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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최명길은 ‘정권 안보’보다 ‘국가 안보’를 앞에 뒀다

병자호란 전문가 한명기가 말하는 明淸교체기와 美·中 패권전쟁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조선을 구한 최명길은 ‘정권 안보’보다 ‘국가 안보’를 앞에 뒀다

  • ●안보 지키려 광해군 정권 ‘적폐’마저 기용하려 해
    ●앞선 정권 뒤엎는 ‘파괴’에만 집중한 인조 정권
    ●최명길의 ‘실용’이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는 건 ‘끼여 있는 나라’의 숙명
    ●내부부터 통합·안정시켜야 강대국 상대할 수 있어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기존 강국이 쇠퇴하고 신흥 강국이 떠오르는 전환기마다 한반도는 위기를 맞았다. 중국의 부상(浮上)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를 뒤흔든다. 북한은 세력 전이(Power Shift) 상황을 활용해 핵무장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 한국의 정치와 외교는 어떠해야 할까.


왜 지금 최명길인가

영화 ‘남한산성’에서 이병헌 씨가 최명길 역을 맡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남한산성’에서 이병헌 씨가 최명길 역을 맡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명기(58)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최명길 평전’ 서문에 이렇게 썼다. 

“병자호란은 17세기 초 ‘끼여 있는 나라’ 조선이 패권국 명(明)과 신흥 강국 청(淸)의 대결 구도 속으로 휘말리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최명길이 종사를 살려놓은 지 380여 년이 지난 오늘, 한반도와 대한민국은 또 다른 위기의 입구에 서 있다. 패권국 미국과 신흥 강국 중국의 경쟁 때문이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치고 나가자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맞불을 놓는다. 격화되는 양국의 대결 때문에 새로운 냉전의 조짐마저 나타나는 형국이다. 그 와중에 일본의 경제보복 문제, 사드 문제, 방위비 분담 문제 같은 온갖 난제가 뒤엉키면서 여전히 ‘끼여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현실은 갈수록 엄혹해지고 있다. 최명길이 재림한다면 과연 어떤 처방을 제시할까? 필자의 머릿속에서 늘 떠나지 않았던 상상이자 질문이다.” 

그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천착해 온 학자다. ‘역사평설 병자호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정묘·병자호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등의 역작으로 주목받았다. ‘최명길 평전’을 출간한 그를 명지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역사를 현실과 연결하는 건 섣부르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해석할 때마다 끊임없이 현재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과거 사람이 산 시대에는 그 시대의 논리와 상황이 있습니다. 현재를 사는 이들의 인식으로 재단하면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역사를 살피면 데자뷔(déjà vu)가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게 위험하고 섣부를지언정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라고 했습니다. 

“너무나도 비슷해 과거의 일이 고스란히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최명길이 산 시대와 현재는 패권 경쟁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17세기 초반 만주가 떠오르고 명(明)이 쇠퇴합니다. 현재는 중국이 무섭게 떠올라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말이 회자됩니다. 우리가 그 중간에서 굉장히 머리 아픈 상황을 맞이하고 있지요.”


조선의 正士, 김상헌

영화 ‘남한산성’에서 김윤식 씨가 김상헌 역을 맡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남한산성’에서 김윤식 씨가 김상헌 역을 맡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왜 최명길을 ‘지금, 여기’로 호출했습니까. 

“임진왜란(1592~1598)이 끝나고 병자호란(1636)을 겪습니다. 명(明)이 임진왜란에 개입한 후 조선-명의 관계가 이전과 다르게 바뀝니다. 조선은 재조지은(再造之恩·거의 멸망하게 된 것을 구원해 도와준 은혜)을 틀로 삼아 명과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조선은 명이 망해 가는데도 재조지은을 강조하다 만주에서 굴기한 청(淸)에 항복하는 치욕을 맛봅니다. 명청(明淸)교체기, 조선에서 손에 꼽히는 인물이 최명길입니다.” 

그는 명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인조까지 옥쇄(玉碎)해야 한다고 주장한 김상헌보다 최명길을 높게 평가한다. 병자호란 이후 최명길은 만고의 간신이 되고, 김상헌은 조선의 정사(正士)이자 사표(師表)가 됐다. 

