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허문명의 SOUL

“억울해도 자살하지 마세요, 惡을 도와주는 겁니다”

6년 만에 혐의 모두 벗은 박현정 前 서울시향 대표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2-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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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 밝히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일 없었다

    • 거짓말로 남의 인생 파멸시킨 사람들이 승승장구

    • 나 스스로에 대한 결백이 나를 지킨 힘

    • 약자 이미지로 동정을 사기는 싫다

    • 진실도 다수결이 결정하는 세상

    누구나 힘든 시기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팎으로 뒤숭숭하고 먹고살기가 막막한 이런 때야말로 정신 줄을 꽉 붙잡아야 합니다. ‘허문명의 솔(soul)’은 삶을 뒤흔들어대는 여러 난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영혼과 정신 줄을 꽉 붙잡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첫 회 주인공은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입니다.<편집자 주>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박현정(58)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와의 인연은 그가 시향 대표로 일하던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2월 취임한 그는 처음에 클래식에 ‘문외한’이라더니 빠른 속도로 지식이 늘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보였고요. 그러다 ‘서울시향 사태’가 터졌고 기자는 햇수로 6년간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그를 만나 근황을 물었습니다. 

    새해 벽두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의 변함없는 ‘투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한 법정싸움 끝에 지난해 말 자신에게 씌워진 마지막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음으로써 무려 6년 만에 혐의를 모두 벗었습니다. 

    서울시향 직원들이 2014년 12월 강제추행, 성희롱, 업무방해 등 9개 혐의로 고소한 사건은 3년 뒤인 2017년 검찰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됐고 유일하게 벌금 300만 원으로 유죄가 선고됐던 ‘폭행죄’가 2019년 11월 28일 2심에서 무죄가 나온 것입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져가는 서울시향 사태, 수년간 지난한 법정투쟁을 벌여온 박 전 대표를 설 연휴가 끝난 2월 5일 만났습니다. 그는 지옥 같았던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요. 



    그는 1962년생입니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사회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삼성화재해상보험 상무, 삼성생명보험 전무, 여성리더십연구원 대표를 지냈고요. 

    박 전 대표는 겉보기에는 별로 변함이 없었습니다.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차고 카랑카랑했으며 에너지도 넘쳤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수락하면서 “사진은 찍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위 사람들이 최근에 찍은 내 사진을 보고 웃음기가 사라졌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였지만 그동안 겪었을 마음고생에 공감이 됐습니다. 기자가 “남들 같으면 무너졌을 시련을 겪었지만 당당하고 자신감에 찬 에너지가 전해진다”며 사진 찍기를 다시 권하자 그제야 응했습니다.

    “모든 입증 책임이 나에게 있었어요”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요. 

    “매일매일 수사와 재판 준비에 ‘올인’했어요. 진실을 밝히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하거나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저한테 성희롱과 폭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10명이나 되고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스무 명도 넘는데 저는 오로지 혼자였으니까요. 당사자들은 한 마디씩이지만 저는 거기에 대해 일일이 수십 개의 증거자료를 찾아야 했어요. 그들 말이 왜 거짓인지 입증해야 할 책임이 제게 있었기 때문에 정말 하루하루 시간이 모자랐어요. 수사 과정에서 제 변호사가 제 편이 아닌 경우까지 있었고요. 세상 공부 정말 많이 했습니다.” 

    지난 시간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흐르는지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표정도 목소리도 가라앉았습니다. 

    “경찰과 검찰 조사 과정에서 모두 나온 내용이지만 직원들은 정명훈 감독 등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면서 저에게 오랜 기간 고통을 주었습니다. 50년 넘게 차곡차곡 쌓아온 제 커리어는 물론 전(全) 인생이 처참하게 무너져 모든 것을 잃었으니 결국 그들의 의도대로 된 거지요.” 

    -서울시향 사태는 2014년 12월 2일 사무국 소속 직원 17명이 폭언, 성추행, 인사전횡 등을 당했다면서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익명의 e메일 호소문에서 촉발됐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당신을 고소했지요. 

    “직원 10명이 2014년 12월 22일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수사부에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강제추행 3건, 성희롱 4건, 업무방해 1건, 명예훼손 1건 등 총 9건이었습니다. 검찰은 이를 종로경찰서로 보냈고 경찰은 9개 혐의 모두에 무혐의 결론을 내고 2015년 8월 10일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검찰은 2년이나 지난 2017년 6월, 8개 고소 사실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고 45세 여직원이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리는 강제 추행을 당했다’고 한 것에 대해 ‘강제 추행이 아닌 폭행’이라면서 벌금 300만 원으로 약식기소를 했습니다. 저는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2018년 8월 1심 재판부가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지만 지난해 11월 28일 2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가 선고된 거죠.” 


