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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문제를 단순히 ‘인구 숫자’에 국한해 생각해선 안 된다. 새 생명이 많이 태어나면 그만큼 나라가 젊어지고 생산 활동 인구가 많아진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정반대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2067년에는 돈을 벌고 세금을 내는 생산연령인구(15~64세) 비중이 45.4%밖에 안 되고, 이들이 낸 세금으로 공짜 진료와 혜택을 받는 비생산 인구(65세 이상) 비중은 46.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인구 비중이 세계 1위가 될 것이라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에 세금을 낼 젊은이 수가 더 적어지고, 혜택을 누리는 노년 인구가 많아진 구조를 상상해보라. 출산을 포기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살아갈 미래다. 이 지경에 이르면 나라 안팎에 노동력이 부족해 해외 노동자를 적극 유입하는 취업, 결혼이민 등이 활발해질 것이다. 그날이 오면 한민족 특유의 형질(形質)도 변하지 않을까 싶다.
출산율을 걱정할 때면 뇌리에 스치는 에피소드가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적으로 베이비붐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역시 6·25전쟁이 끝난 이후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를 맞이했다. 필자 역시 6·25전쟁 직후에 태어난 세대이므로 생생하게 떠오른다. 전국에 아이들이 넘쳐나 국민학교(초등학교)는 3부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 반에 70~80명의 아이가 앉아 있었으니,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었다. 산동네 ‘하꼬방(판잣집)’에서 살던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나눠주는 옥수수빵이 주식과 다름없었다.
이에 정부는 1960~70년대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며 ‘둘만 낳아 잘 살아보자’는 출산 억제 정책을 폈다. 이른 나이 결혼이 일반적이던 그 시절에는 실수로 생긴 아이를 떼기 위한 온갖 민간요법이 난무하기도 했다. 양잿물을 마시거나 뜨겁게 달군 수은을 마시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해외 유학파나 미국 뉴스를 접하는 여성들 사이에선 성관계 직후 콜라를 성기 안에 들이붓는 콜라피임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좀 더 완벽한 피임법으로 난관(나팔관)을 묶거나 정관을 묶는 영구 피임 시술이 시작됐다.
다양한 피임법이 난무하던 그때
그 시절에는 좁은 단칸방 60촉 백열등 밑에서 부부가 할 만한 재미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라디오나 흑백 TV를 통해 나오는 연속극이 유일한 엔터테인먼트였다. 취침 시간이 이른 것도 당연지사. 그러니 아기가 태어날 확률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혹시 흰색 봉고 앰뷸런스를 기억하는가. 1960~70년대 정부 지원을 받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 차에 복강경 대롱과 간단한 수술도구, 이산화탄소 탱크를 싣고 각 지역 보건지소를 돌아다니며 나팔관을 묶어줬다. 난관결찰술(나팔관 묶기)이야말로 다시는 임신을 하고 싶지 않은 여성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난관결찰술 방법은 이랬다. 배꼽 근처에 가는 바늘을 삽입해 배속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고, 가스로 배속이 빵빵해지면 그 공간으로 기존의 가는 바늘을 빼고 더 굵은 복강경을 삽입해 직접 보면서(복강경으로) 아랫배 쪽에 두 개 정도의 작은 구멍을 낸 후 기구를 삽입해 나팔관을 링으로 묶는 것이었다.
자식을 여럿 둔 주부들 사이에 난관결찰술은 금세 유행처럼 번졌다. 비록 배에 구멍을 뚫어야 했지만 하루만 고생하면 매일 먹어야 하는 피임약을 안 먹어도 되고, 임신의 공포에서도 해방되니 고마운 피임 시술이 아닐 수 없었다. 산아제한에 혈안이던 정부는 난관결찰술을 받는 대도시 주부에게 아파트 분양당첨권을 주기도 했다.
