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영국보수당 연구자’ 박지향 “무지하고 단물만 빠는 보수우파로는 힘들다”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19-12-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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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좌표는 사회민주주의

    • 조국 사태에 대한 분노는 공정하지 못함에 대한 분노

    • 평등과 공정은 다른데 이걸 파고들지 못하는 우파

    • 청와대와 여당 잘못에만 얹혀가겠다는 한국당

    • 기계적 보수통합에 목매지 말고 협력관계로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보수우파의 문제는 무지와 안일함입니다. 보수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면서도 그게 과연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아는 정치인이 많지 않아요.” 

    영국 보수당의 정체성을 통해 보수의 가치를 연구해온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반이 지나는 동안 자유한국당의 변화를 촉구해왔지만 “별로 변화가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2019년 12월 9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진행됐다.

    세금 퍼주기로 일관하는 文정부의 이념적 좌표

    그는 “한국의 보수우파가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는 것에서 정체성을 찾다 보니 철학이 부재했다. 안보가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무조건적인 ‘종북’이나 ‘빨갱이’ 프레임만 갖고는 부족하다. 현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좌표가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하고 그게 왜 문제가 있는지 파고들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했다. 

    - 현 정부와 여당이 어떤 이념적 좌표를 갖고 움직인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렇다면 그게 뭐라고 봅니까. 

    “국내 정책은 확실히 사회민주주의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모든 책임을 지고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이지요. ‘복지 확대’라는 간판을 내걸고 시장을 규제하고 세금으로 부를 재분배하려는 겁니다. 현 정부의 이념적 모델은 사회민주주의 중에서도 낡고 구태의연한 모델입니다. 1960년대 유럽을 풍미했으나 이미 세계사적으로 실패였음이 드러난 것인데 21세기 한국사회에 꿰맞추려 하고 있어요. 

    덧붙여 서양에서는 보이지 않는 강한 민족주의 요소까지 들어간, 대단히 ‘요상한’ 형태의 한국적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 김정은 정권이 지구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형태의 유일무이한 체제인 것처럼 문재인 정권도 매우 특이한 형태의 정권으로 보입니다.” 



    - 이 대목에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차이에 대해 짚고 싶군요. 

    “사회민주주의의 뿌리는 사회주의입니다. 19세기 후반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시작됩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 혁명이 금방 일어날 것처럼 예견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사회주의혁명은커녕 자본주의만 흥하니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고민이 시작된 거죠. 

    그러면서 일종의 궤도 수정을 주장하는 수정주의자들이 생겨납니다. 독일의 베른슈타인이 대표적이죠. 기존 질서를 허물고 깨부수는 ‘혁명’이라는 난폭한 방식이 아니라 의회를 거친 제도권 내에서의 개선을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하자는 겁니다. 사회주의가 1920년대 레닌과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실현됐다면 사회민주주의가 탄생한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흔이 있습니다. 

    나치즘과의 전쟁이 끝난 1945년 이후 복지국가 모델이 나왔는데 엄청난 희생을 치른 국민에게 국가와 정부가 나서서 보상해줘야 한다, 이제 국민의 삶은 나라가 지켜줘야 한다, 일자리나 사회 안전망을 정부가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이건 자본주의 틀 안에서도 모두 가능한 정책이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복지국가 모델이 다 거기서 비롯된 거라고 할 수 있지요.”

    실패로 끝난 이념 붙잡고 있는 文정부

    윈스턴 처칠(왼쪽 사진 모자 쓴 사람)은 노동당이 편 복지제도 등을 유지했으나 1979년 집권한 마거릿 대처(오른쪽 사진 가운데)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했다. [뉴시스, GettyImage]

    윈스턴 처칠(왼쪽 사진 모자 쓴 사람)은 노동당이 편 복지제도 등을 유지했으나 1979년 집권한 마거릿 대처(오른쪽 사진 가운데)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했다. [뉴시스, GettyImage]

    - 어떤 면에서는 그 당시 시대 상황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이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습니다. 1950~60년대 유럽 사회에서 복지국가는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제도’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영국도 마거릿 대처가 집권하기 전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내세워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펴나갔으니까요. 

