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는 것은 불면의 밤만은 아니었다. 보는 이의 느낌대로 새벽의 색깔은 하루를 열고 있었다. 날마다 다른 색깔로 새벽을 여는 곳에서 나의 새벽을 열었다.”
이런 글을 내걸고 사진 개인전을 연 건 카메라를 산 지 6개월 만이었다.
“40여 년간 카메라에 찍혀봤으니 사진을 찍으면 잘 찍을 거요.” 30여 년을 사진작가로 산 김 사장의 권유였다. 그길로 카메라를 한 대 샀다.
그해 2011년은 봄부터 여름까지 내내 비가 내렸다.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비를 멋있게 만날 수 있는 곳을 고민했다.
들판은 물에 잠겨 하얀 광목이 펼쳐진 듯했다. 산골짜기에는 빗물이 모여 비탈길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로등에는 대여섯 마리의 까치가 모여 앉아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강둔치는 폭우에 잠겨버렸다. 구조용 장비들은 강변도로, 올림픽대로 위에 냉큼 올라와 있다. 수위를 가늠하는 한강다리의 눈금 수치가 걱정스러워졌다.
그렇게 비는 내리고 또 내렸다. 내가 찍을 수 있는 것은 비뿐이었다. 물뿐이었다. 몇 달을 이어가는 장마 속에서 사람들은 걱정이 쌓여갔다. 사는 것에 대해, 그리고 피해에 대해.
가끔 그 틈새에 펼쳐지는 구름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그런 날은 한강다리 위나 아파트 옥상에 사진애호가가 구름처럼 몰렸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엄청나게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에 놀랐다. 삼각대를 뻗쳐놓고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나는 주눅이 들곤 했다. 개인전은 한 번도 안 한 아마추어라면서도 저마다 소유한 카메라의 가치는 물론이고 몇 십 년간 사진을 찍으며 경험한 무용담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완전 초보인 나는 저물어가는 현란한 저녁놀은 그냥 놔둔 채 아무것도 재미있게 해보지 못하고 이 나이가 된 것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새벽 나들이
커튼을 젖혀보고 빛이 보일 듯한 새벽에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짙은 남청색 구름이 품고 있던 붉은빛을 슬쩍 보여주는가 싶더니 어느새 명주 필을 풀어놓은 듯 한 자락 다홍치마가 펼쳐지고 태양이 말간 얼굴을 내미는 새벽은 너무도 아름다워 셔터를 누를 타이밍도 놓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장마 속에 축복처럼 찾아오는 빛의 선물은 잠깐이었다.
다시 비는 시작됐고 나는 습관적으로 장마를 뚫고 새벽을 만났다.
모두가 자고 있는 것 같은 새벽에도 밤새 내놓은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들이 있었다. 노란 비옷을 입고 진연두색 청소차 꽁무니에 서서 매달려 가는 그들을 쫓아 노란 비옷이 눈치 못 채게 며칠을 찍기도 했다.
비와 안개 속에 잠겨 있는 아파트단지들은 윗부분만이 드러나 마법의 성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법사가 휘젓고 다니는 어느 굴뚝에선가 엄마 잃은 아이의 울음이 들릴 것 같은, 아련한 어린 시절 읽었던, 제목도 잊어버린 동화가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한강다리의 교각이 없어지기도 했다. 강에서 피어난 안개가 스멀스멀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다리를 덮었다.
정훈희의 안개가, 김승옥의 안개가, 윤정희의 안개가, 잉그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의 카사블랑카가 뒤섞여 온갖 안개가 내용을 설정하는 데 얼마나 아름다운 장치인가 생각했다. 안개처럼 사라져간 세월과 사람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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