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달의 경제보고서 | LG경제연구원

위기에 더 빛난 ‘평등 파트너십’

네덜란드 ‘컨센서스 경제’ 다시 보기

  • 이종우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chongwoo.lee@lgeri.com 이혜림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hllee@lgeri.com

위기에 더 빛난 ‘평등 파트너십’

3/4
뿌리 깊은 협력 전통

기관의 구조 자체에 동등한 파트너십이라는 개념이 적용돼 있다는 점도 이들이 잘 작동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노동재단의 경우 3대 고용주연합회와 3대 노동조합의 대표가 각각 8명씩 이사회 멤버를 구성한다. 최대 고용주 연합회 대표와 최대 노조 대표가 이사회의 공동의장으로 임명된다. 모든 의사 결정은 투표를 거쳐 3/4석 이상의 찬성을 받도록 정관상 규정돼 있었지만, 주요 이슈에 대해 만장일치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투표가 생략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회경제평의회는 노동재단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데, 사회적 파트너들에 더해 네덜란드 국왕이 지정한 전문가들이 구성원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노동재단과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사회경제평의회는 33명의 멤버로 구성되는데, 11명의 고용주연합회 대표와 11명의 노동자협회 대표, 그리고 내각 추천인 중 왕이 지명한 11명의 관련 분야 전문가가 포함된다. 네덜란드 중앙은행과 중앙계획국의 대표는 국왕이 지정한 멤버로서 사회경제평의회에서 상임석을 갖는다.

노동재단과 사회경제평의회의 설립으로 노사정이 사회경제적 이슈를 논의할 수 있는 협조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는 기업과 노조가 균형 잡힌 사회경제 정책 형성에서 중요한 임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네덜란드 컨센서스 모델의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치로 노조파업 일수를 들 수 있다. 임금근로자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한 근무손실 일수는 2000~2004년 평균 10.7일로, EU 평균 61.2일이나 OECD 평균 78.5일에 비해 매우 적다.



네덜란드 컨센서스 모델에서 사회적 파트너 간의 평등한 파트너십은 고용주와 노동자의 참여를 도출하는 시스템화한 프로세스만큼이나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전후 경제 재건 과정에서 사회적 파트너들은 노동시장의 개선이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 없이는 불가능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집단의 선(善)을 위해 협력하는 전통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네덜란드 국토의 절반은 바다와 강을 피와 땀으로 개척해 일궈냈다. ‘물’과의 사투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네덜란드인의 협력 전통은 기원전 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사투 과정은 서로 간의 긴밀한 협력을 요했다. 집단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협력하는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동등한 파트너십이 핵심 요인으로 포함되는 컨센서스 모델에서 나타난다.

정부에 대한 믿음

특히 바세나르 협약과 1993년 체결한 신노선 협약에서 보듯이 노동조합은 기업의 성장이 고용안정의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인정했고, 임금인상 억제와 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협력에 합리적인 태도를 취했다. 노사 양측 모두 기업의 재무상황을 고려해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기업의 고비용 구조를 타파하는 데 협력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양측 모두 기업 실패의 결말은 피하고 싶어 했다.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집합적 이해관계와 합리적인 담론은 네덜란드 컨센서스 경제를 특징짓는 요소다.

컨센서스 모델에선 네덜란드 정부의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회적 협약 뒤에는 사회적 파트너들이 합의하지 않을 경우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을 강요하겠다는 압박이 있었다. 정부의 결정을 강요받는 대신 자신들이 룰을 결정하기 위해 사회적 파트너들은 서로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1997년 바세나르 협약 15주년 기념식에서 루버스 전 총리는 정부가 임금 정책을 펼치겠다는 압박이 바세나르 협약 성립의 최소 요건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정부의 압력 없이는 노사 간 합의 도출이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정부 및 정책 입안자들의 또 다른 기능은 사회적 파트너들의 사회적 협약 과정에 협조하고 협약 내용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는 것이었다. 바세나르 협약 논의 때 약속한 대로 사회적 파트너들이 직접 임금 수준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거나, 1999년 노동유연성과 안정성법을 제정함으로써 노동유연성 협약에서 사회적 파트너들이 만들어낸 권고사항을 실행에 옮기는 등 정부는 사회적 파트너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바꿔 말하면 사회적 파트너들은 그들의 협약과 권고사항이 실행에 옮겨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처럼 정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사회적 파트너들은 집단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진정한 노력을 한 것이다.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보여준 정부의 공정성과 결단력은 국민의 신뢰를 얻었고, 이는 이후 신노선 협약, 노동유연성 협약 등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파트너십이라는 관계는 민간기업과 노동조합 사이뿐만 아니라 정부와 사회적 파트너 사이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네덜란드의 컨센서스 모델은 경제 모델이라기보다, 컨센서스에 기반을 두고 제도화한 메커니즘의 경제정책 결정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네덜란드의 컨센서스 경제는 위기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경제위기는 그 심각성이 클수록 대책도 극단적일 필요가 있으며, 이처럼 과감한 대책이 실제로 집행될 수 있으려면 종합적인 시각에서 사회경제를 바라보는 판단과 함께 폭넓은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

3/4
이종우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chongwoo.lee@lgeri.com 이혜림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hllee@lgeri.com
목록 닫기

위기에 더 빛난 ‘평등 파트너십’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