    처칠의 보수당이 1951년에 집권하는데 이전 노동당이 편 복지제도와 가스·전기·철강 등 기간산업의 국유화 정책을 바꾸지 않습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보듯 기업이 도산하면 세금으로 다시 살리고 각종 실업수당을 지급하며 나라에서 세금을 퍼부어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을 계속 폈으니까요. 영국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당시 세계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오일쇼크에 따른 세계적 경제 불황이 닥치면서 복지국가와 고용 안정을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워지자 위기를 맞게 됩니다. 게다가 정부가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학습 효과가 생기면서 이 모델이 과연 맞느냐 하는 회의론이 부상하고요. 사회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믿음이 깨지게 된 거죠. 문재인 정부는 이렇게 이미 실패로 결론 난 이념을 붙들고 국민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으니 속이 상하고 안타깝습니다.” 

    - 도대체 왜 그럴까요.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죠. 1980년대 대학생 때 가졌던 생각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않은 채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살았다는 점에서 보면 게으른 거고요. 1980년대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귀를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반미(反美) 한다고 영어 공부도 안 하고 빵에 고추장 발라 먹던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웃음). 

    이번 조국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실제 삶과 생각이 다른 내적 갈등과 모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봐요. 이들은 학창 시절에 학습한 전체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해요. 모든 개인적인 것은 사악하고 계급, 국가, 사회적인 것은 옳고 정의롭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국가니, 사회니, 계급이니 하는 거대 개념이 몇몇 탐욕스러운 개인에 의해 악용되는 상황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잖습니까? 최저임금 올리고 국민들 호주머니를 쥐어짜서 대폭 올린 세금을 마구 풀어대는 이번 정부의 퍼주기를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막막할 뿐입니다. 

    어떻든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보수우파는 현 정부와 여당이 펴고 있는 정책 밑바닥에 깔린 이념적 정체성이 북한식 인민민주주의가 아니라 ‘우리식 사회민주주의’라는 걸 명확히 해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가치를 드높이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 끈질기게 맞붙어야 하는데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차이를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웃음) 

    “자유한국당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사회주의는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부정하고 국가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는 데 반해 사회민주주의는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지만 세금이란 수단을 이용해서 부를 재분배하는 체제로 이해하면 될 겁니다.”

    ‘바보야 문제는 공정이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양극화 현상을 보면 사회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가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사회민주주의의가 어느 정도의 양극화 완화를 지향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도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적어도 강남에 사는 아이들하고 벽촌에 사는 아이들의 출발선이 엇비슷해져야 한다는 점에서 국가가 개입해야 할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양극화를 완화한다고 세금을 거둬 재분배하는 정책은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서양의 모든 나라에서 이미 해봤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입증됐어요. 세금을 낮춰야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 일자리도 만들어지죠. 이 대목에서 강조하게 싶은 게 있는데 ‘평등’과 ‘공정’의 가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졌다. 

    “흔히들 공정함과 평등함의 차이에 주목하지 않는데 조국 사태에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건 바로 공정하지 못하다, 언페어(unfair)하다는 점 때문이죠. 이에 비해 평등은 이퀄리티(equality)입니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건 평등이 아니라 공정입니다. 강남에 사는 예닐곱 살 어린아이나 벽촌 산골에 사는 또래 어린아이에게 똑같이 돈을 나눠주는 평등 정책은 공정한 것이 아닙니다. 

    정책을 펴는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평등 정책이 훨씬 쉽죠. ‘공정한 정책’을 펴려면 재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을 달리해야 해서 기준을 정하는 데 애를 많이 써야 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평등이 사회주의자가 추구하는 가치라면 공정은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라는 사실입니다. 한국당이 이 점을 빨리 낚아채서 ‘바보야 문제는 공정이야. 우리가 너희보다 더 공정해’ 콘셉트를 들고나와야 하는데….” 

