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집중, 모든 사안 주도한 ‘청와대 정부’
인사참사, 김종천 음주, 김태우 폭로…
정무수석은 ‘버럭’, ‘훈계조’ 김의겸은 ‘아내 탓’…
하명수사·감찰무마 사건 靑 개입 흔적
靑 출신 출마 예정자는 ‘역대급’…‘마음은 콩밭’
월권을 결단, 오만을 당당, 무능을 순진으로 말해서야
위기마다 ‘공격지수’ 높은 인물 투입한 文의 부메랑
‘탈권위, 야당과 소통하는 靑’, 초심으로 돌아가야
[청와대 제공]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를 소개할 당시를 잊을 수 없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읽어가면서 인선 배경을 설명할 때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국민들께 보고드릴 중요한 내용은 대통령이 직접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런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고, 어느 순간 청와대 참모진만 보이기 시작했다. 국무총리도 장관도 ‘청와대 바라기’로 변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예외가 없지는 않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임 기간 내내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물론 홍장표 전 경제수석과 소득주도성장의 속도 조절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그나마 그뿐이었다. 이낙연 총리도 또 다른 장관 누구도 청와대와 갈등을 빚지 않았다. 국정이 그만큼 원활하게 돌아갔기 때문일까.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로서 제 기능을 잘 수행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국민은 지금쯤 행복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청와대는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문제였다.
“SNS로 ‘부통령놀이’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인사수석실은 첫 내각의 국회 인사청문회 때부터 부실 검증 논란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5대 인사원칙, 즉 병역기피, 위장전입, 세금 탈루, 논문 표절, 부동산 투기 발견 시 임용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 논란이었다. 그래서 첫 후보 사퇴 사례가 나온 것이 집권 한 달여 만인 2017년 6월 16일이었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그때 이미 조국 민정수석 책임론이 불거졌다. 당시 부실 검증의 책임을 물어 경질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이전에, 조국 전 장관을 민정수석에 임명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조국 정국’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2019년 ‘3·4개각’ 때 ‘인사참사’가 터지고 만다. 장관 후보자 7명 전원이 비위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첫 내각 때는 그나마 집권 초기라는 점을 고려해 야당들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는 달랐다. 청와대가 스스로 5대 인사 원칙을 더 강화한 7대 기준을 내건 뒤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2019년 5월 28일 ‘인사참사’ 책임을 물어 조현옥 인사수석을 교체했지만, 이때도 조국 민정수석은 살아남았다. 당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렇게 지적했다.“문 대통령은 가장 책임이 큰 조 민정수석은 그대로 놔두고 깃털인 조 인사수석만 경질했다…조 민정수석은 요즘 대통령 참모라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자제 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페이스북 정치로 온갖 국정 현안에 끼어들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부통령놀이를 하고 있다…문 대통령의 빗나간 조국 사랑은 머지않은 장래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이 말이 씨가 되고 만 격이다.
‘王실장’이 많은 이유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와 임종석 비서실장 (왼쪽부터)에 대한 인선을 직접 발표하고 있다. [변영욱 동아일보 기자]
“임종석 실장은 왕실장이 아니라 영(young)실장이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낙연 총리 후보자와 더불어 임 실장을 소개하면서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밝혔다.
“임 비서실장 임명을 통해 청와대를 젊고 역동적이고 탈(脫)권위, 그리고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로 변화시킬 생각이다…젊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대통령과 참모가 격의 없이 대화하는 청와대, 참모들끼리 토론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청와대 문화로 바뀌길 기대한다…야당과도 대화하고 소통하는 청와대로 만들겠다는 제 의지의 실천이기도 하다. 확 달라진 청와대를 기대하셔도 좋다.”
이런 ‘영실장’이 왕실장으로 불리게 된 계기는 2017년 12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레바논을 방문했을 때다. 당시 임 실장을 국방부 차관과 외교부 차관보가 수행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이런 논평을 내놨다.
