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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前 국회의장 “한국당, 수구 꼴통 이미지 걷어내고 따뜻한 보수 돼라”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정의화 前 국회의장 “한국당, 수구 꼴통 이미지 걷어내고 따뜻한 보수 돼라”

  • ● 보수, 통합 논의 전에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 한국당은 가진 자를 위한 정당
    ● 당 이름만 바꿨다. 내용은 안하무‘국민’
    ● 사리사욕,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인은 암적 존재
    ● 합리적 보수와 중도 통합한 신당 만들면 총·대선 승리
    ● 거리 정치는 국력 낭비, 불행의 씨앗
    ● 청와대가 행정부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정부’는 위헌적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따뜻하고, 건강하고, 공정한 보수는 어디로 사라졌나. 보수야당을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은 지금 안팎에서 맹공을 당하고 있다. 외부의 비난은 차치하고, 당 내부에서도 불만이 들끓고 있다. 

한국당 여의도연구소장이던 김세연 의원은 2019년 11월 중순 “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이며,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며 “깨끗하게 해체해야 한다”면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영우 의원도 “지금의 한국당은 국민의 마음을 온전히 얻을 수 없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핵심 인사로 19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정의화(72) 새한국의비전 이사장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3년 전 정계를 은퇴하고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는 그의 눈에도 한국당은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유한국당이 따뜻한 보수가 되려면 수구 꼴통 이미지를 걷어내야 한다”며 “처절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병원 경영 중, 하지만 나라가 어려우면…

자서전 ‘정의화의 아름다운 복수’ 등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삶을 다룬 책들. [박해윤 기자]

자서전 ‘정의화의 아름다운 복수’ 등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삶을 다룬 책들. [박해윤 기자]

정 전 의장과의 인터뷰는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신동아’가 인터뷰를 제의한 다음 날인 2019년 11월 26일 오전 그는 “마침 상경길이니 바로 만나자”고 했다. 정 전 의장은 상경길에 여러 일을 모아 처리하고 돌아간다. 이날은 신동아 인터뷰 외에도 지인들과의 모임 등으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를 만나러 가면서 중도 진영의 외연 확장이 예견되는 2020년 총선에 그가 어떤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중도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인사 가운데 한 명이므로. 여의도 사무실에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찍은 대형 소나무 사진이 걸려 있었다. 부산대 학보사 사진기자 출신인 그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그는 요즘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지 “아내와 카메라 둘 중 하나만 없어도 못 산다”며 웃었다. 

- 정계를 떠난 지 3년이다.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올 생각은. 

“개인적으로는 정치판에 다시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다.” 



- 어떤 조건이 되면 다시 올 수도 있단 말인가. 

“다시 온다면, 하늘의 계시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하.” 

- 어떤 계시를 말하는가. 

“15대 때 처음 국회에 입성할 때 운명적 동기가 있었다. 의사였지만 사회의 불공정을 안타까워했고, 그런 사회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 사회를 상식이 통하는 건강한 곳으로 만들고 싶었고, 동서화합과 남북통일에 주춧돌을 놓고 싶었다. 운 좋게도 국회의장까지 돼 박근혜 대통령에 맞서 입법부의 거수기 노릇을 거부했다. 그 소명을 다해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병원(부산 김원묵기념봉생병원) 경영과 재단 일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는 내 일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국체(國體)가 흔들릴 경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장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국민과 나라에 보답해야 한다면, 컴백할 수 있다.”


한국당은 가진 자를 위한 정당

- 어떤 형태의 컴백을 말하는가. 

“내가 직접 무엇을 하겠다는 게 아니다. 나 개인의 자리는 전 국회의장으로 충분하다. 다만 더 훌륭한 분이 이 나라의 국체를 제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이다. 그런 리더가 나올 수 있도록 곁에서 돕겠다는 뜻이다. 지금 대한민국 보수가 위기에 처해 있다.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 보수가 성찰해야 할 부분이 뭔가. 

“첫째, 너무 경직돼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을 국시로 할 때 그 개념도 시간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도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변화된 시대에 맞게 변화를 줘야 한다. 

