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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서울교대 특강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지금 모험하고 도전하라”

  • 정리·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서울교대 특강

  • 2019년 11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에서 김재철(85)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특강이 열렸다. 1934년 전남 강진에서 11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 회장은 강진농고, 부산수산대를 졸업하고 원양어선 무급 선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1969년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창업한 동원산업은 50년 만에 자산 총액 기준 국내 48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계열사 한국투자금융까지 포함하면 재계 순위는 20위권 이내로 뛰어오른다. 

    맨주먹에서 출발해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구기까지, 크고 작은 인생의 파도를 넘어온 김 회장은 그 과정에서 도전 정신과 협동심 등 인성(人性)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1979년 동원육영재단을 창립하고 장학 및 교육 사업을 꾸준히 펼쳐온 이유가 여기 있다. 김 회장은 현재 서울교대를 비롯해 전국 11개 대학에 설치된 전인교육 프로그램 ‘라이프 아카데미’를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김 회장은 이날 서울교대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고, 청중의 다양한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래 한국 교육을 이끌 예비 교사를 대상으로 진행된 이 특강을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주>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1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특강 
“우리나라가 가진 최고의 자산은 사람, “뛰어난 지성에 인성 더해야”
여러분 반갑습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 연령대 대학생은 진로나 취업 걱정이 많을 텐데 여러분은 이미 진로가 정해져 있습니다. 일자리도 거의 예약돼 있습니다. 대단히 복 받은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대단히 나이 든 할아버지입니다. 만 85세가 지났으니, 어쩌면 여기 서울교대에 와서 강의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저를 보면서 ‘저 할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려나’ 궁금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모두 훌륭한 교육자가 되실 분들이니까요. 지금 이 자리에 임채성 서울교대 총장님과 김경성 전 총장님 같은 교육 분야 대가들이 계셔서 이 주제로 말씀드리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중심으로 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생이란 예외 없이 B에서 시작해 D로 끝난다.’ 여기서 B와 D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네. 여러분이 생각하시듯 각각 Birth(출생)와 Death(죽음)를 뜻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가 없죠.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면 너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신이 B와 D 사이에 C를 뒀답니다. 여기서 C는 Choice(선택)를 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각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매우 크게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초이스의 C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많습니다. Challenge(도전하다) Change(변화하다) Cooperate(협력하다) Cheer(격려하다) Continue(지속하다) 등이 그렇습니다. 반면 C로 시작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도 많습니다. Complain(불평하다) Corruption(부패) Conflict(갈등) Cheat(속이다) Cut(중단하다) 등이 그렇습니다. 이외에도 사전을 찾아보면 아주 많은 단어가 나올 겁니다. 사람이 B와 D 사이에서 어떤 C를 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게 사르트르의 생각입니다. 어때요. 이 의견에 공감이 갑니까.


한국 최초의 원양선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서울교대 학생들 앞에서 원양어선을 타고 오대양을 누비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서울교대 학생들 앞에서 원양어선을 타고 오대양을 누비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며 ‘남 탓’을 합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Change) 도전하고(Challenge) 행동을 지속하는지(Continue)에 따라 내 삶이 결정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부산 수산대를 졸업했습니다. 첫 직업은 남태평양에서 참치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때가 1958년인데, 당시엔 어선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습니다. 요즘 사람들한테 그런 배를 타라고 하면 ‘지금 나보고 죽으라는 거냐’는 말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당시엔 그런 배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에 일자리가 거의 없었고, 모두 다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 1인당 소득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압니까? 2018년 기준으로 3만3000달러가 넘습니다. 제가 처음 배를 타고 나갔을 때는 우리 국민 1인당 소득이 80달러였습니다. 그 시대를 여러분은 아마 상상하기도 어려울 거예요. 우리가 절대 빈곤국이라고 생각하는 아프리카 가나라든지 소말리아 같은 나라 사람들도 1인당 소득이 80달러는 넘습니다. 60여 년 전 우리나라는 지금 그런 나라보다도 훨씬 가난했던 겁니다. 

