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모와 달리 중성적인 목소리가 그가 트랜스젠더(성전환자)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었는데 의학적 힘을 빌려 여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제2의 하리수’인 셈이다. 그동안 취재차 만난 트랜스젠더 대부분은 화장을 짙게 하고 섹시한 의상을 입어도 ‘딱 봐도’ 남자였다. 그런데 그에게선 남성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 중성적인 목소리는 여성 중에도 많다.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았다. 틈틈이 손으로 짧은 치마를 끌어내리고,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서 앉고, 상체를 숙일 때면 자연스럽게 한쪽 손을 가슴골 쪽으로 가져가는 게 ‘여성’의 모습 그대로다. 서울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최한빛은 그렇게 시작부터 기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중국에서 사흘 전 돌아왔어요. 한 달 동안 중국 대도시 클럽을 돌며 공연을 했거든요. 디제잉(DJing)도 하고, 춤과 노래를 곁들인 퍼포먼스도 하고….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 영화도 찍었죠?
“19금 섹시코미디예요. 트랜스젠더가 아닌 그냥 여자로 나와 제겐 의미가 큰 영화죠. 저도 벗느냐고요? 조금요. 노출은, 기대해도 좋을 만큼.(웃음) 솔직히 전 베드신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굉장히 어색하고 어렵더라고요.”
▼ 새로운 작품이 결정된 게 있나요.
“이야기 중인 드라마가 있어요. 방송이나 공연이 없어도 늘 바빠요. 대학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틈틈이 패션쇼 무대도 서고, 대학 후배들과 무용 공연도 하고, 학생들 레슨도 하고요.”
▼ 아무 일정이 없을 때는 뭐하며 지내나요.
“2, 3일 쉬는 날이 생기면 엄마랑 있고 싶어서 부모님 집에 가요. 그렇지 않을 때는 친구 만나요.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걸 싫어해 늘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해요. 그래서 친구가 많아요. 중고등학교 친구부터 무용하는 친구, 모델 친구, 방송하면서 만난 친구까지.”
핫팬츠에 핑크색 가방
그는 “어려서부터 강릉에서 알아주는 예쁜 아이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노란색, 핑크색 같은 예쁜 물건을 좋아하고, 로봇이나 자동차보다는 바비인형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아양도 잘 떨고요.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면 기분이 좋은데, 잘생겼다고 하면 칭찬이란 느낌이 안 들었어요. 거리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 언니들 영향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언니들과는 터울이 많이 져서 인형놀이를 하면서 놀아주지는 않았어요.”
▼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쯤 되면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걸 알게 마련인데.
“그때부터 내가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래서 밤마다 기도했어요. ‘하나님, 오늘 이렇게 착한 일 많이 했으니 제 몸으로 바꿔주세요’ 하고. 나는 지금 꿈을 꾸는 거고, 내일 아침이면 다시 여자로 돌아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자신의 성격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사람이 성격은 바뀔 수 있어도 성향이 바뀌지는 않잖아요. 부모님이 제 성격을 고쳐보려고 태권도장을 보냈어요. 겨루기시합에 나갔는데, 내가 때린 애가 우는 거예요. 그 순간 너무 혼란이 왔어요. 나 때문에 우니까 내가 잘못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맞기만 했어요. 그러다 울곤 했죠. 엄마가 ‘왜 너는 안 때리고 맞기만 하냐’고 해서 ‘내가 때리면 쟤가 울잖아’ 그랬대요. 누굴 때리거나 하는 성격이 못 돼요. 싸움이 나면 눈물부터 나요.”

“지금도 제일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에요. 남자중학교를 다녔는데, 전교에서 유명했어요. 입학식 날, 핫팬츠에 핑크색 가방을 메고 갔으니까. 게다가 단발머리에 실핀까지 꽂았으니 ‘쟨 뭐야’ 했겠죠. 그래도 다들 절 예뻐했어요.”
▼ ‘계집애 같다’고 괴롭히는 아이들도 있었을 텐데.
“있었죠. 저를 정말 괴롭히는 애도 있었고, 저를 위해 그 애랑 싸워준 친구도 있었어요. 대부분 제 취향을 인정해주고, 잘 대해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