둘째, 보수는 ‘따뜻한 보수’가 진짜다. 과거엔 성장이 먼저고 그 뒤에 분배한다고 했다. 그건 틀렸다. 자동차의 경우 전륜구동이라 해도 전륜(성장)이 동력을 일으켜 후륜(분배)과 함께 가는 것 아닌가. 성장의 주된 열매는 자기들이 다 따먹고 남은 것으로 나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성장과 분배가 같이 가야 따뜻한 보수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가진 자가 더 융성하고 못 가진 자는 더 어려워지는 빈부 격차가 큰 문제다. 대한민국 보수는 빈부 갈등과 격차를 최소화하려 노력했어야 했다. 내가 국회에 있을 때 전월세 상승폭을 물가상승률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같은 당 동료 의원들에게서조차 동조를 많이 받지 못해 입법화하지 못했다. 보수가 그런 측면에선 야박했다.” 

- 성장에 방점을 찍다 보니 약자를 위한 입법에 소홀했다는 뜻인가. 

“입법뿐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생각도 그랬다. 이 사회엔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있고, 돈을 지원받을 수밖에 없는 이도 있다. 그들에 대한 맞춤형 복지가 중요하다. 한국당은 가진 자를 위한 정당으로 비쳐왔다. 따뜻하지 못한 보수였다. 그러나 앞으로 급격한 변화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벽돌 쌓듯이 서서히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당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안하무‘국민’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 정 전 의장이 생각하는 보수의 미덕이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이념적 정치 지형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수술 속도의 차이로 비유했다. 우파는 수술을 할 때 어떤 후유증과 부작용이 예상되는지, 또 어떤 대책이 있는지 심사숙고하면서 차분하게 해나가지만 좌파는 응급수술을 하듯 해나간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과연 어느 쪽이 더 맞는 수술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 전 의장은 대체로 우파의 수술법을 우위에 두고 있다. 좌파의 수술법은 충분한 검토 없이 하다가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렇다고 우파의 수술법이 항상 옳다는 건 아니다. 특히 그는 현재 대한민국 보수의 경우 수술법 자체에 대해서도 근본적 재고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 한국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나는 국회의장이 되면서 정치 중립을 지키기 위해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하지만 의장 임기가 끝난 뒤 복귀하지 않았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개인의 사당(私黨)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로 내가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친박(친박근혜)의 총선 공천은 국민을 안하무‘국민’으로 보는 행태를 보였고, 총선에서 심판받아 당이 소멸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후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꿨으나 바뀐 것은 이름뿐, 내용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김세연 의원이 ‘민폐’니 ‘좀비’니 하며 한국당을 비판했다. 그 발언이 좀 과한 것은 사실이다. 본인도 그 당에서 3선 의원을 지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당이 그렇게 된 데는 김 의원 본인의 책임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자기 성찰을 통해 이 사회에 민폐가 되지 않도록 본인은 어떤 노력을 했나. 성찰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발언할 정도라면 탈당도 해야 한다. 다만 불출마 선언은 대한민국 정치가 바뀌어야 하겠다는 말이므로 자기희생적이어서 아름답다.”


청와대가 행정부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정부’는 위헌적

- 2020년 총선은 어떻게 전망하는가. 

“한국당은 과거 새누리당, 한나라당, 더 이전 전두환 군사 정권의 민정당 계보를 잇고 있다. 수구적, 권위주의적 색채가 상당히 강했다. 당 운영 자체도 민주적으로 했느냐에 대해 의문이 든다. 이제 보수당다운 보수당으로 태어나려면 수구적, ‘꼴통’ 보수 이미지를 걷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 2020년 총선에서도 청년 몇 사람에게 공천 주는 방식으로 당을 바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그런 가짜를 걷어내고 새로운 보수당으로 태어나야 한다. 

새롭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합리적 보수, 국민의 안전과 행복, 나라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보수정당을 말한다. 새로운 보수는 충돌을 안아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합리적 보수와 중도를 합해 새로운 정당으로 태어난다면 이번 총선뿐 아니라 다음 대선에서도 이길 수 있다. 새로운 정치적 시기가 오고 있다.” 

- 왜 새로운 시기인가. 

