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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외인구단’ 성지고 축구팀의 행복한 자율 리더십

체벌, ‘운동기계’는 먼 나라 얘기… 훈련도 선수 맘대로

  • 김영아 자유기고가 paxpen@empal.com

‘공포의 외인구단’ 성지고 축구팀의 행복한 자율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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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외인구단’ 성지고 축구팀의 행복한 자율 리더십
김인배 감독은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전국대회 20회 우승을 이끌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국가대표를 지낸 이민성을 비롯해 여러 스타를 길러낸 고교축구 명장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며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몸 상태를 파악해 내일 시합에 선발로 내보낼 명단을 짜고 있는 듯했다. 전국대회 4강에 오른 소감부터 물어봤다.

“우승보다 값진 4강이죠. 전임 학교에서 스무 번이나 우승을 했지만, 이때처럼 기쁜 적은 없습니다. 4강에 오른 순간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선수들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성지고 축구팀을 전국대회 4강에 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 감독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면 서너 배의 능력을 발휘한다. 우리 학생들도 절실하게 하고 싶어 하던 축구를 했기 때문에 맹활약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열정만으로 전국대회 4강 팀을 길러낼 순 없었을 것이다.

“처음 와서 보니 선수들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어요. 대부분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선수들은 자신감이 없고 팀의 사기도 형편없었다. 이런 선수들에게 경기 중의 실수를 지적하고 질책할 수는 없었다. 야단을 쳐서 나아질 것 같으면 그렇게 하겠지만, 자신감이 떨어진 선수를 야단치면 포기해버리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걷어주고 자신감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웃는 얼굴로 선수들을 대하고, 조금만 잘해도 크게 칭찬해줬다. 경기 중에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다독거렸다. 저녁에는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신교육을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막상 시합에 나가면 이성을 잃고 행동해 퇴장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 경기에서 3명이 퇴장당한 경우도 있었다. 상대팀 선수들이 시합 중에 “꼴통학교에서 무슨 축구를 하느냐”는 식으로 야유를 보내면 화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상대가 때리면 차라리 한 대 맞아라, 그게 이기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 제44회 부산MBC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선 페어플레이상을 받을 정도로 선수들이 성숙했다. 김 감독은 이 대회에서 4강에 오른 것도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페어플레이상이 더 값지게 느껴졌다고 한다. 페어플레이상을 받았다는 것은 선수들이 비로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운동기계’는 없다

김 감독의 자율축구는 이렇게 가슴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하나씩 가진 선수들과 함께 시작됐다. 반복훈련과 엄격한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국내 체육계에서 ‘자율’이라는 말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요즘에도 학원 스포츠 지도자들의 선수 폭행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되지 않는가.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선후배 사이의 구타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입식 반복훈련으로 인해 어린 선수들이 ‘운동기계’로 전락한다는 우려도 크다. 하지만 성지고 축구팀에서 주입식 반복훈련이나 지도자의 체벌, 선후배간 구타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성지고 축구팀 선수들은 하루 4시간의 훈련시간 외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아침 기상시간도 자기가 알아서 하고, 다른 축구팀에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실시하는 아침 러닝도 없다. 선수 본인이 아침에 조깅을 할 것인지 산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잠을 조금 더 잘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런데 요즘은 선수들 대부분이 일찍 일어나 아침운동에 참여한다.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알게 모르게 선수들 간에 선의의 경쟁심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아침운동은 대개 파평산 삼림욕장에서 하는데, 달리기도 하고 산책 삼아 천천히 걷기도 한다.

훈련방식도 특기할 만하다. 대부분의 고교축구 지도자는 공격과 수비 전술 몇 가지를 정해놓고 반복훈련을 한다. 그런데 김 감독은 큰 틀을 정해주고 그 속에서 선수 개개인이 상황에 맞춰서 창조적인 플레이를 하도록 유도한다.

“다른 고등학교 축구팀은 전체 훈련시간에서 체력훈련이 70~80%를 차지합니다. 축구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은 20~30%밖에 안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우리가 축구선수인지 육상선수인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나오죠. 반면에 우리는 축구공을 갖고 하는 운동이 80% 이상입니다. 그렇다고 체력훈련이 안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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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아 자유기고가 paxpe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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