 밝고 기억 또렷한 백수 노인의 정정함은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의 ‘백세 건강 비결’의 중심엔 ‘활인심방(活人心方)’이 있다. 퇴계 선생의 건강법으로 선생이 직접 기술해 남긴 활인심방은 500년 가까이 자손들에게 전해지며 집안의 건강 지침이 돼왔다.
이옹은 몇 해 전에 받은 전립선 수술과 폐렴 치료 등으로 다소 몸이 약해져 무리하게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으나 여전히 활인심방이 전하는 건강체조법과 마음 다스리기(治心)를 실천하고 있고, 그의 동생인 이동한(73·전 충북대 교수)씨는 시민들에게 활인심방 수련법을 알리고 있다.
도산서원의 특별한 강연
매년 봄과 가을, 매달 한 차례씩 안동 도산서원에서는 아주 특별한 강의가 펼쳐진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부설 ‘도산서원 거경대학(居敬大學)’이 그것이다. 거경(居敬)이라는 이름은 주자학에서 말하는 수양의 두 가지 방법, 즉 거경과 궁리(窮理)에서 따온 것. 궁리는 외적 수양법이고 거경은 내적 수양법으로 몸과 마음을 삼가 바르게 가짐을 뜻한다. 둘 다 퇴계 선생이 매우 중요하게 여긴 학문의 기본이자 수양법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이 강의는 올해도 4~6월, 9~11월에 매달 둘째 주 토요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열리며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10명가량 되는 교육생을 가르치는 일은 이옹의 동생 이동한씨가 맡고 있다. 지금까지 100여 명이 활인심방에 나와 심신을 수련하고 퇴계의 일상적 언행을 체험하면서 인성을 가다듬고 돌아갔다.
지난 7월 1일에는 한국체육대 무용학과 학생 15명이 도산서원 전교당에서 2시간에 걸쳐 활인심방 수련법을 공개적으로 실연하는 행사가 열려 눈길을 모았다. 참가 학생들은 마음을 고요히 해 심신을 안정시키는 ‘정좌거경(靜坐居敬)’, 음식에 대한 예절과 올바른 식사법을 익히는 ‘묵언정식(默言淨食)’, 자연 속에서 경전을 읽으며 기억력을 높이는 ‘소요유(逍遙游)’, 올바른 자세로 걸으며 정신을 수양하는 ‘보리안상(步履安詳)’ 등 활인심방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 했는데, 보는 이들도 사뭇 마음이 경건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동한씨는 “어린 시절에 활인심방에 나오는 대로 건강체조를 하시던 조부와 선친을 곧잘 따라 하곤 했다”고 한다. 조부가 아침 일찍 일어나 앉은 자세로 팔과 어깨, 손 등을 움직이면서 몸을 풀곤 했는데 온 가족이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됐다는 것. 그러나 젊은 시절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이씨가 조상이 남긴 건강서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2000년 충북대에서 정년퇴임한 직후다. 거의 잊고 살았던 ‘활인심방’을 다시 손에 쥐고 하나하나 뜻풀이를 해가며 곱씹었고, 최근에는 직접 해설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활인심방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진 못하며 계속해서 뜻을 새기고 있다”고 했다.
활인심방은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책이 아니다. 중국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의 열여섯째 아들인 주권(朱權)이 지은 것으로 원래 제목은 ‘활인심(活人心)’. 주권은 ‘현주 도인(玄洲 道人)’이라 불릴 만큼 도가(道家)에 조예가 깊었다고 전해진다. 퇴계 선생은 ‘활인심’을 입수해 번역하고 거기에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덧붙여 건강과 장수의 비법이 담긴 활인심방으로 재탄생시켰다.
무형의 약재 중화탕(中和湯)
이처럼 퇴계 선생이 직접 옮겨 새로 만든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활인심(活人心)을 소개하는 책이어서 사료적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은 서문을 시작으로 중화탕(中和湯), 화기환(和氣丸), 양생지법(養生之法), 치심(治心), 도인법(道引法), 거병연수육자결(去病延壽六字訣), 양오장법(養五臟法), 보양정신(保養精神), 보양음식(保養飮食)으로 구성돼 있다.
이 글에 쓰인 활인심방의 내용은 김호언(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씨가 번역한 ‘현대인의 건강과 활인신방’을 참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