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교육과정 짜고 자녀 진학 지도하는 한국 엄마들
“내가 실수해 아이 미래 망치면 어쩌나” 만성 스트레스
무질서와 혼란 속에 이권 챙기는 사교육업계는 ‘현대판 친일파’
교육 망치는 중산층의 ‘상류층 코스프레’
교실 살려야 대한민국에 미래 있다
[지호영 기자]
서울 서대문구 주택가 골목길을 걷다 마주친 학원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거대한 느낌표 세 개가 가슴을 뚫고 들어와 박히는 듯했다. 오늘 대한민국의 수많은 엄마가 이 ‘신화’를 좇느라 신음하고 있다. 박재원(56) 사람과교육연구소 부모연구소장은 이런 현실을 비판하다 목이 메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데 누구도 학교교육을 믿지 않아요.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면 엄마가 모든 걸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제가 ‘엄마표 영어’ 하는 분들한테 농담처럼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당신들은 정말 위대하다’고요. 엄마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대신 짜고 있잖아요. 수학 선행학습도 마찬가지예요. 우리한테는 일상화됐지만 아이 수학 교육을 엄마 계획대로 끌고 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엄마가 교육부 장관, 교육감, 교장, 교무부장 구실을 다하는 상황에서 정작 교육 당국은 뭘 하고 있나요.”
지치고 불안하고 미안한 엄마
박 소장이 이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힌 건 교육 문제로 고통받는 수많은 가정 사례를 매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82년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했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일반적인 사회 진출 기회를 놓쳤고, 이후 상당수 운동권이 그랬던 것처럼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그에겐 대치동 한 국어논술전문학원 상담소장 일이 주어졌다. 입시 컨설팅과 진학지도 전면에 서서 족집게 상담을 했다. ‘박보살’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제법 능력을 인정받았다. 마침 대치동 대형 학원이 앞다퉈 분원을 만들던 시기다. 자연스레 그의 활동 범위 또한 전국으로 넓어졌다.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문득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이른바 ‘대치동 플랜’에 따라 명문대에 합격하는 학생 수는 극히 적었다. 그런데 전국 각지에서 ‘대치동 따라잡기’가 벌어지는 참이었다. 수많은 학부모가 ‘내가 부족한 탓에 아이를 잘 이끌어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그를 붙들었다. 길을 알려달라고 사정했다. 사교육계의 탐욕이 나라 전체를 망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더는 그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박 소장은 2008년 ‘대한민국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는 책을 펴내며 기존 행로에서 이탈했다. 대치동 한복판에서 목격한 수많은 실패 사례를 세상에 알려 ‘사교육을 받아야만 성공한다’는 신화를 깨뜨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11년이 흘렀다. 그사이 박 소장은 전국을 돌며 학부모를 만나 “사교육을 믿지 말라”고 외치는 ‘운동가’가 됐다.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달렸다. 그러나 사교육의 힘이 날로 세지고, 부모들은 더 깊은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울컥 눈물이 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는 자신이 만나는 우리나라 엄마 유형을 이렇게 소개했다. 지친 엄마, 불안한 엄마, 독한 엄마, 무기력한 엄마, 숨고 싶은 엄마, 미안한 엄마…. 그를 찾아오는 학부모 상당수는 자녀 교육 때문에 뭔가 바쁘기는 한데 딱히 잘되는 일이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요즘은 한번 뒤처지면 못 따라가는 세상이라는데 내가 손놓고 있어서 우리 애를 망치면 어쩌나’ 수시로 불안감이 치솟는다고 고백하는 엄마도 많다. 적잖은 이가 ‘아이를 너무 심하게 대하는 게 아닐까’ 자책하지만, 동시에 ‘지금 좋은 엄마 됐다가는 나중에 원망을 들을지 모른다. 독한 엄마로 살아 나중에 감사 인사 받는 게 낫다’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 결과가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이들의 고통이 상당 부분 풀릴 것이다. 그러나 그럴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게 박 소장 설명이다.
“자녀의 명문대 합격을 성공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돼 있죠. 사교육 본산인 대치동에서도 수많은 학생이 들러리만 섭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고통은 매우 커요. 경쟁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반복적인 패배의 기억이 아이들 안에 계속 쌓이죠.”