“청와대는 해외 파병 장병을 대통령 대신 격려하는데 비서실장 정도는 돼야 한다며 임 실장을 보냈다고 한다…이들 부대는 송영무 국방장관이 불과 한 달 전에 방문해 격려하고 왔는데 비서실장이 가야 대통령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된다고 하니, 임 비서실장이 군의 수장보다 더 높은 왕실장, 실세 중의 실세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또 다른 계기는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 유럽 순방 기간 중 임 전 실장이 국방부 장관과 차관, 국가정보원장, 기타 군 지휘관들과 함께 철원 화살머리 고지를 방문했을 때다. 철모에 선글라스, 여기에 지휘봉까지 든 임 실장은 영락없는 군 통수권자의 모습이었다. 당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렇게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전횡에 임종석 비서실장도 기고만장하고 있다…시찰 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본인이 내레이션 입혀 청와대 왕실장 정치를 본격화했다.”
‘공격지수’ 높은 노영민의 등장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도 ‘왕실장’으로 불렸다. 2017년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정책 공약을 총괄했던 그는 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면서 ‘왕수석’ 칭호를 얻었다. 이후 2018년 11월 정책실장에 임명됐고, 그때부터 ‘왕실장’으로 불렸다. 김 전 실장 임명 직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런 지적을 내놨다.“문 대통령이 김수현 신임 정책실장에게 포용국가 3개년 계획과 비전2040을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김 실장은 경제부총리의 경제장관회의와 사회부총리 중심의 사회관계장관회의 등 두 트랙을 종합적으로 조율하고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대통령이 김 실장 임명과 관련해 ‘왕실장 임명’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왕실장 김수현은 불과 7개월 만에 김상조 현 정책실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이유가 뭘까. 한 언론이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은 이렇다. “현실론자인 김 전 실장은 공격적인 행보보다는 수세에 몰린 뒤 해명하는 방어적인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공격지수가 떨어진 점이 하차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청와대 정부’의 내부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듯하다. 이런 속에 2019년 1월, 진짜 왕실장이 나타났다. 노영민 현 비서실장이다. 노 실장에게는 왕실장 앞에 형용사까지 따라붙는다. ‘원조 친문’ ‘실세’ ‘강성’ 따위다. 이런 위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전임 임 전 비서실장이 직접 그의 인사를 발표하는가 하면, 김의겸 당시 대변인은 그의 첫날 청와대 일정을 소상하게 브리핑하는 이례적 일까지 벌어졌다. 화제가 됐던 그날의 브리핑은 이랬다.
“노 실장을 수행했던 모 행정관은 이에 대해 ‘오늘 만보 행군을 했습니다. 여민관 비서동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통해 걸어 다니느라고 힘들었습니다’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거의 ‘노비어천가’ 수준이다.
‘통제 불능 靑’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전 수사관이 2019년 2월 12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그다음 달인 12월, 복귀 후 조사를 받던 김태우 전 감찰반원이 청와대 재직 당시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비위 의혹을 수사하다 징계를 받았다고 폭로하고 나섰다. 그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투자 관련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까지 제기했다. 대상은 고건 전 국무총리 아들 고진 씨,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같은 유력 인사들이어서 논란이 더했던 사안이다.
연이어 2019년 1월 6일, 노영민 실장 임명 이틀 전에 불거진 것이 바로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행정관이 2017년 9월 육군참모총장을 국방부 인근 카페에서 만난 뒤 인사 자료를 분실한 사건이다. 그즈음 청와대는 그야말로 통제 불능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탈권위와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청와대에 위기 징후가 나타날 때마다 문 대통령은 더 강성 인물을 기용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노영민 실장의 경우가 대표적이지만, 김의겸 전 대변인 기용도 만만치 않은 선택이었다. 김 대변인의 논평은 언제나 단호하고 단정적이었다. 더욱이 훈계조였다. 대표적인 것이 앞서의 민간인 불법 사찰 관련 논평이었다.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의겸의 원투스리 ‘펀치’
당시 김태우 전 감찰반원의 폭로에 맞대응을 한 것에 대해 비판론이 제기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언론들이 ‘청와대가 왜 6급 수사관에 대해서 급이 맞지 않는 대치 전선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저한테 ‘급이 맞지 않는다’고 나무라지 마시고, 언론인 여러분도 다 같이 이제 더 이상 급이 맞지 않는 일 하지 맙시다.”