    “사법 체계가 정말 문제가 많아요”

    -이 사건은 피의자가 피해자가 되고 유죄가 무죄가 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어요. 

    “뒤에 말씀드리고 싶지만, 우리 사법 체계가 정말 문제가 많아요. 누가 검사고 판사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요. 어떻든 수사 과정에서 직원들의 거짓말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남자 직원은 거짓말 탐지기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고, 회식에 동석했던 사람들이 ‘아무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증언했어요. ‘술집 마담 하면 잘 하겠다’는 말은 직접 들은 게 아니라 공범자들로부터 전해 들은 말로 저를 고소한 것이고, ‘애교가 많아서 노인네들에게 보낸다’는 말도 본인 진술밖에 없었고, ‘시말서를 쓰게 했다’는 것도 제가 아니라 서울시향 감사역이 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제가 ‘여직원을 껴안아 성추행하는 걸 봤다’는 목격자는 이후 ‘못 봤지만 본 걸로 해달라’는 메시지 압수물을 보여준 뒤에야 ‘피해를 주장하는 여직원 부탁으로 허위 진술을 했다’고 자백했어요.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렸다’고 주장한 여직원은 성적 수치심 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했지만 정작 1차 병원 진단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고요. 그런데 2년 후 검찰은 첫 번째 진단서를 숨기고 두 번째 진단서만 첨부하면서 저를 기소했어요. 이후 고검에서 병원을 압수수색해 진단서의 수상한 점을 밝혀 바로잡혔죠. 기가 막히죠.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했으면 애당초 기소도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당신이 2014년 12월 19일 허위 호소문을 유포한 익명의 17인을 찾아내 처벌해 달라고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에 진정서를 낸 사건은 어떻게 처리됐나요. 

    “15개월 동안 3차례 압수수색, 33명에 대한 85회 조사 등을 통해 호소문 내용이 모두 허위임을 밝혀냈습니다. 직원 10명에 대해 기소 의견, 미국 국적으로 해외에 체류하면서 경찰의 4회 출석 요구에 불응한 정 감독 부인 구모 씨는 기소중지 의견으로 2016년 3월 검찰에 송치됐고요. 검찰은 2년이 지난 2018년 5월에야 허위 성추행을 주장하던 남자 직원만 기소하고 나머지 직원 9명은 ‘허위라는 인식이 없었다’며 불기소했습니다. 구씨도 조사 한 번 하지 않고 역시 불기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검에 항고했습니다. 지난해 7월 검찰은 호소문의 허위 사실 12개에 대해 정 감독 비서를 비롯한 여직원 네 명을 허위 성추행을 주장하던 남자 직원과 공범으로 추가 기소하고 나머지 5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4년 12월 5일 박현정 당시 서울시향 대표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명훈 예술감독과 서울시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2014년 12월 5일 박현정 당시 서울시향 대표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명훈 예술감독과 서울시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 사건 호소문 및 고소장 제출에 동참한 피해자를 비롯한 시향 직원 10명은 호소문 유포 이후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피해 사례를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보태어 피고인을 성희롱 등으로 고소하고 서울시향에서 내보내는 것은 물론, 더 이상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전략을 세우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폭행) 피해자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변호사로부터 상담받을 것을 권유하며 나아가 ’티 안 나게 진단서까지 발급받으라’는 등으로 적극 동참하였다고 했다.’ 

    -‘더 이상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이란 대목을 읽는 저도 가슴이 오그라들더군요. 

    “거짓말로 남을 모함하고 타인의 삶을 파멸시킨 사람들이 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천벌이라는 게 없어진 세상 아닌가, 권선징악이란 게 사라져버린 거 아닌가 절망할 때가 많아요. 죄를 짓고도 피해자인 척 코스프레를 하면 동정받는 세상,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이란 생각에 하늘이 정말 있는지 한숨이 나옵니다. 

