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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경제보고서 | LG경제연구원

위기에 더 빛난 ‘평등 파트너십’

네덜란드 ‘컨센서스 경제’ 다시 보기

  • 이종우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chongwoo.lee@lgeri.com 이혜림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hllee@lgeri.com

위기에 더 빛난 ‘평등 파트너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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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 모델’의 여러 얼굴

위기에 더 빛난 ‘평등 파트너십’

네덜란드는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부분이 많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헤이그 시 고용복지센터를 방문해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네덜란드 컨센서스 모델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바세나르 협약은 임금 조정에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특히 찬사를 받았다. 임금 조정을 뜻하는 ‘Loonmatiging’이라는 용어는 바세나르 협약의 성공 사례를 언급할 때 늘 동반되는 수식어다.

바세나르 협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모든 이해집단이 경제 재건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서로 힘을 모아 협력하면서 생겨난 네덜란드 컨센서스 경제(Overlegeconomie)의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컨센서스 모델이 갖는 집단적 협력이라는 측면은 네덜란드 경제체제를 얘기할 때 ‘폴더 모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폴더’는 간척지를 뜻하는 말로, 역사적으로 바다와 물과의 사투에서 살아남으려 협력해온 네덜란드인의 전통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나온다. 컨센서스 모델을 비판하는 이들의 주요 논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조합주의(Corporatism)로, 사회적 파트너들이 네덜란드의 컨센서스 경제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행사하는 막대한 영향력이 전체 노동자나 기업을 대표하는지의 문제다. 네덜란드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로, 2011년 기준 노조 가입 인원은 전체 노동력의 20%에 불과하다. 이와 유사하게, 고용주연합회의 대표성 역시 고용주연합회에 소속된 기업의 수만으로는 완전히 정당화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임금 조정이라는 폴더 모델의 목표가 1982년, 1993년, 2003년에 이뤄진 사회적 협약 당시에는 유효했으나, 현재 시점에서 같은 목표를 내세우는 것은 창조경제의 실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하이테크 산업에서 임금 수준이 전 산업 평균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금 조정 정책은 창조경제 발전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컨센서스 경제를 도모할 때 네덜란드식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바세나르 협약 이후 네덜란드에서 폴더 모델이라는 용어는 임금 조정이라는 의미로 쓰였으나, 지금 시점에선 다양한 경제 목표에 적용 가능하다.

아베 일본 총리는 디플레이션 탈출과 경기의 선순환을 촉진하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 바세나르 협약을 벤치마크해야 할 사례로 들었다. 여기서 바세나르 협약은 임금조정이라는 의미와는 정반대로 쓰였다. 아베 총리는 일본 기업과 노동자들이 임금 및 상여금 ‘인상’에 대해 합의해야 하며, 이 이슈에 관한 컨센서스에 도달하는 과정의 바람직한 사례로 바세나르 협약을 들었다.

폴더 모델과 그의 상징인 바세나르 협약은 이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번 기반이 형성되고 나면 이어지는 정책은 급조한 것보다 포괄적인 동시에 넓은 지지 기반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이며,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컨센서스에 도달하기 위해 쏟는 시간이 정책의 빠른 실행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제자리걸음 노사정위원회

네덜란드의 임금 안정과 복지개혁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84년에는 공공부문 임금 3% 삭감에 대해 공공부문 및 건설 부문에서 전후 최대 파업이 있었고, 1991년 헤이그 대규모 시위 등 국민적 저항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회적 갈등은 노사정 3자 간의 협력과 협의라는 기본 틀 내에서 소화됐다. 네덜란드 사례는 컨센서스 경제가 잘 작동하려면 경제사회적 정책결정 과정 전반에 걸친 협력과 협의를 위한 플랫폼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폴더 모델의 성공은 정부, 민간, 노동조합 당사자들 간의 집합적인 관여와 협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플랫폼이 있기에 가능했다.

1945년 이후 네덜란드 경제는 이러한 컨센서스를 다져갈 플랫폼을 유지해왔다. 기업 차원 혹은 특정 산업 내에서는 노동재단이 그 기능을 했고, 국가 차원에서는 사회경제평의회가 정부와 사회적 파트너에게 플랫폼을 제공했다. 이러한 협력 플랫폼을 마련함으로써 효율적 프로세스를 가능케 하는 제도를 갖춘 것이다. 협력이 생겨난 뿌리 역시 결과만큼이나 중요하다. 경제 발전에 있어 고용주와 피고용인은 경제호황의 결실을 나누고, 어려울 때는 함께 짐을 지는 동등한 파트너로서 인식됐다.

네덜란드의 컨센서스 경제는 중요한 정책 개혁을 앞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경우, 협의의 플랫폼으로서 노사정위원회가 존재하지만 당사자 간 합의 방식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노동개혁에 관한 논의가 수년째 제자리걸음 하는 등 노사정 협의기반은 취약한 실정이다. 지난 연말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기본 원칙과 방향에 노사가 합의하기는 했으나 구체적 방안에 관해서는 협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저성장을 탈피하기 위해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상황에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조조정에 성공하려면 주요 경제주체 간의 동등한 파트너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것이 선결 과제일 듯하다.

신동아 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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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chongwoo.lee@lgeri.com 이혜림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hllee@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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