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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 전용 클럽’ 한국당은 ‘운동권 권력’ 못 이긴다

바닥부터 권력 다진 ‘야전형 좌파’는 보수의 교사(敎師)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sangin@snu.ac.kr

‘상류 전용 클럽’ 한국당은 ‘운동권 권력’ 못 이긴다

  • ● 겉으로 전의 하늘 찌르나 권력 향한 집념 잃어
    ● 左, 저인망 방식으로 승수 쌓다 국가권력 장악
    ● 右, 삶의 현장에 무심, 집권을 ‘주어진’ 특권처럼 착각
    ● ‘괴물’에는 ‘권력에 대한 헝그리 정신’으로 맞서야
자유한국당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심재철 의원(오른쪽 두 번째)이 2019년 1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뒤 황교안 대표(오른쪽 세 번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심재철 의원(오른쪽 두 번째)이 2019년 1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뒤 황교안 대표(오른쪽 세 번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2020년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는 해다. 역대 어느 총선에 비해도 제21대 총선은 ‘역사적인’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집권 초부터 현재의 민주당 세력은 “20년도 짧다”는 각오로 이번 총선을 준비해왔다. 권력을 내줄 경우 어떤 상황이 닥칠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자세로 선거에 임하는 것이다. 보수 쪽 자유한국당은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일전(一戰)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지난 수년 동안 총선·대선·지방선거에서 세 번 연거푸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마저 패배한다면 전통적 보수정당의 계보는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권력 향한 집념 잃은 보수우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8일째를 맞던 2019년 11월 27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 있는 천막에 방문한 모습.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8일째를 맞던 2019년 11월 27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 있는 천막에 방문한 모습.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그 어느 쪽도 패배를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이다. 올해 총선은 손에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사실상 내전(內戰)에 가깝다. 아닌 게 아니라 작금의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권력 대립은 불길하게도 광복 직후의 현대정치사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이번 총선은 단순한 권력게임의 향배를 넘어 향후 대한민국의 존립 여부를 가늠케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는 정치세력이 지금 대한민국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로 요소마다 하나둘씩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진보여당과 보수야당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승리에 갈급(渴急)하고 절박할까. 비장한 모습이 겉으로 눈길을 끄는 쪽은 단연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보수우파 세력이다. 가투(街鬪)에서부터 삭발, 그리고 단식에 이르기까지 전의(戰意)는 가히 하늘을 찌를 기세다. 비대위 설치, 외부 인사 영입, 내부 개혁 등 우리나라 정당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단골로 내놓는 레퍼토리에 비해 이번의 경우는 색과 결이 달리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결기(決起)가 총선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대급 정치 비리와 부패, 그리고 유례없는 정책적 무능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집권 세력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 현재의 집권 세력은 총선에 총력을 집중한 뒤 대세를 일순에 반전시킬 요량이다. 

밖으로 내보이는 왕성한 투지에 비례해 보수우파 세력이 내심 얼마나 확신에 찬 자신감으로 무장돼 있는지는 미지수다. 문재인 정부 집권 전반기를 이미 속수무책으로 보내지 않았는가 말이다. 하긴 진보좌파 세력에 대한 모종의 심리적 ‘콤플렉스’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경우조차 있다. 최근 한국당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일련의 자기비하나 자기학대 발언이 그 방증이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야당 복(福)’을 누리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야당 복’이란 정확히 말해 대한민국 보수 세력이 상대방에게 자진 상납하는 복이다. 무엇보다 이는 보수우파 세력에 헝그리(hungry)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보수 세력은 진보좌파의 인기와 득세에 맞선다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념이나 철학, 가치 타령이나 해왔을 뿐이다. 권력을 향한 강력한 집념, 권력을 잡고 지키는 무기와 사기는 공히 잃어버렸다.


낮은 권력에서 勝數 쌓은 진보좌파

그 이면에서 진보좌파 세력은 야전(野戰)형 권력정치 체질로 단련돼갔다. 지금과 같은 ‘막강’ 진보좌파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전후 386 ‘운동권력’은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절벽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출발했다. 그 시절 그 누가 오늘날 그들이 누리는 영광을 예상했겠는가. 노무현, 문재인 정부 두 차례 집권으로 모자라 ‘20년 장기집권’까지 꿈꾸는 작금의 진보좌파 권력집단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유격전(遊擊戰)과 지구전(持久戰)을 병행할 줄 알았고 저인망(底引網) 방식으로 사회를 바닥에서부터 훑을 줄도 알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대의를 위해 하나가 될 줄 아는 호형호제(呼兄呼弟) ‘원팀’ 운명 공동체였다. 

진보좌파는 결코 벼락치기로 권력을 장악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권력의 정상부(頂上部)만 노린 것도 아니다. 대신 그들은 사법·행정·교육·기업·노동·종교·지역·언론·여성·문화 등에 걸쳐 있는 우리 사회 현장 곳곳의 낮은 권력, 숨은 권력, 작은 권력, 연한 권력에서 차근차근 승수(勝數)를 쌓으며 승률(勝率)을 점차 높여나갔다. 누군가는 법조인으로, 누군가는 교육자로, 누군가는 관료로, 누군가는 사업가로, 누군가는 노동자로, 누군가는 성직자로, 누군가는 언론인으로, 누군가는 사회운동가로, 누군가는 연예인으로, 누군가는 궂은일 해결사로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갔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승리의 경력이 마침내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최종 열매를 맺었다. 말하자면 보수우파와는 달리 한국의 진보좌파는 싸울 줄도 알고, 이길 줄도 아는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아일랜드 트리니컬대 신경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에 따르면 이는 ‘승자효과(winner effect)’에 해당한다. 승자효과는 작은 승부에서라도 일단 한번 이겨본 개체는 다음번 대결에서도 이길 확률이 높다는 일종의 생물학적 이론이다. 맞수가 되지 않던 존재라도 한 차례 승리를 경험하게 되면 다음번에도 강자를 이길 공산이 커지는 법이다. 승리의 기분이 공격성과 자신감을 키우기 때문이다. 