제가 수산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런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땅에서는 살기 어려우니 바다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실습차 동해, 서해, 남해를 나가보고 크게 좌절했어요. 이미 우리 연안 수산자원이 절멸 상태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이 물고기를 다 잡아가고, 광복 후엔 또 한국 사람이 잡아들였습니다. 계속된 남획으로 자원이 거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졸업 무렵 우리나라 최초의 원양어선이 부산항을 출발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무작정 찾아갔지요. “나도 그 배를 타고 싶다”고 하니 처음엔 “대학까지 나와서 무슨 이런 일을 하느냐”고 거절합디다. 또 찾아가서 태워달라고 하니 “이미 선원이 다 채용돼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찾아갔습니다. 마침내 “1년간 무보수로 일한다. 죽어도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서야 그 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꼬박 1년을 참치잡이 생활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제가 그 배를 타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오늘날 동원이 세계에서 물고기를 가장 많이 잡는 회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 그때 좀 더 안전한 길을 찾아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조업하는 작은 배를 탔다면 세계 제1의 수산회사를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바다로 나간 뒤 모험을 참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원양어업 관련 기술과 장비가 매우 발달했지요. 하지만 당시엔 상황이 달랐습니다. 무변대해에 나가면 해나 별의 각도를 측정해 배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날이 궂어 해나 별이 보이지 않으면 며칠이고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조업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위험천만한 일이라 선원 가운데 희생자가 참 많았어요.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발상지인 남태평양 사모아, 대서양 라스팔마스, 인도양 포트리스 등에 가면 그 무렵 목숨을 잃은 선원들 무덤이 참 많습니다. 우리나라 원양어업협회장은 지금도 몇 년에 한 번씩 그곳으로 성묘를 갑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 원양어업이 발전한 겁니다.


하버드대에서 배운 혜안

저는 이외에도 살아가며 여러 ‘챌린지’를 했습니다. 30대에 회사를 세웠고, 그것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다른 사업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최고경영자과정에서 공부도 했습니다. 

제가 농업고등학교, 수산대를 나오고 배를 탔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버드대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정말 오만 수단을 다해 그 학교에 갔습니다. 제가 이걸 왜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느냐 하면, 그 도전을 통해 얻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1981년 하버드대에 들어가서 보니, 그 학교 경영대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투자은행이나 증권사에 취업하더라고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증권사는 맨 사기꾼이 설치는 데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누가 증권회사 다닌다 하면 그 사람을 좀 이상하게 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최고로 우수한 사람들이 증권회사에 들어가는 겁니다. 제가 그걸 보고 ‘아, 이쪽에 장래가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당시 공매로 나와 있던 한신증권을 인수했지요. 인수 가격이 큰 배 한 척 가격쯤 했습니다. 이후 그 회사를 키우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에서 톱클래스로 평가받는 한국투자증권이 됐습니다. 

저는 이 성취의 바탕에 제가 그동안 해온 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찌감치 바다로 나간 덕분에 좀 더 큰 시야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세계가 넓고 우주가 크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바다 생활을 하며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담대해질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죽음보다 겁나는 게 뭐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게 됐습니다. 

물론 살다 보면 힘든 순간도 옵니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때 바다에서 죽었으면 다 끝나는 거였는데 이만큼 살지 않았나. 겁날 게 뭐가 있나.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 해도 행복이다.” 이런 생각 덕에 기업을 운영할 때도 ‘정도(正道)경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자”는 마음을 계속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동원이 세계에서 물고기를 가장 많이 잡는 회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연안에서는 단 한 마리도 잡지 않습니다. 어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고기를 원양에서만 잡습니다. 이렇게 늘 정도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세계지도 거꾸로 보기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세계지도를 거꾸로 돌려 보여주며 우리나라의 입지적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세계지도를 거꾸로 돌려 보여주며 우리나라의 입지적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자, 이제는 여러분에게 제가 여러 도전을 통해 얻은 지혜를 나눠드리려고 합니다. 세계지도를 거꾸로 볼 수 있는 시각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세계지도를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한반도는 유라시아 한 귀퉁이에 매달려 있는 듯 보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이런 입지 조건 때문에 우리가 도무지 발전할 가망이 없다는 자조적인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어른들이 “어쩌면 나라가 이렇게 버선짝처럼 생겼냐” “토끼가 귀를 잡혀 붙들려 있는 형상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별에는 위아래가 없다는 걸 말이지요. 우리가 지도를 볼 때는 무심코 북쪽이 위, 남쪽이 아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을 보세요.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입니까. 더군다나 우리 지구는 ‘star’ 축에도 못 드는 하나의 ‘planet’에 불과합니다. 북쪽, 남쪽이 따로 있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지도를 뒤집어봤습니다. 그러자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한반도는 대륙에서 바다를 향해 부두처럼 나와 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 삼아 태평양으로 나갈 봉화대처럼 당당한 모습입니다. 이때 일본은 우리나라를 막아주는 방파제, 중국은 북서풍을 가려주는 큰 언덕처럼 보입니다. 

