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산 개심사의 꽃.
곧, 산이다. 일산에서 20여 분 북쪽으로 가면 저 설악이나 월악의 장엄한 악산에 견줘 산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야트막한 산이 몇 군데 봉기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심학산이다. 파주출판도시를 조성한 이후 그 특색 있는 건물군의 배경으로 심학산이 견실하게 떠받치고 있어서 보기에 좋았는데, 인근으로 교하 신도시에 운정 신도시 등이 들어서면서 작지만 단단한 이 산을 찾는 행렬이 늘었고 최근의 신드롬에 의해 심학산 전체를 3km 남짓하게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까지 열려 한나절 바람 쐬며 소요하기에 좋다 해 꽤 많은 사람이 찾기 시작했는데, 그 대열의 끄트머리에 나도 끼게 된 것이다.
소원 담은 문구
산! 이렇게 부르기에는 작은 산이지만 그래도 언필칭 산이라, 따사로운 봄볕 때문에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 정상에 이르렀다. 빙 둘러보니 일산에서 김포, 다시 거기서 저 멀리 개성 쪽으로 해 다시 파주 교하 운정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이런 정도의 산책이라면 일삼아 자주 할만한 일임을 금세 깨닫는다. 장비 챙기고 행장 꾸려서 저 멀리 드높은 악산을 매번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동네 뒷산이라는 말에 딱 알맞은 포근하고 따사롭고 야트막한 산이다.
그 오르는 길에 절이 하나 있어 산간약수 한 모금 바라고 잠시 들렀다.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절 한구석에 붙어 있는 소원을 담은 문구를 읽어보았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마음속 바람을 한 뼘 정도 되는 나뭇조각에 써서 붙여놓았다. 읽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이 났다.
구체적인 사안 없이 ‘가화만사성’ ‘소원성취’ ‘관세음보살’ 이렇게 쓴 사람도 있고 합격, 취업, 이사, 득남, 결혼 같은 인생사 거치는 동안 꼭 이뤘으면 하는 일을 적은 사람도 있는데, 더러는 갖고 있는 아파트나 공장 부지가 하루빨리 팔리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고 추진 중인 복잡한 사업상의 계약이 원만히 성사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조금은 독특해서 웃음도 나올 만한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런 현실적인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건강을 해치고 가족이 어려움에 처하는 일도 많으므로 차라리 그렇게 기원하는 것도 당연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소원을 비는 내용 중에서도 가장 많고, 또 가슴 아픈 것은 병을 앓는 가족의 쾌유를 비는 내용이며 또 그런 와중에 먼저 이세상을 떠나간 사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 대개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들이며 더러는 친구도 있고 함께 살던 반려견을 추모하는 내용도 있다. “로미야, 고생 많았어. 이제 편히 쉬어. 나중에는 꼭 사람으로 태어나렴.” 아마도 함께 살았던 개의 이름이 로미인 듯하다.
한참이나 그런 애틋한 내용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정호승 시인의 ‘소년 부처’를 떠올렸다. 쉬운 시가 꼭 좋은 시는 아니지만, 정호승의 쉬운 시는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해 어떤 의미를 대번에 환기하는 매력이 있다.
경주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 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
부처가 돼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