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개는 냄새로 시간을 본다

보호자 냄새 사라지는 정도로 시간 흐름 파악

  • 설채현 수의사·동물행동전문가 dvm.seol@gmail.com

    입력2020-01-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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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한 번쯤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개도 시간을 알까 하는 것이다. 일부 반려견은 마치 시계를 보는 것처럼 일정한 시간에 정확히 똑같은 행동을 한다. 과학자들이 그 비밀을 알아내고자 여러 실험을 했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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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반려견 버블이에게 제한 급식을 한다. 사료를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준다는 뜻이다. 버블이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밥 먹을 시간이 되면 가족을 돌아보며 언제 사료를 주려나 확인한다. 아침에 늦잠이라도 잘라치면 정확한 시간에 우리를 깨우기도 한다. 버블이가 시계를 볼 가능성은 작으니, 아마도 ‘배꼽시계’가 그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것일 테다. 

    개가 밥 시간을 아는 건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반려견을 키우다 보면 배꼽시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도 발생한다. 나의 첫 강아지 슈나가 그랬다. 우리 아버지는 퇴근 시간이 일정한 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쯤이 되면 슈나는 그걸 정확히 알았다. 미리 문 앞에 가 앉아 있거나, 평소 크게 동요하지 않는 바깥 소리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며 아버지를 맞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10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개, 하치

    일본 시부야역에 있는 강아지 하치 동상. [GettyImage]

    일본 시부야역에 있는 강아지 하치 동상. [GettyImage]

    개와 시간에 얽힌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 주인공은 영화 ‘하치 이야기’로 잘 알려진 개 하치다. 일본 도쿄대 우에노 교수의 반려견이었던 아키타종 개 하치는 매일 같은 시간에 기차역으로 우에노 교수를 마중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에노 교수가 도쿄에서 사망해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하치는 그날 자정까지 역에서 우에노 교수를 기다렸고 그 후 10년 동안 매일 정확한 시간에 기차역으로 나가 우에노 교수를 기다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개는 시간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을까. 

    이 궁금증을 풀어줄 연구는 많지 않다. 가장 유명한 것은 스웨덴의 농업과학대학에서 진행했다. 연구원들이 12마리의 개와 그 보호자를 관찰한 결과, 개가 시간을 이해하는 정도는 제한적이었다. 이 실험에서 보호자들은 개를 두고 외출 시간을 점점 늘렸다. 이후 집에 돌아올 때의 반응을 비디오로 녹화, 관찰했다. 결과를 보면 개는 30분 동안 혼자 있을 때보다 2시간 동안 혼자 있었을 때 보호자를 더 크게 반겼다. 그러나 4시간 혼자 있을 경우, 보호자를 반기는 정도는 2시간 혼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보호자는 이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의 반려견 슈나와 일본의 하치처럼 많은 개가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개에게 보호자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줄, 즉 시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신호가 따로 있는 것일까. 



    미국 뉴욕 버나드대 심리학자인 알렉산드라 호로위츠 교수는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놨다. 개가 시간의 변화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맡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호로위츠 교수에 따르면 많은 개는 냄새의 강도가 변화하는 정도를 인식한다. 실제로 인명구조견 또는 경찰견의 경우 냄새의 강도가 가장 약한 곳, 즉 시간이 오래된 곳부터 가장 강한 곳, 즉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은 곳을 찾아간다. 이것은 개가 시간 간격에 따라 사건을 감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각이 알려주는 정보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보자. 보호자가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 집 안에 퍼져 있는 보호자 냄새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모든 냄새를 각각 분리해 맡을 수 있는 개는 보호자의 냄새가 감소하는 속도를 파악할 수 있다. 만약 보호자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어느 정도 일정하다면 개는 집 안에 냄새가 어느 정도 남아 있을 때 보호자가 돌아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보호자가 도착하기 전부터 그의 귀가를 준비할 수 있다. 즉 개는 시간을 보는 게 아니라 후각을 통해 ‘맡는’ 것이다. 

    아직 이 이론은 가설에 불과하다. 정확한 실험을 통해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연구에서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 보호자가 돌아오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이랬다. 연구원들이 보호자의 체취가 묻어 있는 옷을 가져와 집 곳곳에서 털었다. 그러자 평소 같으면 보호자가 오기 전부터 문 앞에서 기다렸을 개가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시에 보호자가 돌아오자 아주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반기기 시작했다. 집 안에 남은 보호자의 냄새를 통해 예측한 귀가 시간이 맞아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실험도 하치의 경우까지는 설명해주지 못한다. 우리는 개에 대해서 우리와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다른 경우 또한 상당히 많다. 그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그들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에노 박사와 반려견 하치

    [©Hachiko]

    [©Hachiko]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 ‘하치 이야기(Hachi: A Dog’s Tale)’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1920년대 도쿄대 농학부에 몸담았던 우에노 히데사부로 교수와 그의 반려견 하치가 모델이다. 

    우에노 박사는 당시 시부야 역 인근 자택에서 도쿄대로 출퇴근했고, 하치는 아침 저녁 역에 나가 우에노 박사를 배웅하고 마중했다고 한다. 1925년 5월 우에노 교수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사망해 집에 돌아올 수 없게 된 뒤에도 하치의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 날마다 시부야 역 앞에서 우에노 교수를 기다리는 하치의 모습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고, 지역신문에 보도됐다. 이후 영화로 제작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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