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슬슬 김기덕 감독 얘기를 꺼낼 때가 된 것 같다. 포토그래퍼 김성룡 작가가 한마디 거든다.
“그럼 당연히 ‘섬’이죠.”
김기덕의 그 많은 영화 가운데 ‘섬’을 기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의 한 장면.
‘섬’은 무려 15년 전의 영화다. 김 작가가 막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일 텐데, 내겐 그 포스터가 그렇게 야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장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실제인지 환상인지 여자는 옷을 다 벗고 나룻배와 함께 물에 잠겨 누워 있다. 주요 부위는 수풀로 가려진 채 물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배처럼 여자도, 풀어헤쳐진 여자의 머리카락도 나풀나풀 어디론가 떠내려 간다. 야하다는 느낌을 뛰어넘어 강하고 진한 여운이 지금도 머릿속에 맴돈다. 그곳,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벗어나지 못한 바로 그곳이 경기도 안성 고삼저수지다.
끔찍한 ‘엽기’에 비명

영화배우 서정의 전라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섬’의 포스터.
저수지 중간 중간, 마치 섬처럼 조용하지만 요염하게 떠 있는 방갈로들. 저곳 어디쯤에선가 지난여름 또는 가을, 환락의 향연이 벌어졌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뇌리에 스친다. 아무러면 어떤가.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적막한 것이 아닌가. 지난 한 해 쾌락을 지나치게 즐겼음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스스로 침잠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김기덕 감독도 영화를 찍기 전에 이렇게 겨울의 빈 저수지를 먼저 둘러 봤을지도 모른다. 김기덕은 길거리 화가 출신이다. 캔버스의 여백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 이 저수지를 앞에 놓고 자신의 영화를 한 컷, 한 컷 그려나갔을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발표되자마자 ‘엽기 그 자체’라는 혹평을 받았다. 낚싯줄로 자신의 입을 꿰매는 남자, 자신의 성기를 바느질로 봉해버리는 여자,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끔찍한 장면에 비명을 질렀다.
저수지 낚시터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여자 희진(서정)은 낚시꾼들을 상대로 술과 안주, 먹을 것을 팔며 살아간다. 중간에 가끔, 어떤 때는 종종 그들에게 몸을 팔기도 한다. 꼭 돈 때문만은 아니다. 무료한 삶 속에서 잠시잠깐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한 목적도 살짝 뒤섞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직 경찰이라는 현식(김유석)이 저수지에 나타난다. 변심한 애인을 살해하고 도주하다 숨어들었다. 희진은 곧 그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어쩌지를 못한다. 둘은 점점 일탈의 관계에 빠져든다. 저수지, 아니 세상 역시 점점 광기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기억이 난다. 방갈로 방 안 가운데 바닥을 뚫고 한 남자가 낚싯바늘에 입 안이 꿰인 채 올라오던 장면. 여자의 몸, 여배우의 몸이 기억난다. 아, 그 여배우, 그 상큼하고 순진하고 매력적인 여자 서정은 지금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저수지 중간 중간, 마치 섬처럼 조용하지만 요염하게 떠 있는 방갈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