제가 그동안 항해한 거리를 다 합치면 지구를 200바퀴 이상 돈 격이 됩니다. 그렇게 긴 시간, 무변대해에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지내면서 우주와 지구 차원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이런 발상이 생깁니다. 저는 1990년 이런 깨달음을 담아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라는 책을 썼고,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무게로 달아 읽은 책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바다를 항해하며 쓴 글은 우리나라 초·중·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박해윤 기자]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바다를 항해하며 쓴 글은 우리나라 초·중·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박해윤 기자]

꽤 오랫동안 우리나라 초·중·고 교과서에도 제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1965년부터 약 30년간 있었으니, 여러분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그 책을 보셨을 겁니다. 

사실 제가 글쓰기를 공부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것도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제가 바다에 나가서 보니 ‘우리가 살길은 바다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이 사실을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가요. 앞서 말씀드렸듯 농업학교, 수산학교 나와서 바로 배를 탔기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참 속이 가난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많이 읽었습니다. 

당시 일본 뒷골목에 가면 고서적을 폐지보다 약간 비싸게 파는 데가 있었습니다. 책을 무게로 달아 팔았어요. 거기 가서 괜찮아 보이는 책을 몇 상자씩 샀습니다. 그걸 가지고 배에 오르면 몇 달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글을 써서 신문사 잡지사 등에 보냈지요. 그 글이 알려지고 몇 년 지나자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교과서에 실을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게 출발점이 돼 초등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그리고 실업계 고등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각각 제가 쓴 글이 실렸습니다. 

제가 제 자랑을 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예로부터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는 말이 있지요. ‘정신을 쏟아서 하면 어떤 일이 불가능하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용기를 갖고 사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립니다.


지식, 지혜, 창의성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어떤 챌린지를 해야 할까요. 이것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상황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양에서 항해할 때 선장의 1차적 책무는 내 배가 어디 있는지를 아는 겁니다. 여러분도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배야 물리적 위치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까지 다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가 7만 년 정도 됐다고 하는데, 인간의 삶은 최근 50년 사이에 지난 몇 만 년 동안보다 더 크게 변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변화 속도는 세계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빠릅니다. 여러분은 이런 걸 종합적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게 지식(Knowledge)입니다. 

여러분은 지식이 무엇으로 구성됐다고 생각합니까. 정보(Information)가 쌓여 정형화된 것을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럼 정보는 뭐냐. 그것은 데이터(Data)의 축적을 의미합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DIK 이론이라고 합니다. 

데이터와 정보가 뒷받침되지 않은 지식을 우리는 ‘카더라’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카더라’ 때문에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할 때 이 점을 유념하고 ‘카더라’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지식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정보나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근거 없는, 데이터 없는 얘기에 현혹되지 마시라는 취지에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앞서 설명한 내용으로 돌아가면 데이터, 정보, 지식 위에는 지혜(Wisdom)가 있습니다. 그 위에 있는 것은 창의력(Creativity)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머리가 좋고 수학·과학도 잘하는데 창의력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데이터, 정보, 지식의 기초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뿐 아니라 여러분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시험에 대비해 열심히 암기하고 경쟁하는 것만 배웠습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이런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극복할 방법을 찾기를 바랍니다. 

극복하려면 먼저 인간의 속성부터 알아야 할 겁니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에 대해 배웠지요? 매슬로는 인간이 생리적 욕구부터 단계별로 안전의 욕구,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을 갖고 있다고 봤습니다. 각각의 욕구를 충족하고 마지막으로 자아실현까지 하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이 단계까지 간 사람은 많습니다. 그럼 그다음에는 뭐가 있을까요?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봐주세요. 

