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착용 공식 권고, 한국과 싱가포르뿐
질식·호흡기 트러블·심장마비 원인, 박테리아 온상
정부 허가 보건용 마스크 585종
일회용 마스크, 소각돼 미세먼지로 돌아와
[GettyImage]
2019년 12월 11일 아침 한 지상파방송의 기상캐스터는 날씨 소식을 전하면서 시청자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하게 권했다. 초미세먼지(PM2.5·지름이 2.5㎛보다 작은 먼지) 농도가 높아 정부가 올겨울 첫 비상저감조치를 취한 다음 날이었다. 서울 강북구와 경기 남양주, 충북 음성이 88㎍/㎥으로 평소 대비 4배 가까이 높다는 게 이유였다.
이처럼 정부와 많은 언론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나쁨’ 단계 이상의 예보가 나오면 거두절미하고 ‘황사용 마스크(KF80)’ 착용을 권장한다. 마스크 착용은 미세먼지에 맞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손쉬운 자기보호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사람마다 건강과 처한 환경이 다른데, 언제 마스크를 써야 하고, 얼마 동안 착용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과연 오염 단계에 맞춰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과학적 기준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다.
일반적인 천마스크(방한대)는 입자가 큰 먼지나 모래 등을 일부 막을 수 있지만 매우 작은 초미세먼지는 거르지 못한다. 초미세먼지는 워낙 알갱이가 작다 보니 폐포(허파꽈리)까지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데다 황산염, 질산염, 암모니아 등 이온 성분과 금속화합물, 탄소화합물 등 유해물질로 이뤄져 각종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서울에서만 1763명이 초미세먼지로 조기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는 2012년 370만 명이 초미세먼지로 조기 사망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정보를 접하다 보니 저마다 초미세먼지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보건용 마스크를 찾게 된다.
하지만 초미세먼지에 대한 공포가 과장된 부분도 있다. 예컨대 한국에선 초미세먼지가 ‘가장 위험한’의 의미를 담은 ‘1급(first)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기관은 ‘암을 일으키는 물질’ 가운데 하나인 경구피임약, 자외선, 석면, 벤젠 등과 함께 ‘1군(group 1)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1군’이 ‘1급’으로 잘못 알려져 공포를 키운 것이다.
정부 허가 보건용 마스크 585종
2019년 4월 현재 정부가 의약외품으로 허가한 보건용 마스크는 585종이다. 이는 미세먼지 차단 효과에 따라 KF(Korea Filter)80, KF94, KF99로 구분된다. KF80은 평균 0.6㎛ 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이상 걸러내고 KF94와 KF99(방역용 마스크)는 평균 0.4㎛ 크기의 입자를 각각 94%, 99% 이상 차단한다. 숫자가 높아질수록 미세먼지 차단 효과는 좋아진다. 하지만 이를 착용했을 때는 그만큼 숨쉬기가 더 불편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스크 재질은 주로 부직포로, 여기에 ‘충돌, 간섭, 중력침강, 확산’ 등의 물리 작용을 하는 마스크 필터가 있어 미세먼지를 차단하게 된다. 의사들이 많이 사용해온 미국 N95 마스크는 KF94와 기능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N95의 ‘N’은 ‘Not resistant to oil’, 즉 기름 성분에 대한 저항성이 없다는 뜻이고, 바이러스 차단율이 95%라는 뜻이다.이런 마스크도 얼굴에 제대로 착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착용했을 때 완전히 밀착돼 공기 누출이 거의 없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또 수염이 있거나 얼굴 구조상 밀착이 어려운 이들도 있다. 어린이의 경우 얼굴 크기에 맞는 마스크를 고르는 게 중요하다.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호흡 불편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리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숨을 내뱉을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마스크 안에 갇혀 들이마시는 숨에 몸 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산소 부족은 질식, 호흡기 트러블, 심장마비도 일으킬 수 있다. 또 마스크 안에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번식할 수 있다. 사람이 내뱉는 수분이 체온과 접촉해 온도가 높아진 마스크에 퍼져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기생할 수 있는 ‘온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국립직업안전건강연구소(NIOSH)는 N95 마스크가 더러워지거나 손상될 때 교체하고, 오염된 장소에서 8시간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방역 마스크라 해도 폐기능 저하, 가려움, 천식 등을 초래하는 이산화황, 이산화질소, 오존, 일산화탄소와 같은 가스와 수분 등은 막지 못한다. 그러니 마스크를 믿고 초미세먼지의 ‘매우 나쁨’ 조건에서 무리하게 운동을 하거나 장시간 머무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
마스크 착용 공식 권고, 한국과 싱가포르뿐
또 다른 문제는 우리 정부가 권고하는 마스크 착용 기준이 과연 얼마나 과학적이냐는 점이다. 정부는 최근까지 초미세먼지가 35㎍/㎥만 넘어도 ‘나쁨’ 단계라며 국민 모두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신동아’ 2019년 4월호 ‘웬만하면 마스크를 벗어라’ 보도 등 일부 언론의 문제 제기 등을 반영해 수정안을 내놓았다. 2019년 11월 11일 국가기후환경회의와 질병관리본부, 대한의학회는 일반인·어린이의 경우 PM2.5가 51㎍/㎥ 이상일 때, 노인·임산부·기저질환자 등 취약계층은 초미세먼지 36㎍/㎥ 이상일 때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초미세먼지와 관련한 정부의 대응 권고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의 경우 PM2.5 55~149㎍/㎥ 구간, 영국은 PM2.5 71㎍/㎥ 이상에서 일반인이 야외 활동을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와 대기환경 기준이 비슷한 대만에서는 PM2.5 50㎍/㎥까지는 운동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운동하는 게 건강에 더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미세먼지 오염에 대응해 마스크 착용을 공식적으로 권고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싱가포르뿐이다. 싱가포르 환경청은 PM2.5 250㎍/㎥ 이상이 24시간 지속될 때 ‘N95 마스크를 착용하면 노출을 줄일 수 있다’고 언급하는 정도다. 마스크 착용을 강요하거나 효과를 확신하는 표현도 없다.