    평생 남에게 나쁘게 행동한 적이 없고 피해나 손해를 끼친 적이 없어요. 어릴 적부터 ‘바른생활 어린이’였어요. 완벽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한순간에 거짓에 희생돼 모든 것을 잃으니 기가 막혔죠. 무엇보다 정말 사이좋게 지냈던 직원들이 거짓 증언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거짓말을 만들고 서로서로 증인이 돼주었어요. 배신감과 인간에 대한 회의,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른바 사회 상류층,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부도덕을 너무 많이 경험했어요. 자신들의 고소장을 작성해 주는 변호사를 향해 단톡방에서 ‘유명한 극작가 저리 가라다’ ‘서울 법대에서 이런 것도 가르쳐주나, 문창과 출신인 듯’이라는 대화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시향 직원들은 대부분 유복한 환경과 유명한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위증을 하고 허위 증인을 섭외하고, 진단서와 녹음을 조작하는 걸 보면서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어요. 카톡 대화에는 10명 직원의 부모들도 등장하는데 엘리트 계층의 그릇된 사고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지요.”

    “극단적 선택은 악에 굴복하는 거예요”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정신과 치료 같은 것을 받은 적은 없나요. 

    “없어요. 제가 좀 둔해요. 예민한 성격이었다면 정말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당신을 버티게 해준 힘은? 

    “가족과 친구들이죠.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대해줬어요. 저의 결백을 믿으니 걱정도 응원도 하지 않았어요. 함께 근무하던 옛 직장 직원들과 동료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어요. ‘내가 헛살지는 않았구나’ 했죠.” 

    -종교가 있나요. 

    “없어요. 저를 모함한 사람들이 오히려 독실한 신앙인임을 내세우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하늘이 있다면 반드시 권선징악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고, 믿고 있어요. 저는 신이 과연 계신지, 하늘이 있는지 지켜보려고 해요.” 

    그는 “가장 큰 힘은 사실, 나 스스로에게 결백하고 진실하다는 거였다”며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결백해도 아무도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지치게 마련입니다.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말이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악(惡)에 지는 거잖아요. 저를 향해 많은 악플이 있었다는데 전혀 보지 않았어요. 인터넷도 일부러 하지 않았고요. 아직까지도 신문이나 TV는 보지 못해요. 트라우마가 이렇게 무서워요.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지 몰라요. 

    집단 악플에 시달리거나 억울하게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그 심정을 너무 잘 알지만, 제발 굴복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스스로 결백하다면 자신을 믿어야 해요. 포기하고 무너지는 건 나를 수렁에 빠뜨린 악인(惡人)들을 즐겁게 해줄 뿐이란 생각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버텨야 해요. 내가 잘못한 게 없으면 그 진실의 힘을 믿어야 해요. 악에 지면 절대 안 돼요.” 

    그의 어투는 단호하게 딱딱 끊어졌습니다. 

    -펑펑 울어본 적이 있나요.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나와요. 한번 크게 울기라도 해봤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눈물이 안 나와요.” 

    -이번 일을 겪으며 그렇게 된 건가요. 

    “원래도 징징대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일을 겪으면서 감정이 얼어붙어 버린 것 같아요. 너무 억울하면 울음도 안 나온다는 걸, 당해 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거예요.” 

    포탄이 어디서 날아올지, 어디에 함정이 있는지, 비행기는 언제 또 집중포화를 때릴지 모르는 초긴장 상태로 살아왔어요. 경찰, 검찰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던 제가 경찰서, 검찰, 법원에 드나드는 것 자체가 모멸감이 들어 힘들었습니다. 처음 받아 보는 수사와 재판 절차를 홀로 배우면서 대응하는 것이 참 힘들었어요.” 

    -평소 처신이 서툴러 일을 자초했다는 자책감 같은 감정은 없었나요. 

    “왜 시향에 갔을까 후회한 적은 있어요.”

    “건강하게 살아서 오래오래 버티라는 말이 힘이 되더군요”

    -시향에는 어떻게 가게 됐죠. 

    “삼성그룹에서 여성인력 관련 업무를 하다 커리어우먼들의 회사 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어 여성리더십연구원이라는 개인 연구소를 운영했어요. 서울시에서 마침 관련 프로젝트를 공모한다고 해서 서울시 관계자를 만나던 중에 시향 대표직 제의를 받았죠. 처음에는 고사했다가 정명훈 감독과 박원순 시장이 모두 동의한 후보는 1년 만에 처음이라면서 간곡히 요청하기에 응했습니다. 연봉도 커리어도 모두 손해 보는 일이었지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결심했죠. 