제가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 인(人)자를 보면 짝대기 두 개가 서로 기대 있지 않습니까. ‘인간’이라는 단어도 사람 사이의 관계, 간격을 의미하고요. 이것에 대해 얘기하는 게 윤리인데, 우리 교육에서 가장 결여된 게 바로 그 부분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험 준비에만 매달리다보니 윤리, 도덕 같은 것과 멀어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보면 똑똑한 사람보다 인간관계 좋은 사람이 성공한 예가 훨씬 많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이기적이라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요즘은 학생들이 일찍부터 경쟁에 시달리니까 남과 어떻게 더불어 살까에 대한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발뒤꿈치를 세우고 까치발을 해도 남의 무등을 탄 것만큼 키가 클 수는 없습니다. 남의 무등을 타려면 남을 배려하고 서로 협동해야 합니다. 

지구는 몇십만 년 전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이후 새로 생긴 물질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세계는 놀랍게 발전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물질이 계속 융·복합한 덕분입니다. 물질의 융복합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로 이뤄지는 것은 없습니다. 서로 특성과 재능과 기술을 합쳐야 발전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이런 면이 많이 부족합니다. 개인 능력으로는 세계에서 1등을 하는데 노벨상은 평화상을 제외하고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이 답을 찾는 것을 여러분께 숙제로 남기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그동안 살아오며 느낀 점, 그리고 여기저기서 배운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사회에 나가면 한 사람당 적어도 1000명의 어린이 교육을 맡을 겁니다. 제 강의가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2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 서울교대 학생들 질의 응답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서울교대 학생의 질문을 듣고 있다. [박해윤 기자]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서울교대 학생의 질문을 듣고 있다. [박해윤 기자]

- 회장님은 참치 회사를 경영하셨는데 정말 참치를 좋아하시는지요. 

“참치는 제가 가장 많이 먹는 음식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어떻게 그렇게 건강하신가요’ 하고 물으면 저는 한마디로 ‘참치를 많이 먹어서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조크로만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물고기 중에 대양을 건너다니는 어종은 참치뿐입니다. 또 참치는 부레가 작아서 가만히 멈춰 있지 못합니다. 잠도 못 자고 평생을 돌아다녀요. 그만큼 강인하지요. 수심 100m, 200m를 자유롭게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참치가 세계에서 가장 고급 식량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참치잡이 배를 탔습니다. 그때는 바다에 나가서 몇 달씩 있으면서 참치를 샤브샤브 해 먹기도 하고 소금이나 간장을 뿌려 먹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참치찌개를 거의 매일 먹습니다. 저를 보면 참치가 실제로 좋은 음식인 게 증명되지요.” 

- 연세에 비해 매우 건강해 보입니다. 건강관리 비결도 있는지요. 

“타고난 것이 있겠지만, 어린 시절 단련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6년간 매일 5km쯤 되는 자갈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그래서 하체가 아주 튼튼해졌습니다. 지금도 골프를 하면 제 연령에 비해 비거리가 아주 깁니다. 또 하나, 저는 젊은 시절 배에서 요즘 말로 하면 노예처럼 일했습니다. 그때 몸이 단련돼 지금까지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 회장님은 어떨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아까 말씀드렸듯 저는 ‘죽었으면 이미 끝났을 인생,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하냐’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지금 동원그룹 종업원이 2만 명쯤 됩니다. 국내에 1만6000명, 외국에 4000명쯤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일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습니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지요. 그때마다 ‘살아서 이런 일 저런 일 겪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사람한테 가장 안 좋은 게 스트레스를 쌓아두는 겁니다. 여러분도 나중에 교사 생활 하다 보면 학생들이 애도 먹이고 할 겁니다. 그때는 그날그날 스트레스를 푸십시오. 갖고 살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 회장님은 젊은 시절부터 많은 도전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실패하면 어떻게 할지 먼저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뒷일 생각지 않고 일단 시도부터 하십니까. 

