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은 관에 넣고 못 박았는데 돌아다니는 좀비
대중의 자발적 지지 창출할 헤게모니 능력 상실
친박에 올라탄 黃, 죽는 길 걸어
文정권은 비(非)자유적 민주주의의 한국적 표본
삼권분립·사법독립 우회하는 중우정치
민주당 집권 단축할 에너지가 용암처럼 內燃
[지호영 기자]
“시효가 다 된 과거 위에 서 있어”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9년 11월 17일 한국당 해체를 요구하면서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고 했다. 윤 교수가 일간지에 쓴 ‘자유한국당에 고함’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고 ‘행동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김 의원은 말했다.윤 교수는 칼럼에서 “한국당은 부동(不動)의 비(非)호감 1위 정당”이라면서 “국민의 신망을 상실했다”고 썼다. “민주당의 선거 승리를 돕는 최대 원군은 수구정당 한국당의 존재 그 자체”라고도 했다. 2019년 11월 29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그를 만났다.
- 김세연 의원이 교수님 칼럼을 읽고 ‘결행’했다.
“한국당이 비판받을 대목이 너무나 많다. 김 의원이 언제 결행할지 시기를 본 것 같다. 불출마 성명에 내 글 내용이 부분적으로 들어가 있어 놀랐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비슷한 게 있었던 듯싶다. 한국당 안에서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내적으로 깊은 고민이 축적된 상태에서 내 글을 읽은 것 같다. 현재의 한국당은 김 의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조직이라고 본다.”
- 문제가 뭔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근본 가치를 외면해왔다. 시효가 다 된 과거 위에 서 있다. 한국당은 지나가버린 과거를 상징한다. 관에 못을 박았는데도 그대로다. 좀비라는 표현이 굉장히 정확하다.”
- 수구(守舊)라는 건가.
“그렇다. 탄핵과 함께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장 자크 루소 식으로 말하면 국민의 일반의지로 신임을 철회했다. 문재인 정부가 한마디로 난장(亂場)을 벌이고 있다. 외치, 내치 전부 난장판이다. 안보는 차치하더라도 실물경제를 봐라. 한국당이 조금이라도 자기 변신을 했으면 어땠을까? 역사 앞에 사죄하는 진정성을 10분의 1만이라도 보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승부는 진작 갈렸다. 한국당이 제대로 된 정당은 아닐지라도 문재인 정부가 워낙 무능해 나라가 망하게 생겼으니 기댈 데는 그쪽밖에 없다는 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한국당을 지지할 수는 없다는 게 현재 민심의 흐름이다.”
- 집권 세력이 내치, 외교에서 난맥을 드러냈는데도 국민들은 왜 한국당에 기대지 못할까.
“문재인 정권이 총체적 실정을 거듭하고 있으나 국민들은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퇴락한 형태의 박정희 패러다임”
- 어떤 과거를 말하나.“한국당은 ‘박정희 패러다임’이라고 일컬어지는 권위주의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대한민국은 보수가 건국했고, 보수가 주류를 이뤄온 국가다. 대한민국이 오늘날처럼 발전했다는 점에서 보수는 어마어마한 업적을 세운 것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가 있었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다대한 성과를 창출하며 대한민국을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바꿔놓았다. ‘산업화 혁명’을 이뤄낸 박정희를 내가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박정희가 언급한 ‘한국적 민주주의’는 교도(敎導)민주주의(인도네시아 정치가 수카르노가 제창한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 체제)의 다른 이름이다. 또한 박정희 패러다임은 영민한 지도자가 모든 일을 다 챙기는 형태다. 냉전반공주의, 천민자본주의 성격도 가졌다. 시효가 끝난 지 오래다. 박정희는 자기 성취의 희생양이다. 개발 독재의 결과로 거대한 중산층이 생겨났다. 먹고살만하면 자유를 원하게 된다. 박정희 패러다임에는 시민의 요구를 수용할 여백이나 공간이 없었다. 역사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 결과로 출현한 게 ‘87년 체제’다. 박근혜라는 정치인은 박정희의 친자식이지만 정치·이념적으로는 사생아에 가깝다고 본다. 박근혜라는 존재는 유효기간이 끝난 박정희 패러다임을, 그것도 아주 퇴락한 형태인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 탄핵이 박정희 패러다임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뜻인가.