    정 감독이 서울시에 저의 퇴진을 요구했을 때, 미련 없이 떠나려 했어요. 다만 서울시 산하기관장으로서 서울시민에 대한 예의가 있으니 ‘시의회가 끝나는 12월 중순에 그만두겠다’고 분명히 의사표시를 했기 때문에 기다려 줄 줄 알았죠. 

    굳이 그만두겠다는 사람을 허위 호소문까지 언론에 터뜨려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했던 이유를 처음엔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제는 전모를 알게 됐지만 말이죠. 제가 목격한 것은 불법과 불의, 부당한 것들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세금을 사용하는 조직을 그렇게 운영해서는 안 되며, 서울시나 언론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이번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가진 위선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악인도 싫지만 착한 척,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척, 예술에 몰두하는 척, 인권을 내세우며 온갖 화려한 표정과 제스처를 동원하고 뒤로는 온통 자기 욕심밖에 없는 위선자들의 모습은 정말 가증스러웠어요. 자기들끼리 나눈 카톡에도 나와요. ‘대중 앞에서는 온화하게, 두 개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고.” 

    -괴물과 싸우면 괴물을 닮아간다고도 하던데요. 

    “심신이 피폐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괴물이 될까 두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오로지 결백을 증명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하늘은 때로 사람을 크게 키우기 위해 시련이라는 축복을 준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되던가요. 

    “제게 온 응원 문자 대부분이 그런 내용이에요(웃음). 그런데 엄청난 고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리는 사람에게는 ‘시련도 약(藥)이다’ ‘큰일하려면 겪어야 한다’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제일 힘이 된 말은 ‘건강하게 살아서 오래오래 버티라’는 소박한 말이었어요.” 

    -건강은 괜찮은가요. 

    “별로요.” 

    -술도 마시나요. 

    “한 방울도 안 마셔요. 본래부터 즐기는 스타일도 아닌 데다 시향에서 외부 거래처 모시고 단 한 번 가진 ‘술자리’에서 모함을 당했는데 술이 제 입에 들어가겠어요.” 

    -약하게 보이는 게 때로 이득이지 않을까요. 세상으로부터 동정받고 싶지는 않았나요. 

    “대중 앞에서 눈물 흘리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진실을 호도하는 위선자들을 제일 싫어합니다. 진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제가 ‘힘들다’고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건 민폐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내 고통을 남에게 이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다 보니 쉽게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해요.” 

    그는 시종일관 냉철한 표정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떠올릴 땐 분노 같은 감정이 실릴 만도 한데 그런 단어들도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무서운 순간들은 있었다”고 해요.

    “노후자금을 헐어 쓰고 있어요,”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는 2월 5일 ‘신동아’ 인터뷰 자리에 그동안 법정투쟁하며 만든 자료를 모두 들고 나와 조목조목 설명했다. [홍중식 기자]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는 2월 5일 ‘신동아’ 인터뷰 자리에 그동안 법정투쟁하며 만든 자료를 모두 들고 나와 조목조목 설명했다. [홍중식 기자]

    “사건 초기이던 2014년 12월, 기사가 온 신문과 방송에 도배된 때였어요.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기까지 한 달여 동안 새벽 4~6시에 발신자 정보 없는 부재 중 전화가 3~4일에 한 번씩 와 있는 거예요. 너무 무서웠어요. 지금도 누가 왜 그 시간에 번호까지 숨기고 전화를 했을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져요. 다행히 저는 휴대전화를 묵음으로 해놓아 벨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만약 새벽에 받았는데 아무 말이 없다거나 욕설을 해대거나 협박이라도 당했다면 견뎌내지 못했을 거 같아요. 

    그다음으로 무서웠던 순간은 직원들이 단톡방에서 저를 음해하는 메시지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예요. 몇 달 동안 제대로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어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하고 사악해질 수 있는지, 사회적 명성, 성공, 탐욕, 위선, 허영, 허세, 허위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잘나가던 삼성그룹 임원을 지낸 커리어우먼이 한순간에 추락한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삶의 위기인데요. 무너지지 않은 걸 보면 정말 정신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어려운 일을 겪다 보니 저보다 어려운 분들 처지가 절절하게 이해되더군요. 저는 그래도 변호사 선임비라도 있어서 싸우고 있지만 돈이 없어서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나, 그런 분들이 갖게 되는 반(反)사회적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약자들의 마지막 보루라고도 할 수 있는 검찰, 법원, 언론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심경일 거예요. 정말 언론, 검찰, 법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의 크기와 그에 합당한 책임감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어떻게 버티고 있나요. 

