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 씩 책 한 권을 고재석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은 세대 프레임을 데이터로 증명했다는 데 있다. 저자의 분석을 요약하자면, 386세대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87년 민주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다. 이들은 1987년을 기점으로 대거 정치에 진입해 ‘권위주의’를 몰아내며 그 공백을 메웠고, 1997년 경제위기 전 취업해 세계화의 과실을 따 먹었다. 현 청년 세대가 겪는 취업난을 경험하지 않았고, IMF발 구조조정 당시에는 산업화 세대가 겪은 실업의 고난을 면했다. 한국 현대사가 자랑하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과실을 동시에 취한 ‘운’ 좋은 세대다.
386세대 처지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운’ 좋았던 걸 어떡하라고? 최루탄 가스를 마셔본 적 없고, 남영동 대공분실의 공포를 느껴본 적 없는 11학번으로서 그들이 민주화를 이뤄내면서 희생해야 했던 세월을 모른다. 배고픔 모르고 자란 90년대생으로서, 그들이 겪은 빈곤도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386세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상층부, 즉 ‘20대 80’의 사회에서 ‘20’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는 공공기관-대기업 정규직 성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나이 듦’으로 보수(報酬)와 고용 안정을 보장해 주는 연공서열제의 수혜를 누렸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모’다. 공모는 연령주의에 대한 믿음을 둔 ‘동아시아적 위계 구조’다.
그런데 이 위계 구조에 동의하지 않는 세대가 등장했다. 바로 청년이다. 요즘 청년들은 짱돌을 들지 않는다. 다만 ‘탈조선’한다. 외국계 직장에 취업하고 해외로도 나간다. 유교식 입신양명에 얽매이지 않고 ‘소 팔아 키운 장남’의 가족 생계 부양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욜로(You Only Live Once·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청년들이 택한 삶의 방식이다.
물론 해외에 나가는 것도, 가계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것도 청년 일부에게나 허용된 특권일 수 있겠다. 이러나저러나 불평등은 없어지지 않는다. 사회안전망이 든든하게 깔리면 나아질까? “사다리 하나를 더 올라가기 위해 (중략) 동맹을 구축하고, 자리를 보전하고, 이익을 나누는”(160쪽) 한국형 위계 구조에서는 쉽지 않은 과제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