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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萬事

反파시스트전쟁서 큰 공 세운 미국 돼지들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反파시스트전쟁서 큰 공 세운 미국 돼지들

  • ● 그릴에서 고기 굽는 미국 파티
    ● 원소가 관도에서 조조에게 패한 까닭
    ● 1937년생 ‘스팸’ 사람 나이로 83세
    ● 파시스트 패퇴시킨 ‘스팸 연합군’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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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위에 갓 구운 스팸(SPAM)과 김치 한 조각을 올린다. ‘스팸삼합’은 홍어삼합처럼 환상적인 ‘케미’를 이룬다. 스팸삼합을 천천히 씹어본다. 짭짤하면서도, 부드럽고, 강렬한 고소함이 남는다. 이 복합적인 맛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오묘한 맛이다. 입안에 평화와 행복을 준다. 

스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 토종 음식이 아니지만 한국인의 식탁에서 굳건한 입지를 굳혔다. 인기 높은 귀화식품(歸化食品)이다. 스팸은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이유가 있다.


파티를 즐기는 미국인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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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파티에 익숙하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파티에 가기도 하고, 아이들만을 위한 파티에도 참석한다. 

미국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생활한다. 부모의 그늘을 떠나 자립하는 시기가 한국보다 빠르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생은 진학하거나 취업하면서 대개 고향을 떠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새끼 새가 부모가 만들어준 둥지를 떠나는 일과 비슷하다. 

고등학교라는 울타리를 떠날 때도 성대한 파티를 한다. 졸업 파티인 프롬(prom)은 먼 길을 떠나는 긴장감, 해방감이 뒤섞여 열기가 매우 뜨겁다. 학부모에게 프롬은 걱정 그 자체다. 아이들의 열기가 뜨거울수록 부모의 걱정도 깊어진다. 프롬을 마친 자녀가 무사히 귀가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파티는 미국에서 일상이다. 독립기념일,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물론이고 평범한 주말에도 파티가 곧잘 열린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친척이나 지인을 초대해 음식과 술을 곁들인 파티를 즐기곤 한다. 

이렇다 보니 주말 저녁마다 미국 주택가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 평소에는 다른 주(州) 차량번호판을 보기 힘들지만, 주말에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타주(他州) 번호판을 단 차량이 주차돼 있다면 그날 밤 파티가 열린다고 보면 된다. 

흥이 넘치면 음악이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지만 그 정도 소음은 양해되는 일이다. 이웃도 파티를 종종 열기 때문이다. 지나치지만 않으면 된다.


그릴에서 굽는 고기 요리

미국에서 돼지고기 안심, 등심, 갈비 외 부위는 주로 햄이나 소시지로 가공된다. [GettyImage]

미국에서 돼지고기 안심, 등심, 갈비 외 부위는 주로 햄이나 소시지로 가공된다. [GettyImage]

2018년 기준 한국의 인구밀도는 1㎢당 51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1위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살기에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주거 형태의 대세가 됐다. 미국도 시카고, 뉴욕 같은 대도시에는 한국처럼 고층 아파트가 있으나 공동주택이 한국처럼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산다. 

미국의 단독주택은 건물과 잔디를 심은 마당으로 이뤄졌는데 마당은 하나가 아닌 두 개다. 건물을 경계로 앞마당과 뒷마당이 있다. 두 마당의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앞마당은 이웃집의 앞마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마을 경관을 꾸미는 공공재(public goods·公共財) 역할을 한다. 뒷마당은 사생활을 즐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다. 

미국인들은 이웃집에서 앞마당의 잔디나 나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시청 등에 민원을 낸다. 게으른 이웃 탓에 동네가 지저분해지는 것을 못 견디는 것이다. 하지만 뒷마당은 다르다. 앞마당과 달리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배타적 공간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소다. 뒷마당에 설치된 그릴(grill)로 파티 음식을 만든다. 

파티가 즐거우려면 맛있는 음식과 감미로운 술이 있어야 한다. 육식을 즐기는 미국인에게 파티 음식의 중심은 고기다. 샐러드나 과일이 아무리 좋아도 메인 디시(main dish)인 고기 요리가 신통찮으면 손님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파티용 고기 요리는 프라이팬(frypan)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릴로 굽는다. 