-‘최명길 평전’에서 김상헌의 길을 ‘무차별적 원칙론’, 최명길의 길을 ‘선택적 원칙론’이라고 표현했더군요. 

“주자성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지배한 시대는 모든 게 이분법적입니다. 세상은 중화, 그러니까 명나라와 오랑캐인 이적(夷狄)으로 나뉩니다. 오랑캐는 사람이 아닌 짐승 같은 존재이지요. 17세기 초반 짐승 같은 만주가 순식간에 세력이 확 커져 결국 중화인 명나라를 위협합니다. 조선은 이 소용돌이에서 자칫하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요.” 

-주자성리학의 논리대로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랑캐가 세계를 제패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무차별적 원칙론은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다 죽어 없어져도 오랑캐와 끝까지 싸우자는 겁니다. 그게 자신들이 배우고 머릿속에 딱 고정해 온 명분과 의리에 맞는다고 본 것이지요.” 

-최명길은 어떻게 다른 생각을 했을까요. 

“최명길은 주자성리학을 공부했지만 양명학이라는 새로운 사조에도 소양을 갖고 있었습니다. 명분과 의리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조선이라는 나라가 살아남아야 언젠가 명분과 의리를 지킬 기회가 온다고 봤습니다.”


상경(常經)과 권도(權道)

-주자성리학이 정(正)과 사(邪), 선(善)과 악(惡)으로 세상을 이분(二分)한다면 양명학은 어떻게 다릅니까. 

“주자성리학에서는 성즉리(性卽理), 즉 하늘의 이치를 실현하는 게 정치입니다. 양명학은 인간의 마음속에 본원적인 리(理)가 있다고 봅니다. 그 리가 양지(良知)인데 중화든 오랑캐든 양지를 갖고 있기에 그것을 발현하면 되는 것입니다. 노력이 빛을 발하고 시대의 운세가 맞으면 오랑캐도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양명학에서는 나올 수 있습니다. 최명길이 양명학적 소양을 가졌기에 그런 생각을 가진 것 같아요.”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 상경(常經·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이라면 최명길의 선택은 권도(權道·특수한 상황에 정당성을 갖는 행위규범)라고 할 수 있을까요. 권도는 실용주의와도 맥이 닿습니다. 

“권도는 상황에 따른 대응 논리를 말합니다. 쉬운 예를 들면 전통 시대에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남녀가 일곱 살이 넘으면 내외(內外)하라는 겁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형수님이나 제수씨가 물에 빠져 죽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경대로 한다면 내버려둬야죠. 

“인간의 본원적 삶의 원칙에 따르면 일단 살려놓고 봐야죠. 그런 선택이 권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상헌의 주화파는 조선 말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으로 이어집니다. 정학(正學), 정도(正道)로서의 주자학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병자호란은 끔찍한 체험이었습니다. 피로인(被擄人·적에게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청으로 끌려갔어요. 살아남은 이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죠. 오랑캐에 무릎 꿇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그게 현실이 됐습니다. 어릴 적부터 배운 원칙과 이상이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기보다는 기존 주자성리학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더 외골수가 돼버린 겁니다.” 

1704년 송시열 권상하 등 조선 사대부(士大夫)들은 임진왜란 때 재조지은을 이유로 만력제를 숭앙하는 만동묘(충북 괴산군)를 세웠다. 만동묘 명칭은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가리키는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따온 것이다. 사대부들은 “황제 은총에 조선이 살아 있으니!”라면서 제사를 올렸다.


심판자, 평가자

“1704년 창덕궁 후원에 명나라 황제의 은의(恩義)를 기리는 대보단이 세워집니다. 노론의 영수이던 송시열은 만동묘를 짓고요. 중국을 청나라가 지배하고 있으나 이념적, 이상적으로 섬길 대상은 명나라라는 근본주의적 사고가 주자성리학 이데올로그(idealogue)들에 의해 강조됩니다. 그러면서 병자호란 때 살아남은 이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평가합니다. 조금이라도 원칙에 어긋난 사람들을 가차 없이 비판합니다. 그 과정에서 최명길은 매국노가 돼버리고요. 병자호란 이후 심판자, 평가자가 된 사람들은 과연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았을까요.” 

