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가 아들을 보살피던 손이 이제는 아들에게서 어머니에게로 이어진다. 그 자체로 아름답고 존엄하다.
내가 전씨를 처음 만난 건 한 달 전쯤인가, 그가 잔치를 열면서 사람들을 초대했을 때다. 마침 내가 잘 아는 이가 거기 참여하려고 가는 길인데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전씨가 여는 잔치는 어머니를 위한 잔치라는데 환갑이니 칠순이니 하는 그런 잔치가 아니란다. 잔치 이름이 ‘어머니의 건강과 존엄을 위한 기도잔치’란다. 잔치라면 즐겁게 어울리고 맛난 음식을 나누는 자리일 텐데 ‘존엄’이라니…. 생각할 거리가 많을 듯해 길을 나섰다.
전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곳은 우리 집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 전씨 집 들머리에는 승용차가 줄줄이 서 있고, 집으로 들어서니 마루와 마당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한창 식이 진행 중이어서 전씨와는 우선 목례만 주고받았다.
노모의 존엄을 위한 잔치
천천히 분위기부터 살폈다. 20여 명의 사람 가운데 아는 사람도 몇 보인다. 아이도 여럿 있고, 전씨 어머니는 방안에서 쉬고 계셨다. 잔치 의식 가운데 대금 연주도 있고, 명상 춤도 춘다. 마당 한 귀퉁이에는 어머니 사진도 전시해놓았다. 조금씩 분위기에 익숙해지자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식이 끝나고 마당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었다. 잔칫집이라지만 음식이 풍성하지는 않았다. 떡메로 쳐서 만든 인절미와 김치, 그리고 과일과 술 몇 병이 전부다. 사람들은 음식보다 이야기를 나누고 영적인 기운을 주고받고자 한다.
이날은 전씨와 얼굴 익히는 정도로 하고 헤어졌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곤 우리 마을 이웃들과 어울렸다.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부모 모시는 문제가 생각보다 절실한 걸 알았다. 연세가 칠순 팔순이 된 부모님을 모시는 이웃이 적지 않다. 나 또한 어머니는 칠순,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팔순이 넘는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넘어간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안고 있는 고민은 곧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 전씨가 보여주는 삶의 해법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듯하다.
이후 추석 무렵에 그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장계가 아닌 완주 소양에서. 전씨의 집은 두 곳에 있다. 본디 귀농해 완주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올봄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장계에 따로 집을 마련했다. 소양에는 아내와 자식들이 머무른다. 추석을 지낸다고 식구가 모두 소양 집에 모인 거다.
전씨는 시골에 내려온 뒤 8년 만에 전북 완주 소양에 24평 집을 손수 지었다. 이 집에 와서 직접 보니 아주 잘 지은 집이다. 흙과 나무로 지은 집에 지붕은 흙 기와를 올릴 만큼 돈도 들였다. 담장 또한 튼튼하면서도 예쁘게 쌓았다. 흙과 돌과 나무토막으로 멋을 내고, 빗물에 허물어지지 않게 담장 지붕도 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