    “노후자금을 헐어 쓰고 있어요,” 

    -그래도 고난 속에서 얻은 게 있다면요.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쁜 세상에 대해 알게 된 것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술을 왜 하는가’라는 철학적 명제부터 유명인의 허명(虛名)과 위선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술계의 비리 구조나 비영리재단, 공공기관의 방만함에 대해서도 알았고요. ‘내가 내는 세금이 이렇게 낭비되고 있구나’ 확실하게 알게 됐지요. 

    사법 체계도 문제가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평생 처음 고소란 것을 당해 보면서 경찰, 검찰, 법원으로 이어지는 법조계 문제점을 체득했습니다. 제 사건의 경우 경찰의 압수물이나 성실하게 수사한 기록을 검찰이 자신들이 정해 놓은 결론에 맞게 마음대로 취사선택하고, 숨기고,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어요. 

    판사들도 법 해석이 사람마다 너무 다르고 부적절한 프로세스에 대해 검증이나 평가 절차가 없더라고요. 선진국에서는 증거물과 판결문이 동시에 공개돼 판사가 적절하게 판단했는지 제3자가 다시 검증할 수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판결 과정의 불투명함이 가장 큰 문제로 보여요. 판·검사님들 일이 정말 격무더라고요. 하지만 양심 불량한 일부 판·검사 때문에 대다수 고생하는 법조인의 노고가 덮이고, 신뢰가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워요.”

    “팩트도 다수결로 정하는 세상이 돼버렸어요”

    그는 “팩트와 진실이 사라진 시대라는 점을 절감했다”고도 했습니다. 

    “팩트도 다수결로 정하는 세상이 돼버렸어요. 진실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편에 서 있느냐’로 정해지는 거죠. 우리는 거짓말에 너무 관대해요. 벌을 안 받으니 거짓 증언이 나오고 죄의식도 없어요. 무고, 사기, 위증 같은 거짓말 범죄가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정직, 통계, 과학, 진실이 사라진 자리에 이미지만 난무하고 상식과 사실이 존중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어떻게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겠어요.” 

    -특히 당신 사건은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 직원을 성희롱한 것으로 보도돼 사람들 입에 더 오르내린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를 망신 주는 방법으로는 거짓 성희롱 제기가 요즘 가장 유행 아닌가요. 직원들 고소장을 작성한 상대 변호사가 단톡방에서 ‘승산 있는 아이템은 성희롱’이라면서 ‘과장과 거짓말 양념을 보태서 성추행+성추행+성추행=정신병자로 묶는 그림의 고소장을 작성했다’고 말한 대목이 나와요. 

    인생이 참 아이러니한 게 1994년 삼성에 입사해 성희롱 예방교육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 저예요. 지금이야 일반화됐지만 임원과 중간간부들을 상대로 한 첫 체계적인 교육이었죠. 미국과 유럽에 출장까지 가서 선진 기업들이 하고 있는 걸 조사하고 공부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커리큘럼을 짰어요. 그러던 제가 성희롱 가해자로 고소를 당했으니 인생의 한 부분이 완전히 무너진 거죠.”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는 ‘가짜 미투’도 정말 많잖아요.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정말 나쁜 일이지만, 가짜가 난립하도록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짜 미투는 훨씬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가짜들 때문에 진짜 피해자가 보호를 못 받으니까요. 이번 일을 겪으며 또 하나 실망한 건 소위 ‘여성운동가들’이에요. 삼성에서 성희롱 예방교육, 여성관리자 프로그램을 짤 때 여성학자나 여성단체들에도 정보를 제공해 도움을 줬거든요. 그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제가 여권신장에 얼마나 관심이 많았고 노력한 사람이었는지 잘 알아요. 그런데 일이 터지니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공격하거나 외면했어요. 배신감과 씁쓸한 기분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 쉰둘에 법정 투쟁을 시작해 이제 쉰여덟이 됐습니다. 시간이 너무나 아깝네요.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계절 바뀌는 것도 모르고 경찰, 검찰, 법원만 쳐다본 세월이 어느새 6년이 지났습니다. 하는 수 없지요. 억울한 일을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나요.”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법정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모함과 거짓으로 내 인생을 파탄으로 몰아간 사람들을 응징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동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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