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유튜버 ‘덕자’, 눈물의 방송 중단 선언
계약 종료·중도 해지 시 채널은 회사 소유?
인기 얻으면 독립·이적하는 유튜버들
유튜버 이탈 막는 장치 ‘채널 소유권’ ‘전속계약’
주인 없어도 광고 수익 꾸준히 나와
‘장자연 사건’ 이후 연예인 표준계약서 만들어져
유튜버 표준전속계약서, MCN 설립 요건 강화 시급
[GettyImage]
인기 유튜버가 방송 중단한 이유
유튜버 ‘덕자(본명 박보미)’가 유튜브 채널 ‘덕자전성시대’에 올린 마지막 영상에서 시청자와 구독자에게 “방송을 중단한다”고 말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2019년 10월 18일 유튜버 ‘덕자(본명 박보미)’의 유튜브 채널 ‘덕자전성시대’에는 ‘마지막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서 덕자는 “선생님(덕자가 시청자를 지칭하는 애칭) 죄송해요”라며 끝내 눈물을 터뜨려 팬들은 물론 시청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덕자의 갑작스러운 ‘막방(마지막 방송의 줄임말)’으로 이날 한때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는 ‘덕자’가 오르내리기도 했다.
덕자는 2018년 1월부터 개인 실시간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에서 방송해온 인기 BJ로, 얼마 전까지도 유튜브에서 ‘덕자전성시대’라는 채널을 운영했다. 실제 산골에서 살고 있는 덕자는 ‘귀농’을 콘셉트로 시골에서 보내는 일상과 먹방(음식 먹는 방송) 콘텐츠를 제작해 올린다. 유튜버 구독자 수는 30만 명. 100만·200만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대형 유튜버 정도는 아니어도 3년차 유튜버 덕자 또한 ‘잘나가는 유튜버’ 축에 속한다.
인기 유튜버가 유튜브 광고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한 달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달한다. 그런 유튜브 방송을 덕자가 하루아침에 접겠다고 선언했을 땐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알고 보니 덕자는 방송을 더는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덕자가 소속돼 있던 A기획사에서 덕자의 유튜브 채널을 회수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친정집에 보물을 두고 나온 셈이다. 유튜버에게 채널은 방송하는 ‘일터’인 동시에 저작물(방송 콘텐츠)을 보관하고 수익을 내는 ‘보물단지’나 다름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금까지 나온 언론 보도에 따르면 덕자와 A기획사가 체결한 계약서에는 ‘계약 종료 또는 계약 중도 해지 시 덕자의 유튜브 채널은 회사 소유가 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유튜버가 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를 대비해 기획사가 자신들(회사 측)에 유리하게 계약서 조항을 만들어놓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흘러나온다.
한편 2019년 5월 전속계약 체결 당시 덕자와 A기획사는 유튜브 광고 수익을 ‘5대 5’ 비율로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보통 ‘8대 2’ 혹은 ‘7대 3’ 비율로 유튜버가 기획사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관행을 고려할 때 덕자의 수익 배분율이 낮다고도 볼 수 있다.
계약 종료하면 채널은 회사가 소유?
그러나 양측이 ‘5대 5’ 정도로 수익을 나누기로 한 것은 계약 당시 2년차 유튜버 덕자의 초기 투자비용 혹은 활동 지원비용 등을 고려한 조치로 추정된다. 대신 A기획사는 보전(補塡) 차원에서 덕자의 유튜브 편집자 월급과 영상 제작비용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덕자 사건’의 관건은 A기획사가 덕자에게 계약 내용을 제대로 이행했느냐 여부다. 언론 보도를 토대로 볼 때 사실상 A기획사는 계약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A기획사의 덕자에 대한 초기 투자도 활동비 지원도 턱없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덕자의 방송은 장을 본 뒤 음식을 만들어 먹는 ‘먹방’이 주를 이루는데, 재료비는 물론 소품비도 덕자가 자비로 부담했다. 덕자는 “계약 기간 기획사 측에서 지원한 방송 소품이라고는 성냥 한 상자와 1m 높이의 대나무 막대 4개가 전부”라고 털어놓았다.
A기획사는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 영상 제작 및 편집 활동 지원뿐 아니라 매니저·PD 등 전담인력조차 제대로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지원을 미룬 사이 매달 영상편집자 3명의 급여는(550만 원) 덕자의 지갑에서 빠져나갔다. 덕자가 계약 해지 전까지 약 5개월간 소속사에서 수익으로 배분받은 금액은 대략 2200만 원이다. 월평균 440만 원을 받은 셈이니, 덕자로서는 편집자 월급 주기에도 모자랐을 듯하다.