“처음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모든 걸 다 걸고 했습니다. 제가 30대에 창업을 했는데, 그때는 그 나이에 회사를 시작하는 걸 상상하기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지금은 10대, 20대에도 창업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당시엔 그랬습니다. 그때 한 선배가 제게 조언을 해줬습니다. ‘사업을 하더라도 가족들 굶지 않게 대책은 세워놓으라’고요. 저는 ‘회사가 망하면 다시 배를 타자. 그러면 최소한 밥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엔 배를 타려면 선원수첩이라는 게 필요했습니다. 저는 ‘언제든 다시 배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회사를 세우고도 몇 년간 선원수첩을 유지했습니다. 유효 기간이 지나면 새로 신청하고, 신체검사도 계속 받았습니다. 한 10년쯤 지나고는 자신감이 생겨 갱신을 그만뒀지요.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부터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이 일이 잘 안 돼도 본체가 아주 망가지지는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본업을 버리는 자는 망한다. 본업만 하는 자도 망한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지요? 그런데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사람이 본업으로 하던 것을 제대로 안 하고 다른 일을 하려고 기웃거리면 망합니다. 그런데 본업 하나만 쭉 하면 그때도 소위 ‘성장의 한계’가 옵니다. 제가 지금까지 참치잡이만 계속했다면 아무리 세계 제일의 회사로 키웠다 해도 여러분 앞에 와서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이 없었을 겁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보니 이런 자리에도 설 수 있게 된 거죠.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솟구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증권회사를 인수하고 한동안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회사가 됐습니다. 제가 거기에 뭘 도입했는지 압니까. 바로 원양어선의 임금체계입니다.
 
원양어선은 기본생활비 말고는 급여 대부분을 인센티브 형태로 지급합니다. 선원은 고기를 많이 잡으면 돈을 많이 벌고 적게 잡으면 적게 법니다. 이걸 우리 증권회사에도 적용했더니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일하게 됐습니다. 현재 한국투자금융이 잘되는 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우수한 사람들에게 최고 대우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2018년 한국투자증권의 차장 한 사람 연봉이 20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당시 여러 언론이 ‘사장이나 오너보다도 차장이 돈을 많이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직원이 돈을 많이 벌면 월급을 그렇게 많이 줍니다. 제가 여러 시도를 해봤기에 그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습니다.” 

- 회장님은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셨습니다.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또 자녀를 키울 때 가장 중점적으로 교육한 게 뭔지 궁금합니다. 

“저는 농사짓는 집에서 태어나 농업학교를 나왔습니다. 원래부터 도전 정신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당시 농업학교 학생들의 가장 큰 꿈은 서울대 농대에 가는 거였습니다. 저는 특별생 제도를 통해 서울대 농대에 들어가는 게 확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 원서를 쓸 무렵 담임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 전부 명문대 들어가는 걸 좋은 길로 생각하는데, 내가 너희라면 바다 계통 대학에 가겠다’고요. 그분이 서울대 문리대 화학과를 1등으로 입학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나를 봐라. 내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하루 종일 너희와 입씨름만 하고 있지 않으냐. 내가 너희라면 바다에서 길을 찾겠다’고 하신 겁니다. 그 말씀을 듣고 조용히 교무실에 찾아가 ‘선생님, 바다 계통 대학은 뭐가 있습니까’ 하고 여쭈었지요. 그랬더니 ‘나도 잘 모르겠다. 부산 쪽에 있다더라’ 하시더군요. 그때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수산대를 알게 돼 지원하고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보니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가 1954년인데 전쟁 직후라 본교를 미군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판잣집에서 수업을 들었지요. 바다에 나가 보니 수산자원도 이미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내가 선택을 잘못했구나’ 하던 참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원양어선이 출항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 죽자사자 매달렸습니다. 1년간 무보수 선원으로 일하는 것도 그쪽에서 요구한 게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든 그 배를 타려고 자청한 일입니다. 그때 그렇게 ‘챌린지’하면서 점차 도전이 습관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녀교육에 대해서도 답하겠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저는 자녀를 좀 단단히 단련을 시켰습니다. 지금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으로 있는 제 장남은 고려대를 졸업한 뒤 원양어선에 태웠어요. 어떤 분이 우리 아들한테 ‘고대 나오고 원양어선 탄 사람은 역사상 네가 처음일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아들이 바다에서 사람 죽는 현장도 보고 하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뒤에 대학원에 갔는데 ‘내가 지금 느낀 걸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대학 공부를 열심히 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대학원에서는 공부를 아주 잘했고요. 

제 둘째 아들은 공장 근무, 영업사원 생활을 하도록 했습니다. 옛말에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시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행을 가면 돌봐주는 사람 없이 모든 걸 스스로 챙기게 되니까요. 저는 여러분께도 건강할 때 여러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합니다. 배낭여행을 하고, 공장이나 장애인 시설에도 가보십시오. 사회에서 크게 성장한 사람을 보면 어려움을 겪은 이가 많습니다. 편안하게 호강한 사람은 저항력, 인내력이 없어요.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몸과 정신을 단련하십시오.” 