-정치권의 선악 이분법을 보면 위정척사적 사고가 지금도 이어지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으나 한국 사회가 굉장히 명분론이 강해요. 교조주의적 사고방식이 강조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김상헌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김상헌에 대한 전통적 평가는 굉장히 호의적이었지요. 그분이 산 시대 차원에서 놓고 보면 그가 보인 태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짐승 같은 존재인 오랑캐에 무릎을 꿇고 사느니 명분과 의리를 지키면서 목숨 바쳐 싸우는 게 옳다는 주장을 비판하기 어렵습니다. 결국은 평가의 문제입니다. 치자(治者), 그러니까 나라를 통치하거나 높은 벼슬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엇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느냐는 관점에서 볼 때 최명길이 치자의 원칙에 더 충실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김상헌의 태도가 옳았다고 여기는 분도 적지 않을 겁니다만, 필부(匹夫)라면 명예나 의리를 위해 목숨을 끓을 수 있으나 국왕이나 통치자의 태도는 달라야 한다고 봐요. 심지어 최명길은 싸울 거면 압록강으로 나아가 일전을 치르자고 주장합니다. 당시 척화파들이 싸우자고 주장했지만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조정은 강화도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강화도가 수용할 인원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육지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최명길은 지더라도 국경 근처에서 항복하는 게 낫다고 본 거예요.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얘기를 했겠습니까.”


‘끼여 있는 나라’의 숙명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복배수적(腹背受敵·앞뒤로 적을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대국의 패권 다툼 상황에서 조선은 종속변수였습니까, 독립변수였습니까. 

“병자호란은 임진왜란이 남긴 사회·경제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발발했습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군사력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인조반정(1623) 성공 직후 이괄의 난(1624)을 겪으면서 국가의 능력이 더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명을 능멸할 만큼 군사적으로 떠오른 만주를 군사적으로 막아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는 게 중평입니다. 복배수적은 앞뒤로 적이 있다는 뜻인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일본 또한 강적으로 떠올랐기에 복배수적이 아니라 삼면수적이었습니다. 삼면에 강적이 버티고 서 있었어요.” 

-병자호란 직전 일본과 관계는 어땠습니까. 

“만주에서 일어난 변화에 응전하려면 일본과 관계를 좋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만주로부터의 위협이 커지는데 일본으로부터의 위협까지 불거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선이 인조 정권 이후 크게 보면 일본에 저자세를 보인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유화적 대일정책이라고 보면 될까요. 

“명과 만주가 벌이는 패권 다툼의 후폭풍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과 관계까지 악화되면 조선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 원칙은 지금이나 병자호란 이전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끼여 있는 나라’는 선택의 기로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겁니까.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입니다. 군사력은 세계 7위라는 평가도 있더군요. 학교에서 10등쯤 하는 모범생인데 주변 국가가 전교 1, 2, 3, 4등입니다. 시쳇말로 1, 2, 3, 4등이 사방에서 괴롭히면 머리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고차방정식을 풀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역사 내내 존재해 온 비극이자 지정학적 숙명입니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사이에 끼어 양쪽의 영향을 받습니다. 대륙과 관계가 나쁘면 해양과 관계가 좋거나 현상을 유지해야 하고 해양과 관계가 나쁠 때는 그 반대입니다. 이런 원칙이 역사에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송시열 계열의 사람들조차 일본하고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원한이 큰 데도 그런 얘기가 나온 겁니다. 중국이 엄청나게 팽창하는 현재 상황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주한명군’ 모문룡 부대

2017년 9월 7일 주한미군이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사드기지로 반입된 사드 발사대 4기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9월 7일 주한미군이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사드기지로 반입된 사드 발사대 4기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중국이 세계적 차원은 아닐지라도 동아시아에서는 패권의 발톱을 드러냈습니다. 

“주지하듯, 대륙 세력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문제가 많고, 참 미운 나라인 일본과 관계를 망가뜨려서는 안 되는 게 현실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언제까지 완충국가(buffer state)로 살아야 할까요. 