덕자는 “기획사 측에서 계약 초기 편집자를 바꿀 생각이 있느냐고 해서 예전부터 함께해오던 편집자와 앞으로도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별다른 말이 없었다”면서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진 뒤 다시 편집자 급여 지원에 대해 문의했고, 그제야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게 맞다고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를 호소하는 이는 덕자만이 아니다. 웹툰 작가 서모 씨가 2017년 A소속사 전신인 B사와 계약을 중도 해지했다가 웹툰 연재 페이스북 페이지 계정을 회수당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기획사의 유튜버 채널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다소 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계약 해지 조항이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덕자가 법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만 25세 성인인 덕자가 계약 당사자로서 계약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책임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덕자의 주장대로 기획사가 덕자에게 계약 내용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설명 의무 위반 여부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인기 유튜버 독립으로 울상 짓는 기획사
이처럼 부당해 보이는 계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유튜버가 기획사와 계약하는 것은 복잡한 법 조항 때문이다. 유튜브를 시작하는 유튜버 대부분이 저작권과 세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획사에 이를 일임하는 것이다.덕자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A기획사 대표 또한 유명 유튜버 C씨. C씨는 자신의 방송에서 “계약서를 확인하지 않고 서명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A기획사는 어떤 곳일까. A기획사는 연예기획사가 아닌 ‘다중채널네트워크(MCN·Multi Channel Network)’ 형태를 띠고 있다. MCN은 유튜버의 저작권 관리뿐 아니라 수익 창출, 자금 지원, 제품, 프로그래밍 등 도움을 주는 기획사다.
문제는 연예기획사와 달리 MCN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현행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연예기획사 등록제를 도입해 일정 요건을 갖춘 기획사만 사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작물 관리와 수익 배분에 대해서도 표준전속계약서가 마련돼 있어 조항을 불공정하게 바꿀 경우 처벌을 피할 길이 없다. 2010년대 중반 생기기 시작한 MCN은 이 법안의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A사와 같이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도 규제할 장치가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기획사가 빈껍데기나 다름없는 채널을 굳이 소유하려는 이유가 뭘까. 업계에 따르면 요즘 기획사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소속 유튜버들의 ‘독립’이다. 이른바 대박 난 유튜버 중에는 기획사를 나와 스스로 회사를 설립해 직원을 고용하며 아예 사업가로 나서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인기가 많아진다 싶으면 더 좋은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기획사로 적을 옮기는 유튜버도 부지기수다.
기획사의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구독자 수도 적고 콘텐츠도 풍족하지 않던 ‘신인 유튜버’를 영입한 뒤 집중 투자해 ‘스타 유튜버’로 키워냈는데, 갑자기 독립하겠다며 유튜버가 나가버리니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탈한 유튜버의 인기가 많을수록 손해는 막심할 수밖에 없다.
‘전속계약’으로 유튜버 붙잡아
미디어 시장에서 MCN이 등장한 건 2013년부터다. 다이아TV를 비롯해 샌드박스·트레져헌터 등 대형 MCN이 줄줄이 설립됐다. 설립 초창기만 해도 신사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은 높았다. 덕분에 거액의 투자금을 확보해 이런저런 사업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수익 창출이 요원하다는 게 문제였다.거의 죽어가던 MCN 업계를 살린 건 다름 아닌 유튜브였다. 2018년 기점으로 유튜브 플랫폼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유튜브가 대한민국 주요 미디어산업으로 부상한 것이다. 디지털 총 광고비(PC·모바일 등에서 배너형 광고 또는 동영상)가 증가한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8년 처음으로 4조 원을 돌파한 디지털 총 광고비는 2019년 4조8920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수익 창출 기회가 늘어나자 MCN의 경영 지표가 회복세를 그리고 있다. 일부 기획사는 흑자 전환도 기대해볼 만한 상황이다.
그러자 신규 MCN이 시장에 줄줄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2세대 MCN은 방송물 제작하던 프로덕션이나 연예기획사인 경우가 많다. 포화 상태를 넘어 소생 불능 상태에 들어선 올드미디어를 떠나 자금이 모여드는 유튜브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현재 2세대 MCN은 방송 제작 능력은 수준급이지만, 앞서 1세대 MCN이 겪은 소속 인기 유튜버의 이탈을 막을 방안이 딱히 없다는 게 고민이다. 더욱이 대형 MCN에 비해 이들이 소속 유튜버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한정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그래서 2세대 MCN을 중심으로 한 기획사가 고안해낸 방법이 바로 유튜버의 채널 소유권 주장이다. 기획사마다 계약 조항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계약 종료 또는 계약 중도 해지 시 유튜브 채널은 회사 소유가 되며, 계약 중도 해지 시 유튜버가 위약금(최대 1억 원)을 물 수 있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 유튜브 채널이 일종의 인질인 셈이다.
