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이들이 처음으로 함께 여는 전시회 제목이 ‘흔해빠진 풍경 사진의 두 거장 展’이다(3월 8일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 흔해빠진 사진을 찍는다면 거장이라 할 수 없지 않나. 모순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이다. 다분히 ‘대한항공 솔섬 판결’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읽힌다.
케나의 한국 에이전시인 공근혜갤러리는 케나가 2007년 발표한 강원도 삼척 솔섬 사진과 실질적으로 유사해 보이는 공모전 당선작을 TV광고 등에 활용했다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케나 측은 지난해 3월 1심과 12월 항소심에서 모두 패했다. 법원은 풍경사진에는 저작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판결문의 한 구절은 이렇다. ‘솔섬과 같은 고정된 자연물이나 풍경을 대상으로 할 경우 누가 촬영하더라도 같거나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해 미술 관련 법률 전문가인 김형진 변호사(법무법인 정세)는 “사진예술의 창작성을 과소평가한 판결”이라며 “오늘은 사진이 보호받지 못하지만, 내일은 회화나 조각 등으로 같은 논리가 번져 전체 예술 분야가 커다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배병우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진 하는 후배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진작가가 이럴 때 말 한마디 안 하면 얼마나 비겁한 일이냐’고 했다”며 “이번 기회에 사진예술의 창작성을 이슈로 만들어보자 싶어서 전시에 응했다”고 했다. “나라고 비슷한 일을 겪어본 적 없겠나…”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전시 오픈을 하루 앞둔 2월 5일, 경기 파주 헤이리 작업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경주에도 ‘짝퉁’ 소나무가…
▼ 한진그룹이 운영하는 ‘일우스페이스’의 개관전 초대작가인데도 대한항공 관련 이슈에 뛰어들었습니다.
“나설 만하니까. 또 케나와 나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예요. 연배도 비슷하고. 둘 다 평생 자연을 쫓아다닌 사람들이라 통하는 게 많아요. 정당한 얘기인데 내가 피할 이유가 없지.”
그는 항소심 재판에 자필로 쓴 2장의 소견서를 제출했다. 이렇게 썼다. ‘저를 모방한 유사 작품이 순수 혹은 광고 작업에 등장했을 때 허탈감이 옵니다. 32년 넘게 소나무와 한국의 풍경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한 작가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유사 모방 작품은 한 작가뿐만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창작자의 의욕 상실과 국가적, 국제적 망신입니다….’
▼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도 무단으로 모방된 적이 있나요.
“왜 없겠어요. 모 자동차회사가 광고 배경으로 제 작품과 비슷한 걸 쓴 적 있어요. 그걸 보고 어느 변호사가 ‘돈 벌게 해드릴까요?’ 하더라고요. 제가 30년 넘게 경주 남산에서 소나무를 찍고 있잖아요. KTX 신경주역이 개통할 무렵에 제 사진이 얼마냐고 연락 왔어요. ‘너무 비싸다’고 하더라고. 그 후에 신경주역에 가봤더니 제 작품과 비슷한 소나무 사진을 벽에 발라놨더군요.”
▼ 문제삼지 않았나요.
“하이닉스가 TV 광고에 제 소나무 작품과 비슷한 걸 사용해 재판 절차를 밟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하이닉스가 깨끗이 승복해서 중단했지.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이기는 선례’를 남겨놨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전남 여수 향일암에서 뛰어놀며 자란 그는 최근 고향 근처에서도 비슷한 ‘모멸’을 겪었다. 신안의 섬 사진으로 책을 내달라는 박우량 전 신안군수의 의뢰를 받아 섬들을 촬영해왔는데, 지난해 7월 군수가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요지는 ‘공모전을 하면 더 좋은 사진도 나오는데 왜 이런 데 돈을 쓰느냐’는 거였죠. 제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려고 하니까 ‘약속이 있다’면서 가버렸어요. 젊었을 땐 그런 수모를 겪으면 으름장을 놓기도 했는데….”

마이클 케나의 ‘Pine Trees’(2007·왼쪽)와 대한항공이 2011년 TV 광고에 사용한 솔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