미세먼지에 대한 과학적 담론을 다룬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의 저자인 장재연 아주대 의대 교수는 “정부의 대응이 조금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했다.
“미세먼지 오염 농도와 연계해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미세먼지 오염도 기준이라는 것은 환경관리의 목표 기준이고, 오염 측정 자료 역시 대표값이어서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며, 같은 오염도에서의 반응도 개인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그런 권고 자체가 비과학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빼고 미세먼지 오염도에 따라 마스크 착용을 공식적으로 권유하는 기관이나 정부도 없습니다. 싱가포르 환경청만이 일평균 250㎍/㎥일 때 착용을 권하고 있는데, 싱가포르에서 그처럼 오염도가 높은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권고입니다.
마스크 착용 부작용 경계해야
마스크 부작용은 건강 취약계층이 더 심합니다. 이 때문에 외국에선 오히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마스크 부작용에 대한 주의를 환기합니다. 건강한 성인들은 다소 불편해도 건강에 큰 부작용까지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반대 논리로 접근하고 있어 마스크로 인한 부작용을 키우고 있습니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게 만드는 꼴입니다.”-마스크 안에서 내뱉는 수분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온상이 될 수 있고, 내뱉는 이산화탄소가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가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마스크 판매사들은 그런 점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마스크를 몇 시간 이내로 사용하는 게 좋은지 등에 대해서도 안내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 정부의 경우에도 마스크 착용 시에 불편함(주로 숨쉬기 불편함을 의미)을 느끼면 바로 벗으라는 권고만 공식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어렵게 할 수 있다거나 마스크 안의 공간이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로 작용해서 숨쉬기 불편하게 만든다는 지적은 있지만, 마스크 재질마다 상태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마스크를 몇 시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해선 병원의 어떤 과 의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는지요. 내과, 가정의학과 의사와 상담하라는 조언도 있는데요.
“흔히 호흡기 질환이 있거나 노약자일 경우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기 전에 의사와 상담하라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의사들이 판단하는 것은 미세먼지로 인한 영향에 관한 것이 아니라, 마스크 착용으로 숨쉬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 미세먼지를 막으려다가 오히려 환자에게 더 피해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해외 의학계나 보건 분야 정부기관에서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 때 마스크 착용을 권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미국흉부학회는 보호용 마스크 착용은 사람들을 숨쉬기 힘들게 만들어서 육체적 부담을 주며, 1회 호흡량을 감소시켜 호흡 빈도를 높이고, 폐포와 폐에서의 환기를 감소시키며, 심박출량 감소와 같은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만성 호흡기 질환, 심장 질환, 기타 숨쉬기 어려운 의학적 조건이 있는 사람들은 N95 마스크를 사용하기 전 의사 등에게 확인하라고 밝히고 있다.
장기간 사용 위생상 안 좋아
마스크 착용에 관한 환경부 홍보 그림. [환경부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보건용 마스크 판매회사들은 제품에 착용 시 생길 수 있는 이런 부작용 등에 대해선 안내하지 않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를 나열하고 있다. 이런 식이다. ‘산소농도 18% 미만의 밀폐된 장소에서 사용하지 말 것’ ‘수건, 휴지 등을 감싼 다음 그 위에 착용하지 말 것’ ‘세탁하여 사용하지 말 것’….
이처럼 보건용 마스크 착용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무조건 쓰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마스크는 개인이 선택해서 쓰는 개인 보호구이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마스크를 착용해도 불편함이 없고 심리적으로나마 안정된다면 착용하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마스크는 (일반인에게) 호흡에 불편감을 줄 수는 있으나 부작용이 크지 않다. 장기간 사용할 경우엔 위생상 부작용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환경적 차원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대부분의 마스크는 일회용품이므로 재활용되지 못하고 모두 소각 처리된다. 장 교수는 “미세먼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인데, 결국 마스크는 소각 처리 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미세먼지가 돼 자신에게 돌아오는 아이러니가 있다”고 말했다.
[신동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