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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수기

“야구장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아이가 없다”

장애 정신과 의사와 ‘사고뭉치’ 청소년들의 힐링 캠프

  • 류미 | 국립부곡병원 신경정신과 의사

“야구장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아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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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월간 ‘신동아’에는 휠체어 타는 정신과 의사 류미(39) 씨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경남 창녕 국립부곡병원 신경정신과 의사인 류씨는 고3 때 불의의 사고로 양쪽 발목의 연골이 괴사한 이후로 10분 이상 서 있거나 30분 이상 걸을 수 없다.

그는 기자로 일하다 퇴사하고 서른이 넘어 가톨릭대 의대에 편입했지만 인턴, 레지던트 과정에서 숱한 실패를 맛보았다. 순탄치 않았던 인생 역정을 전하면서도 그는 유난히 표정이 밝았다. 그는 “장애는 불가능한(disabled)이 아니라 도전받은(challenged) 것”이며 “발목이 내 인생을 ‘발목’잡았지만 주저앉지는 않았다”며 깔깔 웃었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야구’와 ‘청소년’이라는, 향후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2년 만에 류씨가 나타났다. 어느새 ‘야구’와 ‘청소년’이라는 ‘작전’을 완수한 후였다. 서울동대문경찰서에서 중학생을 상대로 야구를 가르치는 ‘푸르미르야구단’ 프로그램의 ‘멘탈 코치’로 합류한 것.

경찰이 ‘특급’으로 분류하는 사고뭉치부터 새터민,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지만 학교 성적이 좋아 도리어 꿈을 포기하게 된 아이까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아이들이 야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류씨가 기록한 푸르미르야구단 아이들의 변화 일기는 4월 말 책 ‘동대문 외인구단’(생각정원)에서 공개된다. 그중 일부를 ‘신동아’ 독자에게 미리 선보인다.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전공을 살려 야구 선수의 ‘멘탈 코치’가 되는 건 어떨까 고민 중이에요. 또 요즘 중고교생 상담에도 관심이 가요. 오늘 오전 파주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왔는데, 정신병을 앓는 분은 완치되기 어렵지만 아직 어린 중학생들은 제 말 한마디에 인생이 바뀔 수 있잖아요.” (류미, ‘신동아’ 2012년 6월호)



어제까지의 일은 전부 괜찮다

“야구장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아이가 없다”
경찰에서 호열이는 ‘특급’으로 분류된 아이였다.

북한도 무서워서 남침을 하지 않는다는 대한민국 중학생. 호열이는 경찰도 쉽지 않다고 낙인을 찍은 아이다. 80㎏은 족히 나갈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앳된 보조개가 있다. 학교에서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랑 따로 왔네?”

“아, 네… 저는 ‘등정’을 먹어서요.”

‘등정’을 먹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섣불리 모르는 티를 낼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아이에게 이 사람은 내 편이 아니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아이들의 관심사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아이들의 언어부터 조금씩 사용해보면 어떨까. ‘등정’의 말뜻은 여전히 오리무중. 순발력을 발휘해서 상황을 유추해본다. ‘등정’을 먹어서 따로 왔다고 하니 어쨌든 학교에서 온 것은 아니리라.

“그럼 어디서 왔는데?”

“아, 피시방에서 왔어요. 열흘 동안 ‘등정’ 먹었으니 그동안은 버텨야죠.”

열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혹시 ‘등정’은 등교 정지의 약자쯤 아닐까. 나도 호열이의 용어를 써보기로 한다.

“뭐 때문에 등정을 먹었는데?”

경찰의 경고와는 달리 호열이는 생각보다 밝았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지금 보니 긴 바지를 두 단 정도 접어 입었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거겠지. 외모에도 관심이 많고,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다.

“아, 그거요. 제가 전자담배를 피웠거든요.”

역시 아이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자담배라면 어른들이 금연하기 위해 피우는? 타르는 없고 니코틴만 있어서 인체에 무해하다고 알려진? 설마 그 정도로 골초일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웬 전자담배지?

“전자담배를 피면요, 연기가 나니까요. 멋있잖아요. 냄새가 안 나니까 들통은 안 나고요.”

그러니까 폼은 내야겠고, 들키기는 싫은 호열이의 타협점이 전자담배였다. 호열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은근히 내가 자신과 놀아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일단 나는 호열이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내가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 아이는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사실 이번 ‘등정’도 전자담배하고 또 다른 것도 있어서 그렇게 됐어요. 제가요, 우리 반 애한테 돈을 좀 달라고 했거든요. 많이도 아니에요. 500원요. 그거 안 갚았다고 담탱이한테 이르는 애들이 있다니까요. 참, 어이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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