    - 그러면 ‘당신들이 공정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전까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앞으로 하겠다’고 진정성 있게 호소해야죠. 공정이 좌파의 전유물이 절대로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국민 의식 수준이 매우 높아요. 젊은이들과 이야기해봐도 세금으로 퍼주기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만큼 전보다 훨씬 많은 국민이 무조건적 평등 정책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로 무장한 정당이라면 국민이 납득하도록 집요하게 설득해야지요.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정권을 잡았을 때 영국은 우리보다 더한 퍼주기식 사회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노조 기득권을 빼앗고 실업수당을 깎았으니 얼마나 욕을 먹었겠습니까. 대처는 그때마다 국민을 대상으로 세금 퍼주기는 도움이 안 된다, 내가 펴는 정책이 국민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이런 것이 제대로 된 정치인의 모습이죠.” 

    - 한국당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인재를 키워야 한다, 개천에서 난 용을 발굴하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지만 별 성과가 안 보여요. 심지어 나한테 ‘그런 사람들을 어디 가서 찾나요?’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웃음).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라도 해서 찾아야 하는데 경상도나 강남 같은 안전하고 편한 자리는 다 자기들이 앉아 있고 새로운 인물들은 험지로 보내려 하니 그게 되겠어요.” 

    - 지금 같은 청와대와 여당의 독주는 우파 정치권을 포함해 혁신하지 못하는 보수의 자업자득이란 생각도 듭니다. 

    “한마디로 위기의식이 아직 안 보입니다. 여태까지 어려움 없이 쉽게 살면서 3선 4선 당선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나 절박함이 없어 보입니다. 청와대와 여당 잘못에 얹혀서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조국 사태로 이탈한 사람들이 왜 자기들한테 안 오는지 고민하지 않아요. 의원직을 던지고 나올 각오가 서야 하는데 말이죠.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이지만, 정당은 이념과 비전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인데 다들 각자 정파 플레이에만 몰두해 있어요. 공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공당(公黨)이라면 인물이 아니라 가치를 중심으로 뭉쳐야 하는데 말이죠.”

    전쟁에서 가장 많이 목숨 내놓은 英 엘리트들

    - 저는 가치라기보다 욕심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보수우파 정치인들이 가진 게 많다 보니 잃을 게 두려워서 용기가 없는…. 

    “비슷한 생각을 해요. 물론 대중 가운데도 보수우파가 많지만 일단 우리 사회의 소위 ‘엘리트’를 분석해보면 그들이 과연 뭘 했는지, 단것만 빨아먹고 베풀지는 않은 사람들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 역사를 보면 우리와 충격적으로 다른 단면이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비율적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계급을 아세요?” 

    그가 잠시 숨을 고른 뒤 한숨을 내뱉듯 말했다. 

    “바로 엘리트들입니다. 이튼(Eton)과 해로(Harrow)가 영국을 대표하는 엘리트 사립학교인데 처질 총리가 바로 해로 출신입니다. 그의 동급생 67명 중 무려 11명이 1차 대전 중 전사합니다. 엘리트의 전사율이 노동계급이나 중간계급보다 훨씬 높아요. 

    2차 대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가 히틀러에 항복하고 나서 영국 혼자 남게 되지요. 유럽 대부분이 히틀러에 항복하고 영국 혼자 맞선 건데 영국인에게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기억입니다. 처칠은 이때를 ‘더 파이니스트 아워(The finest hour) 즉 가장 훌륭한 멋진 시간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어떻든 이때 나치 비행단이 매일 영국 본토를 폭격했을 때 그들을 막아내고 일당백으로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도 엘리트 출신 영국 공군 장교들이었어요. 

