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샌프란시스코 통신

실리콘밸리 파고드는 인조고기의 풍미

말 안 하면 구별 못할 만큼 감쪽같은 맛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20-01-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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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학술지 ‘네이처’ 웹사이트엔 인간이 육식을 시작한 시기가 260만 년 전이라는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 고기를 먹어왔으니 많은 이에게 육식은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콩 같은 식물을 이용해 만든 인조고기(대체육)가 점차 식단을 파고들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등을 중심으로 첨단기술을 활용한 진짜 같은 인조고기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중심가에 있는 우마미 버거 매장.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중심가에 있는 우마미 버거 매장.

    2019년 12월 3일 오전 11시 30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유니버시티 애비뉴 ‘우마미 버거(Umami Burger)’를 찾았다. ‘감칠맛’ 정도로 풀이되는 일본어 ‘우마미’를 상호로 삼은 이 버거집은 실리콘밸리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창업자는 일본계가 아니지만 일본 음식을 좋아하는 뉴욕주 태생 남성이다. 2009년 로스앤젤레스에 1호점이 문을 열었고 2013년 팰로앨토에 진출하자마자, 곧 지역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이날 영업 시작과 동시에 첫 손님으로 매장에 들어갔다. 마치 대학 도서관처럼 꾸며놓은 실내를 보며 “인테리어 독특하네”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라틴계로 보이는 잘생긴 청년이 다가와 메뉴판을 건넸다. 주문할 음식을 정하기 전 음료를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일단 물을 한 잔 청하고, 물을 갖고 온 청년에게 메뉴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임파서블 버거, 이건 뭐죠?” 

    “네, 그건 채식주의자 손님들을 위한 버거예요.” 

    청년이 주저 없이 답했다. 임파서블 버거를 만드는 회사 측이 이것을 ‘고기 먹는 사람(meat-eater)을 위한 버거’로 알리고 싶어 하는 걸 감안하면, 청년 직원이 제품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짐짓 별말 않고 임파서블 버거를 주문했다.



    임파서블 푸드의 임파서블 패티

    우마미 버거에서 판매하는 임파서블 버거 및 감자튀김.

    우마미 버거에서 판매하는 임파서블 버거 및 감자튀김.

    메뉴판을 보니 해당 버거는 비슷한 모양의 다른 메뉴보다 3달러 더 비쌌다. 오리지널 임파서블 버거가 16달러로 감자튀김(1달러 50센트)을 추가하니, 세금과 팁 3달러까지 더해 지불액이 총 22달러 8센트가 됐다. 

    직원이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라고 소개한 버거에는 구운 양파, 일본식 된장과 겨자를 섞은 이 집의 고유한 소스, 그리고 오이피클, 상추, 토마토 등 일반적 버거 재료 외에 두 가지 특징적 재료가 들어 있었다. 우유와 계란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 ‘비건(vegan)’을 위한 치즈 한 장, 그리고 임파서블 패티 두 장이다. 

    임파서블 패티는 인조고기로 햄버거 패티를 만드는 실리콘밸리 기업, ‘임파서블 푸드’에서 만든 제품이다. 이 패티를 넣어 만든 임파서블 버거를 파는 식당이 팰로앨토 주변에만 우마미 버거 말고도 7곳가량 더 있다. 같은 패티를 쓸 뿐 버거 조리법은 매장마다 차이가 있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주문한 버거가 나왔다. 임파서블 버거라고 적힌 종이깃발을 단 나무꼬챙이가 버거에 꽂혀 있었다. 위에서 보고, 돌려서 보고, 가까이에서 봐도 그저 일반적인 버거로 보였다. 