박 소장에 따르면 교육 선진국으로 통하는 핀란드는 아이가 어릴 때 경쟁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각별히 보호한다. 경쟁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강화하는 아이는 소수에 그치며 나머지 다수는 심리적 피해를 입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핀란드에서 평가에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고등학교 이후”라며 “아이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기 경쟁의 그늘
2019년 12월 10일 서울 노원구 광운대에서 열린 2020 대입 정시전형 대비 진학설명회에서 수험생 학부모들이 배치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과학고 같은 특목고에서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탐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기도 전에 소위 선행학습, 심화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미리 배웠다. 또 그렇게 배운 답을 남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잘한다는 보상을 받아왔다. 이들의 특징은 답을 손에 쥐여주는 교육에 익숙해 대학 교육에 대해서도 같은 기대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간/기말고사 등에서 기출문제와 다른 형태의 문제를 내면 항의한다. 프로젝트나 졸업연구같이 창의성을 발휘해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주면 매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이들은 특목고 출신이라는 우월감과 자존감이 강한데 고학년이 될수록 자신이 일반고 출신 학생과 구별되는 면이 줄어든다는 것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이 경우 자신만의 길을 찾기보다 치의대 진학이나 사법시험/로스쿨, 해외 유학 등을 통해 다시 다른 학생과 구별되는 ‘소속’을 찾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박 소장은 이 내용을 언급하며 “경쟁에서 탈락한 아이들뿐 아니라 성공한 아이들조차 그 과정에서 적잖은 내상을 입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풀이했다. “이런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겠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는 교육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본 질서가 학교 들어가기 전엔 나이, 입학 후엔 학년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조기교육이 나이를 무너뜨리고 선행학습이 학년을 무너뜨리고 있어요. 극도의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승자 패자 가릴 것 없이 모든 아이가 피해자가 되죠. 이익을 보는 건 사교육 집단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사교육업계가 일제 때 친일파와 다를 바 없다고 봐요. 거기 아직 제 후배들이 많은데, 다들 한때는 나름의 가치와 이상이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그들이 뭐라고 강변해도 자신들의 잘못을 정당화할 수 없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다 박 소장은 또 한 번 울컥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확대돼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공교육은 유명무실해졌다는 것. 자녀 교육은 언제부턴가 부모가 막대한 비용 및 시간을 들여 직접 감당해야 하는 고된 일이 돼버렸고, 그것이 현재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저출산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는 것.
그동안 박 소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교육 당국도 대학 입시에서 사교육 영향이 큰 수능 비중을 낮추고, 교사가 학생을 평가해 작성하는 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이는 것을 추진했다. 그러나 여론의 반대가 거셌다. 최근 이른바 ‘조국 사태’를 계기로 대입 과정의 공정성 확보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자 결국 교육부가 손을 들었다. 정부는 2019년 11월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중산층의 분노
중산층 학부모가 사교육의 거짓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재원 소장.
박 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는 오랫동안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람입니다. 그게 교육적으로 옳다고 믿어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정부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는 이상으로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민심을 외면하는 건 바른 정치가 아니고요. 이른바 진보진영은 정부를 탓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왜 이토록 강력하게 정시 확대를 원하는지 먼저 이해하고, 그 감정을 존중하면서 상황을 개선해나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박 소장 생각에 문제의 근원은 각자도생의 교육 현실에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류층이 자녀 사교육에 쓰는 돈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이른바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사교육 중심지 거주자들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자녀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대치동’이 굴러가는 건 아니다. 사교육업계를 먹여 살리는 돈의 상당 부분은 상류층을 흉내 내는 중산층에게서 나온다. 이들은 생활비를 아끼거나 심한 경우 빚을 내가면서 자녀를 학원에 보낸다.
“남는 돈으로 사교육을 시키는 상류층은 일단은 논외로 삼아도 됩니다. 문제는 안간힘을 쓰는 중산층이죠. 그들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산과 정보를 자녀에게 쏟아붓기 때문에 매우 절박해요. 조금이라도 아이 미래에 피해가 생기는 것, 그동안 들인 노력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죠. 사교육 전문가들은 그런 부모 마음을 자극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합니다. 극소수 성공 사례를 부풀리고, 수많은 실패 사례를 감춰 중산층이 사교육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요.”
박 소장은 최근 대입의 불공정성 문제에 분노하고 정시 확대를 강력히 주장한 여론 주도층이 바로 이들 중산층이라고 봤다. 문제는 사교육이 번성한 상황에서 대학 입시는 결국 돈 많은 사람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박 소장은 이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산층이 현재의 체제에 문제의식을 갖고 무리한 ‘상류층 코스프레’를 멈춰야, 말하자면 상류층과 중산층을 분리해야 비로소 새로운 교육 환경이 열릴 것이라는 게 박 소장 생각이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는 2018년 정부가 진행한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에 교육 전문가로 참여해 현실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밝혔다.
“당시 제가 시민참여단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한 결과로 대학에 가면, 그러니까 교사의 학생 평가가 입시에 많이 반영되면 공교육이 정상화된다. 반면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학원에 가서 시험 대비 강의를 듣는 게 대학 진학에 더 유리한 시스템을 만들면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길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대부분이 공감하세요.”
박 소장은 당시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한다.