“과격한 표현이지만 박근혜 탄핵은 박정희 패러다임을 관 속에 넣고 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80%를 훌쩍 넘는 국민이 압도적으로 탄핵에 찬성했다. 탄핵은 국민의 일반의지였다. 박정희 패러다임으로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수 없다고 선언한 게 탄핵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태극기 세력이다. 태극기 세력은 숫자로도 미미하지만 공론장에서 담론의 상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유효기간이 끝난 박정희 패러다임에 매몰돼 있어서다. 한국당 또한 박정희 패러다임이라는 망령(亡靈)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헤게모니 능력을 상실한 정당”
그는 합리적 보수와 중도로 외연을 넓혀야 승리할 수 있는 선거 구도에서 한국당의 한계는 치명적이라고 봤다.“문재인 정권이 난장을 벌이니 박근혜 때로 돌아간다? 그건 아닌 거다. 황교안 대표가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데 안타깝게도 한계가 있다. ‘친박’이 황 대표를 결사옹위하고 있다고 들었다. 국회의원들이야 국회의원만 계속하면 그만이겠으나 정치인 황교안은 죽는 길을 걷는 것이다. 친박에 업혔기에 비전을 갖기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황교안이라는 정치인이 승부를 걸려면 팔, 다리를 전부 다 잘라내야 한다. 자신을 그 자리에 올려놓은 친박을 전부 잘라내야 한다는 얘기다. 황교안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굉장히 부정적이다. 총선과 대선이 다르지만 열성 지지층만으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 중도층에게 호소력 있는 정책 개발과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 지금의 한국당으로는 집권이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개념을 가져오면 ‘헤게모니’는 민중의 자발적 지지에서 오는 정국 주도권이다. 한국당은 대중의 자발적 지지를 창출할 능력을 잃었다. 오히려 여당이 헤게모니 능력을 갖고 있다. 헤게모니 능력을 상실한 정당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
- 여권이 발화(發話) 권력을 쥐고 있다는 뜻인가.
“담론(談論) 권력이라고 표현해야 할 듯하다. 정치인으로서 문재인과 황교안을 비교해보자. 문재인을 향해서는 무능할지는 몰라도 맑고 바른 사람이라고 여기는 정서가 있다. 황교안?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장관, 국무총리 지낸 사람이라는 게 먼저 떠오른다.”
- ‘황교안’이라고 하면 ‘박근혜’가 오버랩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황교안 대표는 그래서 승부를 걸 수 없다. 이대로 가도 한국당이 총선에서 명맥은 유지할 것이다. 국정 운영에서 지극히 무능하고 실물경제가 거의 파탄 상황이어서 한국당이 반사효과로 얻는 게 있다. 김세연 의원이 개탄한 것처럼 선거 두 번만 치르면 사라지지는 않겠으나 갈수록 왜소화할 것이다.”
“과잉 기대→실망→환멸의 악순환”
- 변화의 가능성은 없을까.“2013년 1월 내가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이 떠오른다. ‘야당이 우뚝 서야 정치가 선다’는 대담이었다. 새누리당이 막강하고 민주당은 폐족이 된 상황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독일 사민당의 변신 등을 예로 들었다. 당시 민주당이 워낙 지리멸렬한 상황이어서 그런 얘기를 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문재인 정권이 20년 집권론, 50년 집권론을 거론하더니 3년차 증후군이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스캔들이 연이어 터진다. 1987년 이후의 패턴을 보면 선출된 대통령에게 과잉 기대를 한다. 그러고는 실망, 환멸로 이어진다. 과잉 기대와 과잉 실망의 악순환 주기가 굉장히 짧아지고 있다.
여권의 정치 전문가들, 나쁘게 말해 ‘꾼’들이 물밑에서 온갖 작업을 다하고 있을 것이나 민심이 굉장히 화가 나 있다. 선거법을 바꾸더라도 민주당이 실질적 과반을 이루는 대승을 거두는 것은 불확실한 시나리오라고 본다.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서는 잘 인지하지 못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물론 헤게모니 능력, 담론 권력을 가진 쪽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열성적 지지층이 있으며, SNS라는 새로운 문명의 도구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들끓고 있는 민심이다. 안철수는 민심을 담아낼 그릇이 되지 못했으나 ‘안철수 현상’을 호명한 것도 민심이었다.”
- 민심이 움직인다?