“지금 우리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기틀을 만드는 대전환기에 와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말기에 가서 주변을 싸고 있던 정치 실세의 장난질로 인해 3·15부정선거를 겪었고, 나라가 대혼란에 빠졌으며,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가 있었다. 이후 50년 이상의 격변기를 지나 그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다가 다시 몰락했고, 국민의 마음속에서 떠났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태어났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잘한 게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다.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모든 면에서 국체가 흔들리고 공정 평등 같은 기본 덕목이 혼란에 빠졌다. 역사의 추가 우로 갔다가 다시 좌로 왔는데, 다시 우로 가기보다는 중간에 있어야 한다.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으로 얘기한다면 이제는 합의 시대로 가야 한다. 합의 시대는 건강사회다.”


보수, 통합 논의 전에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 건강사회란 무엇인가. 

“내가 말하는 건강사회는 정의가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고, 구성원들이 공정을 향해서 끝없이 노력해가며,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말한다. 국민은 애국심과 자율성을 갖고 제 할 일을 하는 나라다.” 

-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문재인 정부는 인사(人事)를 할 때도 내 편만 챙긴다. 그것이 공정한 것인가. 문재인 정권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청와대 정부’도 허용돼선 안 된다.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지 내각에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비서실의 보좌를 받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내각에 지시해야 한다. ‘청와대 정부’는 위헌적이다.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막아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율성이다. 자율성이 자꾸 없어지는 것 같다. 언론인이나 교육자, 법조인도 모두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 포은 정몽주가 강조했듯 각자가 정명(正名)사상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언론은 언론답게, 법조는 법조답게 바르게 살라는 것이다.” 

- 정치권에서 보수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제가 국회의장 할 때 사무총장을 맡았던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한국당, 유승민 의원, 안철수 전 대표 등이 통합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참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안철수 전 대표가 빠지고 유승민 의원 측과 한국당이 통합하면 도로 새누리당이 될 수 있다. 한국당이 거듭나려면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해야 한다. ‘진박(진실한 친박)’에 앞장섰던 이들, ‘친박’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울타리에서 행세했던 이들은 스스로 정계를 떠나야 한다. 3선 이상 중진 가운데도 자신을 바쳐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후배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통합의 의미가 있다. 한국당이 아니라 외부에 구심점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기존 보수당 내 양질의 의원을 합쳐서 중도 보수당이 태어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다.” 

-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단식까지 하면서 선거법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폐지, 지소미아 유지 등을 주장했다. 

“과거에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박정희 독재에 맞서 단식하던 때가 떠올랐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매우 비극적이다. 황 대표가 많은 벽을 느꼈을 것이라고 본다. 선거법은 경기의 룰이므로 거대 야당이 반대할 경우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게 적합하지 않다. 내가 아직 의장이라면 패스트트랙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결국 다 무너지는 것 아닌가. 최소한 여당과 거대 야당은 합의가 돼야 한다. 합의되지 않으면 연기해야지, 그것을 밀어붙이면 역사에 또 다른 흠집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황 대표가 야당 책임자로서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사리사욕,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인은 암적 존재

정의화 전 국회의장(오른쪽 두 번째)이 2018년 2월 부산 동구 초량동에 정의화기념관을 개관했다. 이곳에는 의장 재임 시절 활동 자료와 개인의 사진 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정의화 전 국회의장(오른쪽 두 번째)이 2018년 2월 부산 동구 초량동에 정의화기념관을 개관했다. 이곳에는 의장 재임 시절 활동 자료와 개인의 사진 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대화와 타협이 없는 여의도는 그야말로 ‘식물국회’ 그 자체다. 수많은 민생법안이 국회에 쌓여 있다. 

“20년간 정치를 하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조화와 균형, 그리고 대화와 타협이라고 확신했다. 매사를 조화롭게 해결하고 균형감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 정치란 상대를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정신으로 접점을 찾는 일이다. 내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선언하면서 ‘이제 이 법이 통과된 이상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지 못하면 우리 국회는 식물국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전 의장도 공수처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대통령과 친인척, 정권 실세 등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의 비위를 독립적으로 다룰 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공수처는 검사, 법관, 고위직 경찰의 비위까지 수사하게 된다. 정 전 의장은 공수처의 무소불위 권력을 우려하면서, 공수처는 또 누가 감독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기소를 독점하는 검찰 권한을 수평적으로 분산하는 것뿐이라는 공수처 찬성론자의 주장과는 사뭇 다른 의견이다. 