“고구려 시대 이후에는 완충국가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봐야 해요. 유럽의 완충국가가 폴란드인데요. 히틀러와 스탈린이 독소불가침조약(1939)을 맺어놓고는 양쪽에서 폴란드를 먹고 들어갔습니다. 범퍼 노릇하는 나라의 숙명이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이 이렇듯 성장한 건 대단한 일이지만 주변에 센 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파워 시프트(power shift·세력 전이)가 일어나면 그 속으로 말려들어 갈 수밖에 없어요. 더구나 남북으로 분단까지 돼 있어 상황이 더 어렵습니다.”
 
정묘호란 5년 뒤인 1632년까지 인조 정권의 대외정책은 일견 절묘했다. 명과 후금 모두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배려했으나 불행하게도 조선은 3국 관계에서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였다.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서태평양 패권 다툼에서 한국은 종속변수인가, 독립변수인가. 

병자호란 직전 평안북도의 섬 가도에 주둔하던 모문룡 휘하 명군을 ‘모병’이라고 칭한다. 오늘날의 감각으로 표현하면 ‘주한명군’이다. 평안북도의 섬을 거점으로 해 얼마 되지 않는 병력으로 막강한 만주와 싸워 요동을 수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나 명은 가도를 중시했다. 후금을 견제하고 조선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에 사드를 배치한 것을 두고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한미동맹, 미일동맹으로 이뤄진 한·미·일 공조와 부상하는 중국 사이에서 어떤 외교를 해야 하나. 


“외국에 가서도 서로 다른 말하는 한국 정치”

-조선에 주둔한 모문룡 부대에 주한미군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와 유사한 상황이 굉장히 많아요. 당시 조선은 모문룡에게 코가 꿴 상태였습니다.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 정권이 정통성을 인정받는 과정에서 모문룡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이괄의 난 때 인조가 권력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때 모문룡이 딴마음을 먹고 이괄이 추대한 흥안군을 승인했으면 인조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을 겁니다. 국가의 내분이 모문룡에 대한 의존을 더욱 키운 겁니다. ‘끼여 있는 나라’에서 내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국가가 분열되면 외부 압력을 견뎌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하는 겁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극한 대립을 일삼는 한국의 현재 거버넌스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집권 세력이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잘 해결해 국민의 만족도를 높이면 자신들이 내세운 대외정책에서도 내부적 뒷받침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내부를 잘 다독거려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면 외부를 향해 한목소리를 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여야 대표들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다녀왔는데 돌아오자마자 발표한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외국에 가서도 서로 다른 얘기를 할 정도면 지금 상황이 굉장히 나쁜 겁니다.” 

-중국에서는 주한미군에 중거리미사일이 배치되면 한국과 단교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외정책의 원칙을 정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박쥐 소리 안 듣고 미·중 사이에서 독자적 공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최명길은 내부의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신들과 그들이 무엇이 다른가

-최명길은 반정 직후 광해군의 총신(寵臣)이던 평안도관찰사 박엽의 구명운동을 벌입니다. ‘최명길 평전’에서 그 대목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엽이 광해군과 동서지간입니다.” 

-요샛 말로 하면 ‘적폐’죠. 

“그렇습니다. 실록이나 사료는 박엽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묘사합니다만 야사나 야담에 나오는 박엽은 정반대예요. 정사와 야사 양면을 다 봐야 한다고 보는데 청나라 사람들이 박엽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고 야사는 기록합니다. 명과 만주의 외교적 공세를 박엽 차원에서 모두 차단했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최명길이 반정 최고 공신인 김류에게 편지를 보내 박엽을 죽이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반정으로 정권을 잡으면 과거 정권 인사들을 싹쓸이 숙청하는 게 일반적이죠. 최명길은 정권 안보보다 국가 안보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겁니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는 전 정권 사람이라도 유능하면 기용해야 한다고 여긴 거죠. 결국 박엽이 죽임을 당하자 최명길이 김류에게 또다시 편지를 보내 박엽만 한 장수가 누가 있느냐, 누가 외적을 막아내느냐고 말합니다. 최명길의 태도는 지금도 의미하는 바가 굉장히 큽니다.” 

-최명길은 앞선 정권이 엉망이었다고 해도 인재 기용은 다른 문제로 본 것이군요. 