반면 남성의 영구적 피임술인 정관수술 건수는 많지 않았다. 정관수술은 정자가 정액과 합쳐지기 위해 지나는 길인 ‘정관’을 차단해 부부관계 시 정액만 배출되고 정자는 나오지 않게 하는 시술이다. 난관결찰술이 수면마취를 하고 복강경으로 난관을 묶어야 하는 등 불편함이 컸던 반면 정관수술은 과정도 간단했다. 음낭의 피하에 국소마취제를 주사하고 정관이 지나가는 자리 위의 피부를 약간 절개해 정관을 자른 뒤 양 매듭을 묶으면 됐다. 당시 정부에서는 정관수술비 전액을 지원해줬지만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대부분 피임은 여성의 몫이었다.
그 밖에도 다양한 피임법이 있었다. 사정 시 질강 내에 살정제 좌약을 넣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 약은 정자의 꼬리를 떨어뜨려 운동성을 없어지게 했다. 또 자궁경부를 막는 스펀지 마개, 남성의 음경을 둘러싸는 콘돔, 자궁 내 착상을 방해하는 호르몬이 함유된 루프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한 해 100만 명 이상이 출생하자, 보다 못한 정부는 산아제한을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1977년 서울시내에 거주하는 공무원과 직장인들에게 강남 소재의 아파트 분양우선권과 주공아파트 및 주택부금아파트 분양 우선권을 줬고, 1982년에는 예비군훈련 중 정관수술을 한 사람에게 훈련 잔여 시간을 면제해줬다. 1984년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처럼 정부의 끈질긴 산아제한 정책에 힘입어 그해 정관수술을 받은 남성은 8만3527명에 달했다고 한다.
생명 잉태에 실수란 없다!
가히 생명력은 위대했다. 정부의 악착같은 출산 억제 정책과 개개인의 피임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인체의 생식 스케줄이 계획한 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한 해 100만 명 이상씩 태어나던 베이비붐 세대 이후에도 출생아 수는 적지 않았다.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 해 60만~70만 명이 꾸준히 태어났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이 자식에 대한 기대와 애착이 남달랐던 한국 여성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기억할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 피임약 광고 문구에 “실수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글이 있었다. 심지어 ‘한 자녀 낳기 운동’을 위해 ‘축복 속에 낳은 한 자녀, 사랑으로 키우자’라는 가족계획 포스터가 전국 보건소에 나붙었다. 찬밥 신세였던 둘째 셋째 자녀들은 이 같은 글귀를 보면서 “혹시 내가 실수로 태어난 건 아닐까?”라며 의기소침해지거나 부모에게 의문을 던졌을지 모를 일이다.
세계를 이끈 위인들 중에 상당수가 차자(次子)라는 통계를 어디에선가 봤다. 사랑만 듬뿍 받은 맏이보다는 어릴 때부터 습득한 눈치로 분위기 잘 맞추고 처세에 능한 면모를 자랑하는 차남차녀가 훨씬 사회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남녀가 하룻밤 술 마신 김에 저지른 실수였거나 어설픈 피임의 결과였다고 해도 이미 잉태된 아기는 행운아이며 운명이다.
인구 5000만 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남녀가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2500만분의 1정도 된다. 또 난자와 정자가 수정이 될 확률은 2억(남성은 하루 2억 마리의 정자를 생산한다)분의 1이고, 수정란이 착상에 성공해서 출산까지 갈 수 있는 확률은 1만분의 1로 보고돼 있다. 로또복권의 1등 당첨 확률이 대략 800만분의 1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 어떤 사연일지라도 생명은 실수로 생길 리 없다.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1960년대 ‘인구폭발방지 범국민결의대회 서명캠페인’을 내걸고 정관절제수술 홍보를 위해 이동차를 달리게 했던 대한가족계획협회(이하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요즘은 활동 기조를 정반대로 바꿔 저출산 대응 홍보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가임부부들이 아이 낳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사랑을 믿고 꿈꾸는 사회를 만드는 데 열정을 쏟아야 한다. 프랑스 정부가 자국의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와 영화 제작을 적극 권장했듯이, 우리나라도 문화를 통해 젊은 남녀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도록 감성에 호소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지만, 나무에 가지가 많아야 비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다. 이 당연한 이치와 순리를 자연스레 가르쳐줄 감동적인 영화와 드라마가 경자년(庚子年)에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