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철은 지금 사형선고를 받아 감옥에 있고, 남은 사람은 영화 속에서 그를 잡은 포주뿐. 영화 제목이 ‘추격자’이므로 엄밀하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이를 찾아서 잡은 ‘엄중호’다. 신동아를 찾아온 남자는 자신을 전직 출장마사지업소 사장이자 유영철을 잡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극중 엄중호가 바로 자신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2004년 8월 유영철을 검거한 공로로 경찰로부터 받은 감사패와 포상금 500만원의 내역이 든 통장사본을 내밀었다.
감사패엔 그의 이름 ‘정연재(38)’와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검거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경찰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므로 감사패를 수여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당시 이 사건 수사를 총지휘했던 ‘서울지방경찰청장 허준영’씨의 이름도 보이고 청장 직인도 찍혀 있다. 정씨는 자신을 “영화 주인공 중호처럼 전직 출장마사지업소 사장이었으며, 자신이 고용했던 아가씨 3명이 유영철에게 납치돼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화 내용처럼 직접 납치범을 찾아 나섰고, 유영철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모두 밝히겠다”
기자가 “당신이 영화에 나온 것처럼 정말 포주였단 말인가, 그렇게 써도 괜찮은가”라고 물으니 “써도 좋다. 당시엔 그랬지만 지금은 개과천선했다. 내 이름과 과거는 밝혀도 되지만 얼굴은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포주 출신임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뜻밖이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밝혀도 좋다는 말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살인마 유영철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검거 이후 경찰의 수사상황, 즉 그의 여죄를 밝히고 엽기적 살인행태를 밝혀내는 데 집중됐다. 검거까지의 상황은 경찰 입장에서 씌어진 게 대부분이다. 당시 경찰이 낸 보도 자료에는 ‘노모씨 등 업소 사장들의 제보로 경찰과 제보자 등이 함께 잡았다’라고만 적혀있을 뿐, 실제 그들이 어떤 사람이며 검거와 수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선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포주에다 건달이었던 제보자들이 언론 앞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었다. 유영철 사건이 한창 인구에 회자되던 시절, 기자들이 그렇게 찾아 헤맸던 ‘제보자’가 제 발로 찾아오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정씨는 왜 4년이 지난 지금, 그것도 자신의 자랑스럽지 못한 전직과 이름까지 밝히며 ‘신동아’에 인터뷰를 자처한 것일까. 그에게 직접 이유를 물었다.
“영화 ‘추격자’가 개봉된 후 부모님은 물론 주변 친지, 옛 동창에게서 ‘야! 저거 네 이야기 아니냐’며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보니까 각색이 되긴 했지만 영락없이 제 얘기더군요. 제가 서울경찰청으로부터 감사패와 포상금을 받고 주변에 자랑을 했거든요. 더욱이 포상금은 바로 어머니 통장으로 들어갔고요. 칭찬도 많이 들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포주 엄중호의 승용차 재규어 XJ6가 내 차와 똑같습니다. 요즘 잘 구할 수도 없는 차인데 그 차가 영화에 나왔어요. 그러니 주변 사람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 나라고 믿을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