파티용 고기라고 하면 육질이 좋은 등심(sirloin)과 안심(tenderloin)이 먼저 떠오른다. 등심과 안심은 소금과 후추 외에 다른 양념이 필요 없다. 본연의 맛이 훌륭한 덕분이다. 하지만 등심, 안심 같은 덩어리 고기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손으로 잡고, 이로 뜯는 갈비(spare rib)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쇠고기든 돼지고기든 뼈에 붙은 고기는 별미다. 

갈비 요리는 준비 과정이 복잡하다. 핏물을 빼야 하는 데다 굽기 전 양념에 재워둬야 한다. 미국식 갈비 양념은 가정에서 직접 만들기 어려워 다수 미국인은 사서 쓴다. 양념에 재워 구운 갈비는 색다른 풍미를 제공한다. 때로는 등심이나 안심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메인 디시 노릇을 한다.


1937년 출시된 가성비 갑 ‘스팸’

1937년 호멜이 출시한 스팸. [GettyImage]

1937년 호멜이 출시한 스팸. [GettyImage]

돼지고기의 경우 안심, 등심, 양념 한 갈비는 파티용으로 손색없으나 다른 부위는 미국에서 요리용으로 잘 소비되지 않는다. 파티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는 돼지고기 부위가 소시지나 햄 같은 가공식품의 원료다. 

돼지의 다리(leg/ham)는 햄을 만들 때 좋은 재료다. 미국인이 햄버거만큼 좋아하는 샌드위치(sandwich)의 맛은 햄이 좌우한다. 샌드위치 빵은 약간의 짠맛만 나는 무미(無味)다. 텅 빈 캔버스(canvas) 같은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빵의 맛이 강하면 다른 내용물의 맛을 상쇄시키기에 그렇게 만든다. 샌드위치에서 빵과 햄의 역할은 분리돼 있다. 햄은 혀를 만족시키고, 빵은 배를 채워준다. 

돼지고기 뱃살(belly) 부위를 먹는 방법도 한국과 미국이 서로 다르다. 한국인은 삼겹살 부위를 잘라서 구워 먹지만 미국인은 베이컨(bacon)이라는 가공식품을 만든다. 베이컨은 미국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품이다. 미국은 베이컨을 많이 생산할 수 있게끔 돼지 품종을 개량하기도 했다. 

한국인의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이 또렷하게 다르지 않다. 밥, 국, 반찬이 똑같이 등장한다.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아침식사의 양이 점심, 저녁보다 적다는 정도다. 미국인의 아침, 점심, 저녁식사는 확연히 다르다. 끼니마다 완전히 다른 음식을 먹는다. 

미국인의 아침도 한국인처럼 바쁘다. 직장이나 학교에 가고자 서두른다. 식사 시간을 줄이고자 우유에 시리얼(cereal)을 부어 먹는 아침식사가 대세다. 5분이면 끝난다. 물론 시리얼보다 격식을 갖춘 아침식사도 있다. 토스트(toast), 베이컨, 서니 사이드업 에그(sunny side up egg), 모닝커피로 완성되는 아침식사는 호사(豪奢)스러운 편에 속한다. 

미국인은 돼지고기 어깨살(shoulder)도 요리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팸의 핵심 식재료가 어깨살이다. 어깨살에 다리 고기 약간과 설탕, 소금, 조미료를 추가해 가공한 게 스팸이다. 통조림 햄인 스팸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미국 호멜사(Hormel Foods Corporation)가 1937년 출시했으니 사람 나이로 치면 83세다.


원소가 조조에게 패배한 이유

전쟁에서 승리를 좌우하는 것은 병참(military logistics·兵站) 능력이다. 병참에서 뒤지는 군대는 개전 초기 적을 압도하더라도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군대는 후방에서 끊임없이 지원받아야 한다. 죽거나 다친 병사를 대신할 인적 지원이 공급돼야 하며 끝없이 소모되는 무기와 식량을 보급받아야 한다. 전쟁은 인적, 물적 자원을 빠른 속도로 소비한다. 자원을 적시(適時)에 전선에 공급하는 국가가 승리한다. 

후한 말 원소(袁紹)는 당대 최대 군벌(軍閥)이었다. 그런 원소가 후한의 패자(覇者)가 되지 못한 것은 병참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소는 병참 경쟁에서 조조(曹操)에게 패하고 만다. 

