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병호 소장의 성공비결은 철저한 시간관리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는 데 있었다.
공병호 자유주의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구성 원리로서의 자유주의입니다. 이것은 사회 현상을 해결함에 있어서 개인적 자유를 극대화하고 집단적 선택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이를 가장 잘 구현하는 것이 자유시장경제입니다. 개인적 자유와 자유시장경제를 철저히 지지한다는 면에서 저는 자유주의자입니다.
자유주의의 두 번째 차원은 생활철학으로서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 책임도 개인이 지게 하는 원리입니다. 다른 이에게 손 벌리는 거지 근성 없이 강한 자존감과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자기 인생이 추구하는 바를 개척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죠. 그런 차원에서도 저는 철저한 자유주의자입니다.
물론 히말라야에서 도를 찾는 사람도 자유주의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일정한 물적 토대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시간을 내어 히말라야에 가서 휴식을 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하든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책임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사람을 자유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난 내 식으로 살아가련다’
김정호 어떻게 해서 자유주의자가 됐습니까. 태생적으로 그런 성향이 있었던 건가요? 자유주의 사상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공병호 저의 자유주의적 생활 태도는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촌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자아의식과 자기주도 성향이 매우 강했던 것 같습니다. 7남매 중 막내인데도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정호 부모나 형제로부터 독립하려는 성향이 강했던 모양이군요.
공병호 그래서 어머니와 누나들이 섭섭해 했습니다. 저는 공병우(공병우타자기 발명자)씨의 자서전 ‘난 내 식으로 살아가련다’를 읽으며 크게 공감했습니다. 공병우씨처럼 누가 뭐라 해도 평생 나 스스로를 고치고 단련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곤 했지요. 그러나 초년의 제 자유주의는 삶의 방식이었을 뿐 사상으로 세워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체계 잡힌 자유주의 사상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자유기업센터(자유기업원의 전신)와의 인연입니다. 자유기업센터 재직 시절 하이에크나 미제스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저서를 읽으면서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또 2001년 이후 몇 년간 자영업을 하면서 제 스스로 인생과 시간을 경영하다 보니, 자유주의야말로 개인과 사회를 모두 구원할 사상이라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김정호 정리해보자면 타고난 독립적 생활 태도, 자유기업센터 재직 때 접한 자유주의 문헌들, 자영업을 하면서 얻은 확신, 이 세 가지가 오늘날 공 소장을 자유주의자로 만들어놓은 것이군요.
貧者의 지름길, 의타심
많은 사람이 부자를 꿈꾼다. 공병호 소장은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이란 책을 내기도 했는데, 그에게 ‘부자가 되는 생각’이란 어떤 것일까.
공병호 인간의 행동은 생각의 결과물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빈자가 될 수도 있고,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성공학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의타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기대려고 하는 한 아무리 돈을 갖다주어도 결국 가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원리는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북한 주민이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 아무리 많은 무상 지원을 해준다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책임지기보다는 타인에게 미루려고 하는 마음, 즉 의타심을 가지게 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빈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김정호 내 허물이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겁니까.
공병호 그렇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자기경영아카데미에 ‘석봉토스트’로 유명한 김석봉씨가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분이 성공한 배경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술을 잔뜩 마시고 일어난 어느 날 아침에 문득 ‘나는 거지 근성을 가진 게으름뱅이다’란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당장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시작했고, 그러면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