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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도, 의심도 말고 독립을 준비하라

외도에 대처하는 방법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artppper@hanmail.net

용서도, 의심도 말고 독립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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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상처

아내의 외도를 알아채고 상담실을 방문한 남편은 굉장히 힘들어한다. 예외 없이 우울, 불안, 불면, 무절제한 음주에 시달린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힘들 줄 몰랐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자신은 아내 몰래 외도하고는 막상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을 알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아내는 남자를 만나 식사하고 휴대전화로 문자를 나누는 정도의 정서적 외도만 했는데, 남편은 틀림없이 성관계를 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괴로워한다. 아내가 외도를 하고 육체적으로도 깊은 관계였다고 고백하는 경우 남편이 다시 화해하고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아내의 외도에 대한 남편의 반응은 격렬하고 심각하다. 남편이 폭력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식 때문에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해도 남편은 배신의 상처를 잘 극복해내지 못한다. 아내가 불륜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남편이 판단하면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외도를 알아챈 아내 역시 극심한 분노에 휩싸인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래도 남편보다 자녀를 더 생각하게 된다. 남편의 사과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이혼할지 고민한다. 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남편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데 그것이 진정인지 아닌지’ 물어오는 사람이 자주 있다. 그러면서 남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를 꼬치꼬치 말하면서 진정 뉘우친 증거인지 해석해달라고 한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남편을 믿지 못하면서도 믿고 싶은 상반된 심리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 하는 말만 듣고 그 사람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은 솔직히 정신과 의사인 나로서도 불가능하다. 남편이 앞으로 더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할 때는 그 나름대로 진심이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남편이 말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거짓말 탐지기로 검사해도 그 상태에서는 진실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해놓고도 다음에 또 유혹을 접하게 됐을 때 절제할지 못할지는 본인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을 때는 진심이었지만 충동을 절제하지 못해 또다시 외도를 한다면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다.



바람? 피울 사람은 피운다

따라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만약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갈등으로 인해 불륜을 저지른 경우는 같은 상황과 갈등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앞으로 성실하게 살 가능성이 크다. 출장을 가거나 혹은 술을 마시고 예상치 않게 우연히 가진 일회성 관계인 때도 앞으로 가정에 충실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러 차례 외도하고, 매번 성관계를 동반하는 경우라면 반복될 가능성이 거의 99.9%다.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고 하고 여러 번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는 또다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이번에는 진짜 뉘우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내가 용서를 하건 말건 바람 피울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안 피울 사람은 안 피운다. 용서보다 중요한 것이 행동이다.

아내 혹은 남편이 다시는 외도를 하지 못하도록 당신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당신이 속수무책이라면 아내 혹은 남편이 지금 아무리 진정으로 뉘우치더라도 언젠가는 또다시 바람을 피울 것이다. 따라서 참고 살기로 일단 마음먹은 이상 용서에 매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아내 혹은 남편의 외도로 상처 받은 이가 상대방의 사과에 집착하고 내가 용서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은 내가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용서하고 아픈 기억을 잊고 싶은 것이다. 용서하고 의심하기를 중단하고 싶은 것이다. 용서라도 해야지 자신이 덜 비참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용서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해야 용서할 명분이라도 생긴다. 그래서 상대방을 다그쳐서 잘못을 인정하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용서를 빌지 않는다면 내가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거리가 없다. 용서도 못하는 내 처지가 더욱 답답하고 비참할 뿐이다.

용서하지 말라

상담 경험상 보통 사람들이 외도를 용서하기란 불가능하다. 용서 잘하는 것도 타고난 본성이다. 마음도 자비로워야 하지만 상처도 금세 잊어야 한다. 외도의 상처를 잊는다는 것 그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에겐 불가능하다. 상처를 잊지 못하는 한 용서는 더더욱 힘들다. 오늘 억지로 마음을 가다듬어 용서하더라도 내일이 되면 또다시 분통이 터지게 마련이다. 용서란 억지로 마음먹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용서하지 말라. 대신 아내 혹은 남편이 다시는 외도하지 못하도록 행동해야 한다.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혼할 처지가 아니어서 억지로 살아야 하고, 억지로 살아야 하기에 사과 받고 용서하는 명분에 집착하는 이에게도 “용서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용서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도저히 이 결혼을 참지 못하겠다면서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잔소리를 하고 불만을 터뜨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대신 이혼할 심리적 경제적 힘을 키워야 한다. 나의 독립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생긴다. 독립할 능력이 되지만 참고 사는 것과, 능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참고 사는 것은 천지차이다.

더 나아가 의심하지도 말라. 의심 한다고 외도를 막을 수 있을까. 만약에 당신이 상대방의 외도를 처벌할 돈과 힘이 있다면 의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상대방이 외도를 들키면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당신 눈치를 볼 것이다. 하지만 그를 처벌할 돈과 힘이 없다면 아무리 의심해도 소용이 없다. 의심할 시간에 심리적 경제적 독립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신동아 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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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artpp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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