이른바 ‘핵주먹’으로 알려진 미국의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성폭행 혐의로 감옥에서 3년간 복역한 뒤 현역으로 복귀한 그의 첫 경기 상대는 무명 선수였다. 그는 두 번째 경기에서도 일부러 약한 상대를 골라 KO승을 거두었다. 그 여세를 몰아 얼마 뒤 타이슨은 WBC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무난히 탈환했다. ‘승리의 뇌’를 장착한 덕분이었다. 

로버트슨의 승자효과 이론에 따르면 이긴 자와 진 자의 권력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성경 구절의 이른바 ‘마태 효과(Matthew effect)’는 권력관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집권을 특권으로 여기다 상류 전용 클럽 돼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경제력 혹은 사회적 지위를 이미 획득한 사람이 더 높은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집권 세력이 구상하는 ‘좌파 장기집권 플랜’은 결코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진심으로 그들은 좌파 장기집권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믿고 있을 터인데, 이는 머튼이 말하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효과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예측은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행동을 알게 모르게 유발한다. 

이에 비해 작금의 대한민국 보수우파 집단은 권력의 창출과 재생산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진지한 성찰을 해본 기억이 가마득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으뜸은 ‘권력이란 언제나 당연히 우리 것’이라는 역사적 착각에 있다. 냉전과 분단,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 보수우파의 집권을 마치 ‘주어진’ 특권이나 운명처럼 인식해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수적 가치에 대한 ‘철학의 빈곤’은 만성화하고 말았다. 건국과 부국(富國) 이후 보수의 새로운 과제를 놓고 수십 년째 방황하는 처지에 이른 점도 우연이 아니다. 

지난날 보수우파 전성시대의 권력이 대통령 중심의 이른바 대권(大權) 위주였다는 점도 결과적으로는 독이 되고 말았다. 한 방 혹은 한판 승부에 익숙해진 보수우파 세력은 저변(底邊)의 생활정치, 지방정치, 미시정치, 감성정치 경험이 절대 부족하다. 말하자면 보수우파는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새롭게 달라진 게임의 법칙에 무심하고 둔감했다. 진보좌파 세력이 바닥에서부터 권력을 새로 긁어모아왔다면, 보수우파는 기득권을 나눠 먹는 경쟁에 열중했다. 권력을 벌어오는 사람은 없는데 권력을 쓰겠다는 사람은 넘치는 곳, 비유하자면 귀족이나 상류 전용 클럽을 떠올리게 만드는 세력이 지금의 자유한국당이다. 

권력에 배고파하지 않는 것이 보수우파의 본래 천성은 단언컨대 아니다. 가령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이승만과 박정희는 권력의지가 너무나도 강한 인물들이었다. 그 결과로 건국의 길이 닦이고 부국의 길이 열렸다. 한 치 앞 대한민국 장래도 예측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 시대를 맞이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공격형 보수’다. 적어도 권력에 대한 헝그리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점에는 지금의 진보좌파가 보수우파의 교사(敎師)일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결코 배워서는 안 될 반면(反面)교사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로버트슨은 ‘승자효과’가 반드시 축복은 아니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승자효과가 뇌의 화학적 상태를 바꿔놓기 때문이다. 거듭된 승리의 부작용으로 권력에 대한 도취 내지 중독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 결과, 멋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함부로 권력을 흔들어 파멸의 길을 자초하기 쉽다는 게 로버트슨의 경고다. 이는 권력의 본령을 망각한 채 나라가 어떻게 되든 정치공학 내지 정치공작에만 몰두하는 문재인 정부의 현주소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는 양태는 윤리나 도의 차원을 넘어선다. 여론조작이나 관권선거 등 자칫 범죄적 요소에 대한 우려까지 자아내기 때문이다.


통제 불가능한 ‘괴물’에는 허기로 맞서야

시나브로 한국의 진보좌파는 통제 불가능한 ‘괴물’ 같은 존재가 돼 있다. 여기에 한국의 보수우파 세력이 맞서려면 무엇보다 먼저 권력에 대한 허기와 공복감을 처절히 자각해야 한다. 싸우지 않고는, 이기지 않고는 아무것도 아니고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통렬히 깨달아야 한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말했듯 정당은 ‘권력의 집’이다. 권력이 없는 정당은 빈집이라는 의미다. 점잖은 토론장이나 폭넓은 사교장이 정당 본연의 모습은 아니다. 죽기 살기로 권력만 생각하는 진보좌파 운동권 권력 앞에서 보수가 입에 담는 이성, 합리, 상식, 법치 또한 거룩하나 무력한 말일 뿐이다. 정당의 힘은 인재나 철학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투혼과 투지에서 나온다. 정당 스스로가 먼저 권력에 배고파하지 않으면 국민이 도와줄 방도가 없다.


‘상류 전용 클럽’ 한국당은 ‘운동권 권력’ 못 이긴다

전상인
● 1958년 출생
● 미국 브라운대 사회학 박사
●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한림대 교수, 한국미래학회 회장
● 現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저서: ‘한국 2030’ ‘아파트에 미치다’ ‘편의점 사회학’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 등




신동아 2020년 1월호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sang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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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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