‘수능을 상대평가 체제로 계속 두면 상당수 학생은 최선을 다해도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게 된다. 반면 절대평가로 바꾸면 모든 아이가 나름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은 성취감을 느껴야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그의 발언이 끝났을 때 역시 많은 사람이 이 의견에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대학입시에서 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이고 수능을 절대평가화하자’는 주장에 찬성하는 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박 소장은 그 원인을 학교와 교사, 즉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봤다. 많은 사람이 ‘교사가 학생을 제대로 평가하겠느냐’ ‘수능 성적 말고 다른 걸로 학생을 선발하려면 대학이 고등학교에서 제출하는 여러 데이터를 평가 자료로 쓸 텐데 그걸 어떻게 믿느냐’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그동안 공교육 현장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본 거죠. 그 경험 때문에 모든 교육적 논의가 물거품이 되는 걸 반복적으로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부모들은 변화를 원하는데, 그 길로 가는 게 참 힘들구나’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박 소장 얘기다. 그래서 그는 “지금은 중산층 학부모가 공교육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각자도생의 길을 걸으며 엄청난 스트레스와 좌절을 느끼고 있는 중산층이 공교육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갖게 된다면, 바로 그 순간 우리 교육 지형이 달라지며 거대한 변화가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이다. 그는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뒤에 해도 충분하다. 지금 교육 당국은 교실을 살리는 데 모든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자녀 콜라보 모델
박 소장은 학부모들에게도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을 뒤쫓느라 고생하지 말고 잠시 멈춰 서 현 상황을 냉정하게 성찰해볼 것”을 권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은 성공 사례 분포와 개인의 성공 확률을 구분해야 봐야 할 때다. 국민 절대 다수가 사교육 시스템에 의존하다 보니 이른바 입시 성공 사례가 다 거기서 나오는 듯 보인다.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려면 반드시 부모가 일찍부터 책임지고 관리하며 좋은 학원의 도움을 받아야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기 쉽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의 자발성을 중심에 두고 부모가 적절한 지원을 더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례도 없지 않다는 게 박 소장 얘기다. 그는 “이번 수능 만점자 가운데도 학원에 의존하지 않은 아이가 있지 않았나”라며 “이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전자를 ‘부모관리 모델’, 후자를 ‘부모자녀 콜라보 모델’이라고 할 경우 성공 사례 분포는 95대 5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요즘 명문대 합격자 절대 다수는 일찍부터 부모와 학원의 철저한 관리를 받아온 애들이라는 거죠. 그걸 부정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 수치가 내 아이의 성공까지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세상에는 막강한 경제력과 정보력을 가진 부유층이 정말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섣불리 경쟁에 뛰어들 경우 그들에게 철저히 이용만 당할 수 있어요. 제가 대치동에서 본 수많은 실패 사례가 그걸 증명합니다.
자녀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라면 지금은 용기를 갖고 후자의 길을 선택할 때입니다. 남보다 앞서는 걸 교육 목표로 삼지 말고 아이의 성장에 주안점을 두세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경쟁력이 생기면 아이는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냅니다.”
이때 박 소장이 강조하는 건 독서다. 그는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 쓰는 능력이 결국은 아이 미래를 결정짓는다”며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학원에서는 결코 아이가 이런 능력을 갖도록 만들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제가 부모들께 권하는 건 아이가 어릴 때 관심 분야 책을 충분히 많이 읽게 하라는 겁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그걸 교과목에 적용하도록 도와주고요. 본격적인 경쟁은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해도 충분해요. 현재 중학교까지의 성적은 대학 입시에 전혀 반영되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아이가 초·중학교 시절 무한 경쟁에 시달리지 않게 해줄 수 있어요.”
박 소장은 이 방법이 아이의 성장을 도울 뿐 아니라 ‘입시 성공 확률’ 또한 높여준다고 강조했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교실에서 바로 이런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고, 장기적으로 사교육 과열 현상도 사라질 것이라는 게 박 소장 생각이다.
공교육 정상화 출발점
박재원 소장은 공교육 정상화의 첫걸음은 교실 살리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GettyImage]
“예를 들어 서울대의 경우 경제적으로 어느 분위에 속하는 신입생이 최소한 얼마 이상은 입학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기준으로 입시가 공정하게 운영됐는지 여부를 판단하자는 겁니다. 그 결과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배분하는 방식으로 대학의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입시 공정성 시비가 크게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 소장은 학생부 작성 과정의 공정성 강화 방안도 제안했다. 학생부를 기초로 한 입시 전형에서는 교사가 작성하는 세특, 즉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내용이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일부 교사들이 사교육업체나 학부모가 작성해온 대로 세특을 써준다는 비판이 계속돼왔다. 또 일부 학교가 명문대 진학 실적을 높이고자 우등생에게 학내 대회 입상 실적을 몰아주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박 소장은 이를 막자면 학내에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상위권 중심의 학생부 작성, 스펙 몰아주기 등은 학내 구성원에게 곧 소문이 난다. 재학생과 학부모가 이것을 문제 삼고 개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문제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2025학년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됩니다. 2028학년도부터 수능이 절대평가로 바뀌고요. 이제부터라도 ‘그래, 공교육에 희망을 둬야 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교실에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이 계획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저는 미래 교육은 오직 교실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미래 사회의 화두인 다양성을 가진 공간이 교실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균질화된 경쟁 집단인 학원 교육에 맡겨두겠습니까. 언제까지 엄마보고 알아서 아이 대학을 보내라고 할 겁니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교육 당국이, 그리고 학부모들이 변화의 움직임을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박 소장의 당부다.
'신동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