    오죽하면 사회주의자이면서 ‘동물농장’ ‘1984년’을 쓴 조지 오웰조차 ‘영국의 엘리트들은 불한당은 아니다’라는 말로 그들을 인정했을까요. 흙수저로 태어나 이튼에 장학생으로 선발됐기에 돈 많은 엘리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평생 사회주의를 놓지 않던 사람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건 엘리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죠. 그와 대조적으로 6·25전쟁 중 전사한 서울대 학생 수는 아주 미미하다고 합니다.” 

    - 우리 사회 엘리트의 책임 의식이 약한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내 혈연, 내 집(家) 이상으로 시야가 넓지 않기 때문인데 유교 문화에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서양의 기독교 문명은 인류 전체에 대한 박애정신을 담고 있고, 일본만 해도 메이지유신 후 일왕을 꼭대기로 하고 국민 전체를 하나로 엮는 넓은 가족 개념이 자리 잡거든요. 

    내 집, 내 가족만 생각하는 우리 엘리트의 좁은 인식은 좌우 이념과 상관없다는 것이 조국 사태에서 드러났다고 봐요. 권력을 악용해 문서를 조작해서라도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식에게 대물림해야 한다는 엘리트의 천박한 인식은 좌나 우를 뛰어넘었어요. 조국 사태야말로 거짓과 위선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일관하면서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는 점에서 이른바 좌파라 불리는 이번 정부는 역대 최고급임을 여지없이 보여줬죠.”

    기계적인 보수 통합, 울림 없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019년 12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자유한국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오른쪽) 같은 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본회의 관련 민주당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019년 12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자유한국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오른쪽) 같은 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본회의 관련 민주당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 보수우파의 통합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영국 솔즈베리 총리 때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디즈레일리 후임으로 1880년대부터 1902년까지 보수당을 이끈 인물입니다. 디즈레일리가 영국 보수당을 부흥시켰다면 솔즈베리는 당을 탄탄하게 반석 위에 올려놓았죠. 

    그렇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아일랜드 문제였습니다. 아일랜드 자치 허용 문제를 둘러싸고 이념적 색채가 비슷했던 자유당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반대파들이 당을 떠납니다. 이들을 보수당으로 영입하면 압도적인 다수당이 될 것인데 솔즈베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사건건 정책에 반대할 게 뻔하기 때문에 이익보다 손해가 더 많다고 생각한 거죠. 독립적인 정파로 놔두고 필요하면 협력관계를 맺는 정책을 썼는데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현재 한국당도 머릿수만 합치는 통합에 기대지 말고 밖에 있는 사람들을 협력관계 제휴관계로 두는 게 어떨까 싶어요. 물론 이념과 가치를 같이하는 사람들과는 통합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통합을 외칠 것이 아니라 우파 정당들이 서로 협의해 2020년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밀어주는 전략 공천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겁니다. 영국 노동당과 자유당이 1910년 총선에서 ‘될 사람을 밀어주는’ 선택 공천을 함으로써 윈윈 했듯이 말이죠.” 

    -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문제는 어떻게 보세요. 

    “당연히 해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요. 하지만 새로 정당을 만들거나 박 전 대통령 때문에 다시 분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박 전 대통령은 역사 속 인물로 사라져야 합니다. 절대 더는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분열은 없어야 합니다.” 

    그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탄핵 사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도 했다.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1년 뒤 선거를 했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사회가 분열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해 거의 자포자기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봐요. 온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지지자만 보듬고 가겠다는 거잖아요. 각종 국정 난맥에 사실을 제대로 밝히고 국민한테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하고 대규모 인적 쇄신으로 수습해야 하는데 컨트롤타워가 거의 상실됐다는 느낌이 들어요. 

    주말마다 시민들이 광장에 모이는 소위 광장민주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광장에는 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어요. 선동이 있을 뿐이죠. 저는 정말 문 대통령이 임기를 무사히 마치길 원합니다. 그를 위해서 지금이라도 문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환골탈태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그럴 것 같지 않네요.”

    '신동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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