“광해군은 이복동생을 죽이고 서어머니(庶母)를 폐위하려고 했습니다. 궁궐 공사에 집중하면서 국가 재정을 거덜 내버렸고요. 이렇듯 내정에서 굉장히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지만 최명길은 외교에서는 광해군을 계승하려고 했습니다. 광해군과 최명길의 외교 노선은 나라가 먼저 살고 임금이 먼저 살고 백성이 먼저 살아야 한다고 봤다는 점에서 거의 같습니다.” 

인조 정권은 과거 정권을 뒤엎는 ‘파괴’에는 성공했으되 집권 이후 새로운 차원으로 ‘건설’하는 데는 실패했다. 어렵사리 되찾은 정권을 보위하는 데 급급하다가 국가를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다. 새 정권에 기대를 건 이들의 실망은 컸다. ‘당신들과 그들이 무엇이 다른가?’라는 냉소가 번졌다.


“내치가 잘 굴러가야 외교에서도 숨통 틔어”

-명으로부터의 압박도 굉장했습니다. 

“모문룡을 죽인 원숭환이라는 장수가 있습니다. 모문룡은 가도에 틀어박혀 싸우지도 않으면서 명 조정으로부터 받은 물자를 횡령하고 조선으로부터도 물자를 받아갔습니다. 원숭환이 그런 모문룡을 죽여버립니다. 조선 처지에서도 통쾌한 일이었죠. 모문룡이 조선을 계속 괴롭혔거든요. 문제는 뭐였냐면, 원숭환은 원칙론자였다는 겁니다. 모문룡은 물자를 대주고 뒷돈 찔러주는 조선에 구체적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원숭환은 조선이 명과 힘을 합쳐 만주와 싸워야 한다는 편지를 조정에 보냅니다. 조선 신료들이 이 편지에 감격해 만주와 싸우자고 나서는 데 최명길이 제동을 겁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서 감당할 수 없는 약속을 해놓으면 나중에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긴 겁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최명길이 산 시대와 지금은 다릅니다만 남북관계에서도 한국 정부가 내치를 잘 처리해 지지도가 높아야 김정은 위원장이 방남할 가능성이 생길 겁니다. 한국 정치가 출렁이면 북한은 관망하거나 추이를 보겠죠. 내부 거버넌스가 잘 굴러가야 외교에서도 숨통이 트입니다. 최명길이 보기에 조선은 중환자였습니다. 기초 체력부터 되살렸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쟁을 줄여야 했어요.” 

-최명길이라면 대한민국에 어떤 처방을 내릴까요. 

“병자호란이 끝난 후 전쟁 때 아무것도 안 한 이들이 심판자, 평가자가 돼 내가 잘했느냐, 네가 잘했느냐 다퉜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없고 심판자, 평가자의 목소리만 커졌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민생 대책, 국가를 살리는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거죠. 피로인을 조선으로 송환하는 게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몸값을 치르고 풀려나더라도 선양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700㎞입니다. 만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서울까지 오는 과정에서 숙식을 어떻게 합니까. 맹수나 도적떼를 누가 막아줍니까.


“고담준론 놓고 다툰다고 민생 해결 안 돼”

이 같은 민생 문제에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최명길입니다. 사람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가 40㎞ 정도거든요. 최명길은 청과 협상해 40㎞마다 숙식을 제공할 곳을 마련해 주려고 합니다. 국가가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하나로 모입니다. 실용에 국가를 살릴 해법이 있어요. 고담준론을 놓고 다툰다고 민생이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최명길이 대한민국에 어떤 처방을 내릴 거냐? 일단 내부를 안정시키려 할 겁니다. 경제 문제를 해결해 팍팍한 삶을 풀어주는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겁니다. 책임감, 희생정신, 유연함, 포용력, 전략적 사고가 최명길의 행적에서 요체입니다.” 

그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앞서 말했듯 사면수적 상황에서 강대국을 움직일 지렛대가 없다면 우리가 유일하게 기댈 곳은 내부에서 컨센서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합의를 통해 마련된 원칙을 토대로 외교 정책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를 이뤄내야 합니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폐기 이후 트럼프가 평택기지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하면 정치, 군사 차원에서 미·중 가운데 하나를 택일하는 상태까지 가는 겁니다. 참으로 머리 아픈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신동아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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