“조국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기 며칠 전 나를 찾아와 한 시간 반 정도 얘기를 나눴다. 그와 우리 집안은 약간의 인연이 있다. 선친이 웅동중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 조 전 장관의 아버지와 고향이 같다. 그때 조 전 장관에게 몇 마디 조언했는데,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을 막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비선출직 권력인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의 장에 대한 임면권이 대통령에게 있다 보니 그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게 된다. 따라서 이들을 선정하는 것은 내부 추천위원회의 절차를 따르고, 대통령은 요식 절차로 사인만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그들 기관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권력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대통령께 전했는지 모르겠다.” 

-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민주주의 국가란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 주인이 주인 행세를 제대로 못하고 또 주인이 주인답지 못하면 민주주의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우리 헌법 제1조에 국민이 주인임을 명시하고, 7조에는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임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출된 대통령부터 모든 국가공무원이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가 결여돼 있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국가 백년대계보다는 자신의 영달, 혹은 자기가 속한 당과 지역의 이익에만 함몰돼 있어 안타깝다. 한마디로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이 아니라 직장인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강하다. 영혼 없이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매몰된다면 그러한 정치인은 독약이며 악성 암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그런 정치인을 걸러내야 한다.”


거리 정치는 국력 낭비, 불행의 씨앗

- 여의도 정치가 실종되다시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등장했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는 나라가 되도록 정치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자주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거리 정치가 다반사가 됐다. 최근 조국 전 장관 사태 이후에는 거리 정치가 양극으로 나뉘는 것을 보면서 총성 없는 내전 같은 섬뜩함도 느꼈다. 이는 국력의 낭비일 뿐 아니라 또 다른 국가적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결국은 대의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이 현상이 만성화되면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를 존중하고 국정을 국회에서 논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정치인이 대오각성해야 한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행정수반으로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깊이 성찰하고 국민이 하나로 화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 전 의장은 당리당략보다는 중용을 강조한 합리적 보수주의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 전 의장에 대해 “마키아벨리의 말을 따르면 비르투(virtu·탁월함, 능력)랄까, 용기, 결단력, 담대함, 사려 깊음을 지닌 인물”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회선진화법’과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둘러싼 분란의 중심에 정 전 의장이 있었는데,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하며 결연한 태도를 보여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정 전 의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를 위한 경제 5법과 노동 3법을 직권상정해서 통과시켜 달라고 압박했다. 의장의 직권상정은 천재지변이나 여야 합의가 아닐 경우 위기 상황에서만 가능한데, 당시가 경제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연휴 때 영종도 공항에 나가보시라! 수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현실인데 국회의장이 임의로 경제위기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당시 경제가 어렵긴 했지만 어떠한 지표도 경제위기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경제는 심리란 말이 있는데 국회의장이 경제위기라고 하면 대외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은 불문가지 아닌가. 더구나 무리해서 직권상정이라도 한다면 ‘야당이 벌떼처럼 일어날 것이고 정국은 혼란이 가중될 것이며, 나라 경제는 더 나빠질 것’이라며 각계에 호소했다.”


젊은 정치인 양성기관 만들겠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일본의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같은 후진 양성기관을 만들어서 젊은 정치인을 키워내고 싶다. 현실적으로 국내에 그대로 벤치마킹하는 것은 맞지 않고, 불가능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자기 일을 하면서 집중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받고, 정치적 덕목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정치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그런 기본이 갖춰지려면 자기 주변에서부터 헌신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시대에 맞는, 수정된 후진 양성기관을 부산에서 만들어보고 싶다.” 

- 요즘 운영하는 민주시민학교는 그와 다른 것인가. 

“그것은 일반 시민 대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쟁 원인을 분석한 결과, 독일 국민의 민주시민의식 부족 탓에 히틀러가 나왔음이 밝혀졌다. 건전한 시민정신이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민주시민학교를 열고 있다. 

그런데 후진 양성기관은 앞으로 정치를 하고자 하는 2030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자 한다. 장기적으로 최연소 총리였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최연소 대통령인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같은 이를 키워내고 싶다. 이곳을 졸업한 이들이 정치인이 되든, 기업인이 되든 장래의 일을 도모할 때 이곳 이력이 도움이 될 것이다. 긴 안목을 갖고, 새해엔 실행에 옮길 생각이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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