조조와 원소가 패권을 놓고 겨룬 관도대전(官渡大戰)은 병참에서 승패가 갈렸다. 관도대전 이전까지 원소의 기세는 대단했다. 원소는 우유부단하던 한복(韓馥)의 세력과 전쟁의 신이라고 불린 백마장군 공손찬(公孫瓚) 세력을 병탄(竝呑)했다. 원소의 영향력은 기주, 병주, 유주, 청주 등 북중국 4개 주에 이르렀다.
 
원소는 개전 초기 병력, 물자에서 조조의 군세를 압도했다. 강한 적을 상대로 일대일로 승부를 겨루는 것은 무모하다. 조조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조조는 상대의 급소인 식량 창고를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한다. 객관적 전력에서 밀리던 조조에게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원소의 군영에도 인물은 있었다. 저수(沮授)가 조조가 구사할 전술을 예견했다. 문제는 평소 입바른 소리를 잘한 저수가 주군인 원소에게는 물론이고 동료들에게도 밉상이었다는 점이다. 저수는 식량 창고인 오소(烏巢)의 방위를 강화하고 믿을 만한 장수를 배치하자고 건의했으나 원소는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방어가 허술하던 원소의 식량 창고는 결국 급습을 받았다. 조조의 기습은 성공했다. 수비병이 전멸했으며 군량은 잿더미가 됐다. 배부른 대군은 무서운 존재지만, 배고픈 대군은 거지 떼일 뿐이다. 거지 떼는 저절로 무너지게 마련이다. 원소의 대군은 오소에서의 패배로 이빨과 손톱, 발톱이 모두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스팸 연합군’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부대 ‘캠프 스팸빌’(위)과 당시의 스팸. [Hormel Foods Corporation]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부대 ‘캠프 스팸빌’(위)과 당시의 스팸. [Hormel Foods Corporation]

1937년 호멜이 출시한 스팸은 미국 시장에서 호평을 받는다. 저렴하고, 맛도 좋아 소비자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시쳇말로 ‘가성비 갑’인 스팸은 작은 성공에 그칠 수도 있는 제품이었으나 1937년이라는 출품 시기가 절묘했다. 스팸은 결국 시운(時運)을 타고 초대박을 터뜨린다. 

스팸 출시 2년 후인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인류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에서 그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큰 전쟁을 치른다. 1945년까지 이어진 대전(大戰)에서 7000만 명이 전사했으며 유럽과 아시아는 초토화됐다. 광활한 전선에 전개된 군대는 엄청난 양의 보급을 후방에 요구했다. 

전시에 식료품은 전략자산이다. 배고픈 군인이 전의를 잃는 것은 인류 역사가 증명했다. 스팸은 최고의 전략물자 구실을 했다. 가격 대비 맛이 뛰어나다는 장점, 통조림 햄이므로 냉장시설이 필요 없다는 장점 덕분에 전시 미국에서 엄청난 양의 스팸이 생산돼 유럽·아프리카 전선, 아시아·태평양 전선의 연합군에 공급됐다. 

전쟁 시 군인은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보관이 용이한 데다 맛도 괜찮은 스팸이 대량으로 생산돼 공급되면서 연합군의 단백질 섭취 고민이 크게 줄어들었다. 미국 군용기에 가득 실린 스팸은 나치 육군과 싸움을 벌이던 소련 육군에도 공수됐다. 소련군은 투하된 ‘스팸 폭탄’으로 단백질을 보충했다. 

스팸은 군뿐 아니라 민간에도 단백질을 제공했다. 전시 유럽에서는 공업·농업 생산이 붕괴했다. 당연히 시민에게 육류를 공급하는 게 어려웠다. 미국의 스팸은 연합국 국민에게도 제공됐다. 연합군을 ‘스팸 연합군’이라고 칭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파시스트 패퇴시키는 데 일조한 공헌자

미국이 연합국 국민에게까지 스팸을 공급한 힘의 근원은 농업 기반인 대평원(Great Plains)과 공업 기반인 동부가 무사했기 때문이다. 북미는 전쟁의 무풍지대였으므로 농업, 공업 생산력이 떨어질 이유가 없었다. 미국은 대평원에서 재배한 콩과 옥수수로 많은 돼지고기를 생산해 공장에서 스팸으로 가공했다. 

이렇듯 스팸은 연합군이 추축국을 물리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의 돼지들은 독일, 일본의 광적인 파시스트(Fascist)들을 패퇴시키는 데 역할을 한 공헌자 중 하나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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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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