- 저는 동원그룹이 왜 라이프아카데미를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회장님이 인성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감수성이 예민하던 젊은 시절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로마, 파리 등의 유적에 관광객이 붐비는 모습도 봤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제가 대학을 졸업한 1958년 우리 국민 1인당 소득이 8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100달러가 된 게 1963년의 일입니다. 그렇게 어렵던 시기에 풍요로운 외국 풍경을 본 겁니다. 

그곳에서 괄시도 많이 받았습니다. 외국에 가면 입국장에서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냐’는 질문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일본인과 함께 들어서면 그 사람은 프리 패스 하는데 저만 한참을 붙들려 있곤 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기차는 있냐’ ‘고유 문자는 있냐’ 같은 질문을 들으면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도 했어요. ‘남의 조상들은 저렇게 유적을 남겨 곳곳에 관광객이 들끓는데 우리한테는 왜 이끼 낀 초가집밖에 없는가. 왜 우리나라엔 유산이라곤 가난밖에 없는가.’ 비통함에 눈물 흘리고 감상적인 시간도 가져봤습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땅이 좁지만 인구가 많습니다. 또 선장으로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일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분명 똑똑한 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각종 통계로 우리 국민이 우수하다는 게 입증됐습니다. 당시는 그런 자료가 만들어지기도 전입니다. 하지만 저는 경험을 통해 우리 국민이 우수하다는 걸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될 길은 사람을 잘 가르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믿음에 회사를 세우기 전, 월급쟁이 때부터 월급을 쪼개 장학생을 길렀습니다. 이후 동원을 창업하고도 계속 장학사업을 이어갔습니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지급한 학생이 연인원으로 4000~5000명이 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부가 장학금을 많이 주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걸 뭘 할까 하면서 어린이 유소년 축구대회를 열어보고, 배낭여행 프로그램도 운영해봤습니다. 모든 게 일시적인 효과를 내는 데 그쳤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교육을 해보자는 취지로 만든 게 라이프 아카데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똑똑하기는 한데 인성이 부족해 공동생활이 어렵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공헌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2019년 11월 20일 서울교대 특강을 마치고 임채성 서울교대 총장, 김경성 서울교대 전 총장(왼쪽에서 여섯, 일곱 번째)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2019년 11월 20일 서울교대 특강을 마치고 임채성 서울교대 총장, 김경성 서울교대 전 총장(왼쪽에서 여섯, 일곱 번째)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제가 아까 여러분께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에 대해 말씀드렸죠. 이때 자아실현까지 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었고요. 매슬로는 5단계설을 완성한 뒤 욕구를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그것이 ‘공동체에 대한 공헌’입니다. 공동체는 내가 나온 학교 동창회일 수도 있고, 마을 또는 국가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인류 전체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자아실현에 그치지 말고 공동체에 공헌까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이렇게 아까 드렸던 질문 가운데 하나에 대한 답은 제가 드렸습니다. 나머지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분이 생각해주세요. 첫째는 한때 만주 벌판에서 말을 달리며 그 넓은 땅을 다 차지했던 우리 민족이 지금 왜 반도의 반토막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머리가 좋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도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분단국가로 남아 있을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둘째는 역시 이렇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가 안 나왔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두 가지 주제를 잘 생각해 스스로 답을 구하면 좋겠습니다.” 

이날 질의 응답시간에는 여러 학생의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김 회장은 “독서와 질문, 토론을 강조하는 라이프아카데미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반가워했다. 이어 다음 이야기를 덧붙이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마이클 브린이라는 언론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15년간 살면서 ‘한국인을 말한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거기 한국인의 특성으로 제시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과거지향적이다. 둘째 남 탓을 많이 한다. 셋째 타협할 줄 모른다.’ 

우리한테 이런 약점이 있다는 걸 알고 거기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책을 많이 읽고 다른 사람 의견도 많이 들어야 합니다. 큰 것을 이루려면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사회에 진출해 어린이들을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뛰어난 부분을 발굴해 잘 지도하면 한국에서 엄청난 인물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우리나라 청소년,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중차대한 임무가 맡겨져 있으니 그 일을 통해 우리나라가 잘되게 해주십사 하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신동아 1월호'




신동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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