    한입 베어 물었다. 육즙이 조금 흘러나왔다. 인조고기로 만든 패티라는 걸 알고 먹어서인지 소고기 특유의 냄새가 나진 않았다. 아무리 비슷하게 만들어도 역시 인조고기는 인조고기인가 싶었다. 그런데 조금씩 씹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고기 패티 버거를 씹을 때와 다른 점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뭐지? 이건 완전히 고기 씹는 느낌인데?’ 절로 탄성이 나왔다. 패티를 미디엄 레어 정도로 살짝 익혔는지 약간의 선홍색도 보였다. ‘이거 정말 장난 아니네’ 싶다. 그렇게 약간 놀라면서 버거를 먹고 있는데 누가 말을 붙였다. 옆 테이블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듯 보이는 노년의 인도계 남성이었다.

    스탠퍼드 의대 교수가 인조고기 회사 창업한 이유

    “어, 임파서블 버거 먹고 있네? 내가 여기서 이것만 30개 이상 먹었다네.” 

    내가 먹는 메뉴를 보고 동지 의식을 느낀 건지 묻지도 않았는데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임파서블 푸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팻 브라운 스탠퍼드 의대 명예교수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했는데 MIT 동문회 차원에서 브라운 교수를 인터뷰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임파서블 버거는 나 같은 비건에게 무척 고마운 음식”이라는 말만큼은 신뢰가 갔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은 대체로 육식을 하지 않는데, 그도 채식만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그가 언급한 임파서블 푸드 창업자 팻 브라운은 스탠퍼드 의대 생명화학과(Biochemistry) 교수이자 소아과 전문의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그는 2009년 대학에서 안식년을 얻자 진짜 고기 같은 인조고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에도 콩으로 만든 소이버거(soy burger) 제품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까지 즐길 정도로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 브라운 교수가 높은 품질의 인조고기 개발에 나선 이유다. 그는 매일 미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를 대신할 식물성 고기를 개발해 동네 식료품점에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공급하면 동물 보호와 환경보호 두 가지 목표를 다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2011년 회사를 창업했다. 비영리 언론 ‘퍼시픽 스탠더드(Pacific Standard)’에 실린 기사, ‘어느 식물성 버거의 전기(The Biography of A Plant-Based Burger)’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금도 임파서블 푸드 회사 웹사이트엔 ‘가축을 길러 도축할 때 필요한 토지와 물, 대기오염물질의 양을 각각 100%라고 가정하자. 인조고기를 생산할 땐 그 토지의 4%면 충분하다. 물은 그중 13%밖에 사용하지 않고, 대기오염물질은 11%밖에 배출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임파서블 푸드는 창업 이후 빌 게이츠, 구글벤처스 등 굵직한 투자자의 지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을 비롯해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지 1만5000여 개 매장에 제품을 공급한다. 자금 사정이 좋아 당장 주식시장에 상장할 계획도 없다고 한다. 기업 투자 정보를 전하는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에 따르면 2019년 12월 5일 현재 임파서블 푸드가 받은 총 투자 금액은 6억8750만 달러(약 8000억 원)에 달한다.

    인조 다짐육으로 만든 덮밥의 맛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홀푸즈마켓 매장 내 대체육 코너.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홀푸즈마켓 매장 내 대체육 코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임파서블 버거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 근처 식료품점 홀푸즈마켓 매장에 들렀다. 인조고기로 만든 다짐육을 사기 위해서였다. 유기농 신선식품을 비롯해 품질 좋은 식재료를 판매하는 이곳 매장의 냉동고 한쪽에는 ‘대체육(Alternative Meats)’ 코너가 마련돼 있다. 다양한 제품 가운데 ‘비욘드 미트(Beyond Meat)’에서 만든 ‘비욘드 비프(Beyond Beef)’ 한 팩을 골랐다. 소고기 다짐육을 대체하고자 만든 인조 다짐육이다. 제품을 만든 회사 이름이 우리말로 ‘고기를 넘어서’라는 게 의미심장해 보였다. 이 회사는 임파서블 푸드보다 2년 먼저 창업했고, 2019년 5월 나스닥에 상장했다. 

