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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9

상하이 국제 삼각연애 살인사건

폭염의 새벽 3시, 공동조계 거리를 울린 세 발의 총성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상하이 국제 삼각연애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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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손에 끌려 홍등가로

상하이 국제 삼각연애 살인사건

오늘날의 블라디보스토크 항.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블라디보스토크는 도망처이자 은신처요, 기회의 땅이었다.

이상산은 1909년 평안북도 길주군 덕산면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하나뿐인 여동생 이상순은 아홉 살 연하였다. 아버지는 품을 팔고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해서 근근이 연명했다. 이상산 자매는 집안이 가난한 탓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친구도 사귀지 못한 채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에서 서로 의지하며 외롭게 자라났다.

이상산이 열여덟 살 되던 1926년 봄, 그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몰락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농사짓고 고기 잡고 장사하면서 사는 연해주 주민들의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봄은 길주의 봄보다 명랑하고 활기찼다. 툭 터진 도로 위에는 번쩍이는 자동차와 마차가 질주했고, 거리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인적이 드문 시골 오지에서 살아온 이상산은 그 모든 게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조선 사람이 많았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건너온 사람도 있었고,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기 위해 건너온 사람도 있었지만, 아편 밀매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부유한 조선인들은 거개가 아편 밀매업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선에서도 궁벽한 오지에서 살던 이상산의 가족들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넓고 화려한 시가지를 보며 희망에 부풀었다. 대도시의 풍요가 마치 자기 것인 양 달콤하고 행복한 꿈에 젖었다. 하지만 변한 것은 환경이지 가족의 처지가 아니었다. 길주에서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나 이상산 가족은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일 뿐이었다. 헐벗고 굶주리기는 고향에서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막일이나 하려고 고향 떠나 로스케 나라까지 건너왔나.’

이상산의 아버지는 착실하게 살아봐야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아편 밀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찰에 발각되는 날엔 이역 땅에서 징역살이를 해야 했고 자칫 폭력조직의 이권 다툼에 휘말리는 날에는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길은 그것뿐이었다. 감옥에 갇히는 것, 목숨을 잃는 것쯤은 두렵지 않았다. 문제는 밑천이었다. 하루 세끼 때우기도 어려운 처지에 아편장사 밑천이 있을 리 없었다.

“아편장사만 하면 틀림없이 큰돈을 모을 수 있다! 보아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는 조선 사람들의 풍요로운 생활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아편장사다. 무엇을 희생하고라도 꼭 아편장사를 하자!”

이상산의 아버지는 아편장사를 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사랑하는 자기 딸에게 눈물을 머금고 밀매음을 강요했다. (‘국제 삼각애의 혈제’, ‘개벽’ 1934년 12월호)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이후 이상산은 줄곧 기관지염을 앓았다. 비정한 아버지는 병든 딸을 치료하고 보살피기는커녕 홍등가에 나가 몸을 팔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이상산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열여덟 살이면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 만한 나이였다. 이상산은 이왕에 홍등가로 나갈 거라면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봄이 바야흐로 짙어가고 지지배배 제비들이 맑은 북쪽의 하늘에서 노래할 때 드디어 이상산은 어느 사나이에게 몸을 바쳤다. 풍부한 육체의 판매 개시. 그 얼마나 피 섞인 소리이며 징그러운 말이냐! 그러나 이상산은 도리어 그 그늘진 생활이 여태껏 맛본 생활보다 몇 배나 편하고 재미있는 새 생활이라고 여겼다.

‘돈이다! 돈이다! 무엇보다도 돈이 있어야 되겠다!’

이상산은 사나이들에게 몸을 맡기는 순간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으며 이를 악물고 머지않아 찾아올 행복한 미래를 그렸다. 자기의 육체를 맛본 사나이들에게서 나오는 몇 푼의 돈을 두 손에 쥐고는 그 싸늘한 촉감을 끝없이 향락해 마지않았다. (‘국제 삼각애의 혈제’, ‘개벽’ 1934년 12월호)


이상산은 홍등가 생활을 하는 동안 이청해라는 조선 청년을 만났다. 이상산의 단골손님이던 이청해는 조선에 있을 때 사상단체에도 관여한 정열적이고 씩씩한 청년이었다. 처음엔 돈과 육체로 맺어진 인연이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연인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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