주인 없는 채널이라도 광고 수익은 나와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유튜버와 기획사의 ‘전속계약’이다. 덕자 사례에서 보듯 전속계약 체결은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양상이다. A기획사 대표 유튜버 C씨는 방송에서 “기존 MCN 계약과는 다르다. 이것은 전속계약”이라고 강조했다. 전속계약을 맺는다는 건 가령 MCN이 개설한 자체 유튜버 채널에 소속 유튜버들이 출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과거 방송국이 소속 연예인을 자체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K본부 출신 연기자’ ‘S본부 출신 개그맨’이란 꼬리표를 달게 했던 방식과 똑같다.그렇다면 기획사는 유튜버한테서 회수한 채널을 어떻게 활용할까. 일각에서는 주인 잃은 채널에 다른 유튜버를 고용해 유사한 콘텐츠를 올려 채널을 더 키우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일면 수긍이 가지만 유튜브 시청 특성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구독자 혹은 시청자가 채널을 방문하고 ‘구독’을 누르는 이유는 해당 채널에 올라온 콘텐츠에 등장하는 유튜버를 보기 위해서다.
그보다는 오히려 누적 조회수를 통한 수입 창출을 고려한 조치란 해석이 좀 더 설득력 있다. 덕자 없는 ‘덕자전성시대’ 채널에 올라와 있는 영상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다. 특히 덕자가 2019년 10월 18일 올린 ‘마지막 영상’은 50일 만에 조회수 290만 회를 돌파했다. 조회수가 올라간다는 건 광고 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유튜브란 생태계에서 콘텐츠 생명력은 영원하다. 한번 탄력 받으면 앞으로 쭉 치고 나가듯, 30만·50만·70만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들은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수많은 사람에게 ‘추천 영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따라서 이 영상들은 향후 100만·200만·300만 조회수를 기록할 테고, 꾸준히 수익을 창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역주행’은 요즘 콘텐츠 시장이 주목하는 현상 중 하나다. 역주행은 오래전 올라온 콘텐츠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주목받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로, 이른바 ‘역주행 기록하는’ 콘텐츠는 수많은 ‘짤방(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인터넷상에 올리는 재미있는 사진·그림·동영상)’ 같은 2차 저작물을 만들어낸다. 덕자가 노래하고 춤추던 유튜브 영상이 느닷없이 인기를 얻어 역주행한다면, 해당 채널의 영향력이 커지는 건 시간문제다.
표준전속계약서, MCN 설립 요건 강화 시급
‘장자연 사건’을 겪은 다음 공정거래위원회는 연예인 전속계약 실태를 조사해 공정한 계약을 위한 표준계약서를 마련했고, 이후 불공정 계약 논란은 차츰 잦아들었다. [스포츠동아]
덕자 사례는 2009년 대한민국 연예계를 뒤흔든 불공정 계약 파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 조연으로 출연한 고 장자연 씨는 연계기획사로부터 갖은 고초를 당하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씨가 매니저 월급은 물론 스타일리스트 인건비, 미용실 비용까지 자비로 부담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씨 사건을 겪은 다음 공정거래위원회는 연예인 전속계약의 실태를 조사해 공정한 계약을 위한 표준계약서를 마련했고, 이후 불공정 계약 논란은 차츰 잦아들었다.
시청자와 소통하는 즐거움을 이어가고 싶은 일부 유튜버는 자신의 채널을 키우기 위해 모든 비용을 자비로 부담한다. 그만큼 채널에 대한 유튜버의 애정이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유튜버들이 공들여 키운 채널을 ‘계약 종료 또는 계약 중도 해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기획사에 양도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덕자 사례와 장자연 씨의 죽음이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불공정 계약이란 이름으로 만나게 된 것은 유튜브 세상에 공정한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덕자 사건을 계기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튜버와 기획사 간 불공정 행위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직권조사로 불공정 계약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것이다. 실태 파악만큼 중요한 것이 앞서 언급한 표준전속계약서다. MCN 설립 요건 강화도 시급히 마련해야 할 사항이다.
'신동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