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최종 타결하면서 구체적인 협정 내용이 잇따라 공개됐다. 2017년부터 협정이 발효되면 향후 30년간 역내(域內) 12개국은 96~100% 수준의 무역 자유화 조치 혜택을 볼 전망이다.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베트남, 멕시코 등 참가국 국내총생산(GDP)을 모두 합하면 30조 달러를 넘는다. 세계 총생산량의 40%에 달하는 수준이다.
미국에 이어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안도하던 한국도 지난해부터 뒤늦게 TPP 가입에 적극 뛰어들었다. ‘다자간 자유무역경제권’이라는, 한 차원 높은 국제무역 체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TPP 2차 교섭국으로 참가하려고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양자 간이든 다자간이든, 자유무역협정이란 쉽게 말해 관세장벽 철폐를 약속하는 것으로, 국가 간 자유경쟁을 부양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 한국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특히나 그간 지불한 세금만큼의 비용이 빠지고 수익성이 개선된다는 측면에서, 일부 ‘자국 농산물 보호’라는 명분을 빼면 참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봉건영주들의 ‘돈줄’
관세는 고대부터 ‘국가’ 개념이 확립되기 전인 중세까지 유럽 봉건영주들에게 일종의 돈줄 노릇을 했다. 일본에서도 막부시대 때 지방의 번주(藩主)인 다이묘가 관할 지역에서 상인들이 상행위를 하면 ‘자릿세’를 징수했다.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1767년 출간한 ‘국부론’에서 과도한 지방별 관세가 국내 상업의 발달을 저해한다며 일찌감치 부작용으로 지적한 바 있다.
상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안정적 상행위가 가능하도록 지원해줄 ‘정치적 실세’를 찾고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 유력한 봉건영주가 다른 영지(領地)를 병합 또는 통합해 최대한 큰 단일 시장을 조성해야 상업도 발전하고 자신의 이윤도 크게 남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거대 시장의 영주는 곧 지역을 관할하는 왕국의 왕이 되고, 이 통합경제권은 자연스럽게 근대적 의미의 국가로 발전했다. 왕국 내에서 관세가 폐지되면 물류의 원활한 네트워크 형성, 화폐 통일 및 수송 인프라 작업이 수반되며 시장이 커지고 부(富)가 축적된다. 왕국 간 부의 불균형이 생기면서 외교적으로는 침략전쟁, 경제적으로는 관세의 부활과 폐지가 반복되는 형태로 국가의 통합과 분단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현재 유럽연합(EU)에서 경제우등생으로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지만, 19세기 초만 해도 유럽 내에서의 위상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훨씬 못 미쳤다. 당시는 프로이센, 바이에른, 작센, 하노버 등 6개의 개별 영주들이 따로 관리하는 연방의 느슨한 연합 형태였기에 단일 경제권도 확립되지 않았다.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1820년대에 “독일이 정치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어렵다면 연방 간의 관세장벽만이라도 철폐해 물류 및 시장 통합화를 조기 실현해야 한다”고 제창했으나, 당시 연방의 영주들은 지배계급의 주 수입원인 관세를 포기할 처지가 아니었다. 다만 ‘이대로 가다가는 영국, 프랑스와의 국제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커져가며 당시 연방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프로이센이 먼저 총대를 멨다. ‘전체 파이를 키워 같이 더 잘살자’는 대의명분은 오늘날 최강대국이랄 수 있는 미국, 일본이 TPP 협정을 위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와도 같다.
같이 더 잘살자
프로이센은 베를린을 중심으로 18세기부터 번영을 구가했는데, 19세기 들어 독일 연방 전체 인구의 절반을 점했으며 GDP도 다른 연방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다른 연방들은 우수한 프로이센 수입 물자에 고액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맞섰는데, 결과적으로는 독일 전체 경제의 성장 정체를 부추길 뿐이었다.
결국 프로이센은 다른 연방과의 관세를 상호 폐지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고, 수입 목표를 세워 각 연방으로부터 일정량 이상의 물자를 반드시 수입하는 등의 특혜적 대우를 약속했다. 이를 통해 1834년에 오늘날의 FTA와 비슷한 관세동맹이 연방 내에 체결됐다. 관세동맹을 통한 전체 경제권 성장 및 노동인구 증가의 혜택을 맛본 독일은 이런 뒷심을 촉매로 마침내 1871년 최초의 통일제국을 출범하게 된다.
관세장벽 철폐를 통해 자유무역을 실현한다는 이상은 상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이 일정 수준의 ‘체급’에 도달했을 때 얘기다. 경쟁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의 개방은 종속의 다른 말에 불과할 수도 있다. TPP 단어 중간에 ‘파트너십(Partnership)’이 들어간 이유도 그만큼 상대국과의 호혜적 동반 발전을 의식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심산이다.
최근 일본이 TPP 협상을 진행할 때도 그렇고, 한국이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FTA를 타결할 때도 비슷했지만 무역 비중이 높은 선진 공업국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자국 농업의 위축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고비용 구조일 수밖에 없는 자국 농산물 시장에 갑자기 값싸고 맛 좋은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면 해당 산업 자체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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