전임 박수현 전 대변인과 사뭇 다른 그의 태도에 모두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후 그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물러났을 때도 다시 한 방을 더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더 큰 한 방은 그가 물러나면서 남긴 입장문이었다.
“너무 구차한 변명이어서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떠나는 마당이니 털어놓고 가겠습니다. ‘네, 몰랐습니다.’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제가 알았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이 또한 다 제 탓입니다. 내 집 마련에 대한 남편의 무능과 게으름, 그리고 집 살 절호의 기회에 매번 반복되는 ‘결정 장애’에 아내가 질려 있었던 겁니다. 궁금한 점이 조금은 풀렸기를 바랍니다.”
아내를 나쁜 여자로 만든 그는 최근 다시 또 우리에게 한 방을 선사했다. 논란을 빚은 그 부동산을 매각하고 남은 차액은 전액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방송에 출연해 2020년 총선에 출마하느냐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남겼다.
“유용한 곳에 제가 쓰임새가 있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한 게 또 사실이다.”
그의 한 방엔 끝이 없다. 이 정도면 그에게는 ‘왕대변인’이라는 칭호를 부여해야 마땅할 것 같다. 그의 후임 고민정 대변인도 못지않다. 여전히 단정적이고, 단호하며, 훈계조다. 여기에 하나 더, ‘정서호소 기술’까지 장착했다. 최근 불거진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 와중에 검찰 소속 전직 청와대 감찰반원이 사망하자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정서호소 기술’ 장착한 고민정
“엉뚱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갔던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도 보이지 않는다…잠시라도 멈춰질 줄 알았던 기관차는 다른 목표를 향해 폭주했고, 고인에 대한 억측은 한낱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마음이 쓸쓸하다.”쓸쓸함 속에 감춰진 비난의 화살촉이 날카롭다. 이 정도면 이제 그녀도 ‘왕대변인’으로 불러줘야 할 것 같다. 김의겸 전 대변인과 마찬가지로 고 대변인도 내년 총선 출마설이 돈다. 그녀도 ‘자기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말이 나온 김에 이 문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정부’ 논란을 유발했던 그들이 이제 국회로 몰려드는 현상이다. 2020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전직 청와대 참모가 한둘이 아니다. ‘청와대 정부’를 넘어 ‘청와대 여당’ ‘청와대 국회’까지 만들 기세다. 과거에도 청와대 참모진의 출마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거의 역대급인 것 같다. 마음이 콩밭에 있었던 그들이 청와대 근무 시절 얼마나 업무에 충실했는지 의문이다. 부여된 권한만큼 제 역할을 했느냐는 것이다.
노영민 실장 투입 이후 청와대 비서실은 안녕할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노 실장 임명 직후인 2019년 1월 29일, 김현철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이 전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 돼 사표를 냈다.
역대 최강 ‘청와대 정부’ 자초
“50~60대는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야 한다…젊은이들은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신남방 국가를 가면 ‘해피 조선’이 된다.”논란이 된 발언이다. 이후 3월 29일에는 부동산 투기 논란을 빚은 김의겸 당시 대변인이 사표를 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윤규근 총경의 버닝썬 사건 연루설이 불거진 것도 3월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조국 정국을 거쳐, 최근에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下命)수사’ 논란에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이들 사건사고 곳곳에서 청와대 전·현직 직원들의 직·간접적인 개입 흔적이 묻어난다.
‘월권’을 ‘결단’이라 말하고, ‘오만’을 ‘당당’이라고 말하며, 무능을 순진이라고 말할 순 없다. ‘영실장’이 떠나고 ‘원조 친문’ ‘왕실장’이 온 이후 ‘청와대 정부’의 폐해는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 밝힌 ‘젊고 역동적이고 탈권위, 그리고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하고도 거리가 더 멀어진 느낌이다. 11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 당시 청와대 실장들 뒷자리에 배석한 강기정 정무수석이 벌떡 일어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해 ‘버럭’한 일이 상징적 사건이다. 초심을 잃은 청와대 비서실 운영은 문 대통령의 임기 말 또 다른 레임덕 변수가 될지 모른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역대 최강 ‘청와대 정부’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다. 더 강성 인물을 기용하면서 자초한 일이다.
[신동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