“불꽃이 튀겨서 확 타오르려면 밑에 기름이 있어야 한다. 기름에 해당하는 게 민심인데 부글부글 끓고 있다. 스파크가 튀면서 민심에 불이 붙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총체적 실정 탓에 민주당 집권을 단축할 정치적 에너지가 끓고 있다.”
“창조적 파괴만이 한국당 구원”
그는 개혁 보수로 진화하고 중도로 지평을 넓히는 ‘창조적 파괴’만이 한국당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본다.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산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통합해 미래로 나아가야만 끓고 있는 민심에 응답할 수 있다고 본다.- 공화주의를 특히 강조하는 까닭은 뭔가.
“대한민국은 국체(國體)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한다. 헌법 전문(前文)과 4조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를 인도하는 정치사상은 민주주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삼두(三頭)마차다.”
- 공화주의는 사적 권리보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덕(virtue)을 강조한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의 접점과 차이를 들여다보면 뜻이 선명해진다. 자유주의는 근대 유럽의 소산(所産)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심으로 한 권리가 공동체보다 중요하다고 여긴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궤를 거의 같이한다.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만들어졌다. 인민이 주인이 되는 정책 또는 통치 체계를 뜻한다. 그렇다면 공화정은 뭐냐? republic(공화국)의 라틴어 어원은 Res publica(레스 푸블리카)다. Res publica는 ‘공적 영역’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압축해 말하면 왕 노릇하는 이가 없는 정치 공동체를 뜻한다. 공화정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이 전횡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치체제다. 삼권분립이 공화주의에서 비롯한 것이다.”
- 공화주의와 민주주의가 구별되는 지점은?
“공화주의의 핵심 가치는 ‘비(非)지배 자유(non-dominant freedom)’ ‘주권재민’ ‘삼권분립’이다. ‘주권재민’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교집합을 이루고 ‘비지배 자유’에서 구분된다.”
비지배 자유는 타인 혹은 외부로부터 어떤 지배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공화주의는 시민들이 덕(virtue)을 가지고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과 공공선에 대한 헌신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왜 지금 공화주의인가
[지호영 기자]
그가 덧붙여 말했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민중이 우중(愚衆)화하면서 붕괴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독재자, 그러니까 참주에 의한 중우정치로 민주주의가 몰락하는 것을 지켜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정적 속성을 수용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엘리트 그룹과 깨어 있는 다수 인민의 시민정신이 균형을 이루는 혼합정을 제안했다. 혼합정이 최초로 꽃피운 게 로마공화정이다.”
- 로마공화정은 집정관-원로원-민회로 이뤄졌다. 원로원-민회는 상·하원에 비견된다.
“미국 정치체제가 로마공화정을 본뜬 것이다. 미국은 최초의 본격적 공화국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전입미답(前人未踏)의 정치체제를 설계했다. 그들은 다수 민중이 우중화해 민주주의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굉장히 경계했다. 미국의 삼권분립은 철저하다. 미국 대통령 권한이 한국 대통령보다 약하다. 어떤 면에서는 의회가 가장 강력하다. 의회의 권한이 행정부를 제도적으로 제어할 수 있기에 대통령의 권한을 능가한다. 의회뿐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의 사법부도 공화정적 장치다.”
- 왜 지금 공화주의인가.
“산업화라고 칭하든, 개발독재라고 칭하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 정도의 인구와 영토를 가진 국가 중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하다. 나는 대한민국이 이뤄낸 성취를 ‘한국적 산업혁명’이라고 규정한다. 한국적 산업혁명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우리는 지금 ‘87년 체제’에 살고 있다. 87년 체제는 ‘한국적 민주혁명’의 결과다. 1987년까지를 산업화 시기, 이후를 민주화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두 번째 시기의 마지막 정권이 아닐까 싶다. 정권 교체를 하고 적폐청산을 한다며 일로매진했는데 ‘뭐가 달라졌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거칠게 말해 산업화는 자유주의가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으며, 민주화는 민주주의 이념이 추동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적 산업화에 명암이 있는 것처럼 한국적 민주화에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다. 대한민국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화주의가 해답을 줄 수 있다.”