    집에 와서 인조 다짐육 요리를 시작했다. 소고기 다짐육으로 요리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다. 제품에는 냉동 유통 제품이니 3일 정도 해동한 다음 사용하라고 돼 있었는데, 찬물에 봉지째 담그니 두 시간 만에 요리가 가능했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채 썬 마늘을 볶다가 인조 다짐육을 넣고 주걱으로 저어가며 볶았다. 토마토소스를 붓고 매운 고춧가루와 소금도 약간 넣었다. 요리를 하면서 보니 인조 다짐육에선 소고기에서 나타나는 핏빛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소고기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다소 뭉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평소처럼 요리를 만든 뒤 밥 위에 얹어 딸에게 줬다. 인조 다짐육으로 만든 요리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맛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딸의 대답은 “응, 뭐 괜찮네”였다. 바로 “사실은 인조고기를 볶아서 만든 거야”라고 했더니 약간 놀란다. “내가 뭘 먹었다고? 그냥 고기 같던데.” 

    몇 시간 뒤 집에 들어온 아내 또한 아무것도 모른 채 음식을 먹었다. 평소보다 고소한 맛이 조금 덜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인조고기로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딸과 아내를 속일(?) 만큼 인조고기의 품질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왔다. 그렇다면 머잖아 인조고기가 실제 고기를 위협할 정도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궁금증에 다음 날 스탠퍼드대를 찾았다. 스탠퍼드대에서 음식과 주방, 식당의 미래를 연구하는 김소형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김 박사는 스탠퍼드대 디자인연구소(D-School)에서 푸드디자인 이노베이션 리서치 부문을 책임지는 디렉터다. 

    그는 임파서블 푸드와 비욘드 미트 같은 회사 제품이 대중의 인조고기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콩으로 만든 버거=채식주의자나 먹는 맛없는 음식’ 같은 고정관념을 깨는 데 기여했다는 얘기다. 김 박사는 “이들 회사가 마이너리티의 음식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고 ‘힙하다’는 이미지를 더했다”고도 평했다. 

    “깃발이 꽂힌 임파서블 버거를 주문하면 왠지 힙해 보이잖아요. 마치 전기자동차 테슬라가 처음 나왔을 때 테슬라를 타면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죠.” 

    김 박사의 설명이다. 이들 기업의 성장으로 상당수 대중은 이제 인조고기를 먹으면 환경오염과 동물 희생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인조고기가 고기를 대체하는 날

    김 박사는 세대가 바뀌면 변화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에 따르면 X세대는 음식을 고를 때 맛을 중시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음식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는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그는 이들을 규정짓는 네 가지 키워드로 투명성, 정보, 통제, 지속가능성을 꼽았다. 소고기를 예로 들면 Z세대 소비자는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길러졌는지 의미하는 축산 과정의 투명성, 소고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 축산 도축 과정의 위생 통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것과 관련 있는 지속가능성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인조고기의 경우 Z세대에게 네 가지 면에서 훨씬 매력적인 상품으로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실리콘밸리에선 임파서블 버거를 메뉴로 내놓는 식당이 갈수록 늘고 있다. 버거킹 같은 회사는 2019년 4월 일부 매장에서 임파서블 버거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12월 현재는 미국 전역에서 이 메뉴를 제공한다. 고급 식료품점을 중심으로 비욘드 미트 같은 회사 제품을 파는 곳도 피부로 느낄 만큼 증가하는 추세다. 인조고기 맛이 진짜 고기 맛 100%에 다가갈수록 이런 제품을 찾는 사람도 늘 것이다. 이런 경향이 강해진다면 정말 축산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관련 업계에 혁명적 변화도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진짜 고기 맛에 익숙한, ‘고기는 언제나 옳다’고 외치는 필자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변화 속도는 생각보다 느릴 수도 있지 않을까. 스탠퍼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날따라 고기 생각이 간절했다.



    잇츠미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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