“민심 저변에 갈증과 갈망, 분노 소용돌이쳐”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효가 끝난 시점에 폭풍 같은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고 있다고 봤다.“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상당히 컸다. 촛불 직후 유포리아(euphoria·극도의 행복감)가 대단했다. 중도층뿐 아니라 보수층에서도 다수가 탄핵에 찬성했다. 그다음 어떻게 됐나. 너무나 무능하기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팬덤에 가까운 열렬한 지지층을 갖고 있다. 적게 잡아도 30% 내외가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 굉장히 드문 케이스다. 조국 사태가 절정일 때도 30% 넘게 정권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계속 떨어져나가는 형국이다. 지지를 철회한 거대한 중간층과 합리적 보수가 마음 둘 데가 없다. 한국 사회는 평균적으로 보수 30, 진보 30, 중도 40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진보가 크게 확장됐다. 정권에 대한 지지 철회가 나타나면서 중도층이나 부동층이 늘고 있다.”
- 무당파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만약 그것을 당파라고 할 수 있다면 무당파가 거대 당파가 됐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는데 맨 정신 가지고는 한국당을 지지할 수 없는 국면이다. 민심의 저변에 갈증과 갈망, 분노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민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민심 안에 폭풍 같은 에너지가 용암처럼 내연(內燃)한다.”
그는 “세계적으로 ‘탈민주주의’ 흐름이 이어진다”면서 “비(非)자유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의 한국적 표현(表現)이 문재인 정부”라고 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뿌리를 내리는 듯 보였다. 일극 체제와 동행한 게 사상적으로는 신자유주의다. 근대 유럽에서 고전적 자유주의가 자기 개혁의 시도로 민주주의를 끌어와 태동한 게 자유민주주의라면 신자유주의는 비민주적 자유주의다.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는 자유를 강조하고 민주주의는 평등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적 평등보다 자유를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문제는 극단적 부의 양극화다. 1970년대 말부터 한 세대 동안 신자유주의가 실험됐다. 좌파의 시각에서 보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發) 재정위기는 세계 공황이다.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적 요소를 최소화하려는 비자유적 민주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삼권분립·사법독립 우회하는 중우정치”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런 측면이 있다.“트럼프가 전형적 사례다. 비자유적 민주주의자들은 직접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삼권분립, 사법독립을 우회해 국민 다수의 이름으로 정책을 구사하는 중우정치의 특징을 보인다. 그러면서 권위주의적 통치로 질주한다. 중남미에서 좌파적인 비자유적 민주주의가 실험되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대표적 사례다. 동유럽 민주화의 모범이던 헝가리와 폴란드를 봐라. 빅토르 오반 헝가리 총리가 민주화 투사 출신이다. 민주화 투사가 국민의 뜻을 앞세워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있다. 비자유적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사법권력의 대통령 권력으로 종속화, 시민사회의 대통령 권력으로의 예속화, 언론 통제가 일어나고 있다.”
- 한국도 비슷한 것 같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다. 비자유적 민주주의의 한국적 표현이 문재인 정부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한 게 직접민주주의 아닌가. 선출된 권력 중 가장 중요한 게 의회고, 대의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의회민주주의다. 대통령에게 저항하는 정치세력이 의회에 버티고 있으니 국회를 우회하거나 식민화하려고 한다. 선거법 개정은 국회를 식민화하려는 시도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장악했으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평정했고, 언론도 거의 장악했다. 신문보다 중요한 게 방송인데 공중파를 완전히 장악했다. 장기 집권을 장담했기에 물밑에서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됐으리라고 추론한다. 어떤 청사진에 따라 이렇게 진행됐다고 가정하면 20년 집권론, 50년 집권론을 장담할 요소가 구비된 것이다.”
- 끝으로 개인적 질문을 하려고 한다.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라는 평가를 듣는데 동의하나.
“비판적으로 보면 일종의 딱지 붙이기다. 칼럼으로 처음 언론에 데뷔한 게 어디인 줄 아나? 1994년 한겨레다. ‘한겨레 논단’이라고 해서 1면 대표 칼럼이었다. 3개월간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와 함께 격주로 썼다. 그 뒤로는 한겨레에서 연락이 없다. 뭔가 안 맞았던 거다. 북한 문제 이런 데서 나랑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그때는 내가 진보 지식인으로 일컬어졌다. 지금도 사회, 경제 영역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본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중도 지식인’이라고 하더라. 그러더니 지금은 보수로 불린다. 보수는 보수인데 앞에 듣기 좋은 낱말을 붙이더라. 한국 사회에서 보수 지식인으로 딱지가 붙는 게 지식인에게는 긍정적이지 않다. 지식인이 플러스, 마이너스를 따지는 게 중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으나 담론 시장에서는 진보가 더 주목받는다. 한국 보수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신동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