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유통 인사이드

신동빈 ‘뉴롯데’, 상장·실적·이미지 얽힌 고차방정식

맨손 신화 쓴 1세 시대, 생존에 사활 건 2세 시대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0-03-0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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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롯데, 껌값 2원 하던 때 매출 3억8000만 원

    • “故 신격호 지분 상속, 지배 구조에 영향 무”

    • ‘뉴롯데’ 가늠자 호텔롯데 상장, 관건은 실적 회복

    • 유통·화학 경쟁력 회복, 갑질 이미지 타파도 숙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뉴시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뉴시스]

    “기존의 것은 모두 버리고 새로운 시장의 판을 짜는 게임 체인저가 되자.” 

    1월 15일 신동빈(65) 롯데그룹 회장은 ‘2020 상반기 롯데 VCM’에서 이렇게 말했다. VCM은 신 회장이 임원들로부터 사업 계획을 보고받고 향후 경영 전략 방향을 공유하는 자리다. 통상 앞으로 잘해보자는 격려와 덕담이 오가는 행사로 여겨졌다. 

    이번에는 달랐다. 신 회장의 첫 마디는 “오늘은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드리지 못할 것 같다”였다. 그는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기업의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롯데가 많은 사업 분야에서 업계 1위를 차지하며 성장해 왔지만, 오늘날도 그러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평소 상대방 의견을 듣는 편이던 신 회장 스타일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모습이다. 

    그는 과거에서 벗어나 시장의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이런 메시지를 계열사 대표와 임원들을 향해 내놨다. 그러나 신 회장 역시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할 처지에 있다. 그는 부친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만들어온 롯데그룹의 판을 새로 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롯데그룹에서는 이를 ‘뉴롯데’라고 칭한다. 

    ‘신동빈의 뉴롯데’는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롯데의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롯데를 돌아봐야 한다. 



    롯데를 재계 5위까지 키워낸 신격호 명예회장. 그가 1월 19일 영면에 들었다.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뉴롯데’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쓴소리를 낸 지 나흘 뒤다.

    껌 팔다 호텔까지…신격호 신화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21세기북스 제공]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21세기북스 제공]

    신 명예회장은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1948년에 껌 회사인 롯데를 창업했다. 롯데껌은 일본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마침 미군이 주둔하면서 껌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였고, 품질을 시중 제품보다 한층 끌어올리면서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렸다. 

    롯데는 일본 껌 시장에서 1위에 오른 뒤 이를 발판 삼아 사업을 확대했다. 신 명예회장은 초콜릿과 캔디, 비스킷 등을 만들며 롯데를 종합 제과회사로 키웠다. 이후 롯데상사와 롯데부동산, 롯데물산 등을 잇달아 설립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한국으로 눈을 돌린 건 신 명예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 지 25년 만이었다. 1965년 한·일 수교로 양국 간 경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기회가 왔다. 그의 꿈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해외 자본을 통해 국내 산업을 일으키고자 했던 터라 상황도 잘 맞아떨어졌다. 신 명예회장은 1967년 한국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한국에서도 시작은 껌이었다. 롯데 껌은 당시 서구 입맛을 앞세운 바브민트와 쥬시민트 등이 인기를 끌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껌값이 2~5원에 불과하던 1967년에 매출 3억8000만 원을 올릴 정도였다. 롯데가 게재한 당시 신문 광고에는 ‘(롯데껌을) 10인에 7인은 알고 있다’라는 문구가 쓰였다. 그야말로 국민적 인기였다. 

    롯데는 이후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 롯데햄·우유를 줄줄이 설립하며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에 진출한 지 10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이때부터 이른바 ‘현해탄(대한해협) 경영’을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양국 회사 경영을 이어온 것이다. 양국 간 감정이 안 좋을 때마다 한국에서는 일본 기업으로, 일본에서는 한국 기업으로 지목되며 곤욕을 치르는 역사의 시작이 바로 이때다. 

    롯데가 지금의 재벌 기업으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73년 롯데호텔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당시 롯데제과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는데, 이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1970년 당시 서울시의 위생 단속 결과 롯데제과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됐다. 그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신 명예회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이때 파동을 무마해 주는 대신 호텔롯데를 지어 경영하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혹자는 이를 ‘일대 반전의 기회였다’라고 표현한다. 롯데가 이후 식품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호텔과 쇼핑, 건설, 석유화학, 금융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재벌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故 신격호 지분 상속, 패권 다툼에 영향 없을 듯

    일각에서는 이를 박 전 대통령이 롯데에 특혜를 준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기도 한다. 박 전 대통령의 특혜는 롯데백화점을 설립할 때에도 이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롯데그룹이 세우려던 백화점은 당시 서울시가 추진하던 도심 억제 정책에 반(反)하는 사업이라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당시 이를 백화점이 아니라 ‘쇼핑센터’라며 허가해 줬다. 롯데가 유통 왕국으로 성장하는 첫걸음이었다. 

    정권과의 긴밀한 인연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계속됐다. 1981년 ‘88올림픽’ 서울 유치가 확정되자 전두환 정부는 서울 송파구 잠실에 대규모 관광위락시설 건설을 계획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정부는 신 명예회장을 좋게 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롯데와 이전 정부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이에 신 명예회장은 전 전 대통령을 찾아 독대했다. 면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 정부는 신 명예회장의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잠실 일대가 ‘롯데 타운’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이제는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여겨지는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우여곡절을 겪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건축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신 명예회장의 숙원이자 ‘최후의 도전’이었던 롯데월드타워의 건설로 그의 경영 인생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자식들의 ‘경영권 다툼’을 지켜봐야 했다. 

    롯데월드타워 공사가 한창이던 2015년, 신 명예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의 패권을 놓고 다투기 시작했다. 이 다툼은 신 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신 명예회장은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되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 

    세간에서는 여기까지를 롯데그룹의 ‘1막’이라고 한다. 즉 신동빈 회장은 2막을 만들어가야 할 단계에 서 있다. 일단 신 회장이 가진 그룹 수장 지위는 굳건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서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별세가 그룹의 지배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신 회장은 지난해 6월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총에서 주요 주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사내이사에 재선임됐다. 반면 신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인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이사 선임 재도전은 불발로 끝났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신 명예회장의 지분 상속이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에 미칠 영향은 없을 전망”이라며 “한국 내 지배 구조는 이미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재편이 완료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신동빈의 뉴롯데’를 만드는 작업 중 최우선으로 꼽히는 것은 호텔롯데 상장이다. 이를 통해 신동빈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롯데가 ‘한국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호텔롯데 실적 회복해야 상장 가능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롯데지주가 출범하기 전까지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의 지주사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호텔롯데는 롯데지주 지분 11.1% 외에 롯데물산(31.1%), 롯데알미늄(38.2%), 롯데건설(43.1%), 롯데렌탈(25.7%) 등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호텔롯데의 지분 대부분을 일본 롯데홀딩스와 일본 롯데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롯데가 일본 그룹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건 이런 구조 때문이었다. 

    호텔롯데를 상장할 경우 주식 수가 늘면서 일본 계열사들의 지분율이 줄게 된다. 상장 후에는 호텔롯데와 롯데지주를 합병하는 방식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호텔롯데 상장은 롯데지주와의 합병을 통해 국내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를 완성하기 위한 필수 단계다. 이 경우 호텔롯데 지배 아래 있는 계열사들에 대한 지주회사 내 편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격호의 롯데’는 한일 양국을 오가는 식의 ‘현해탄 경영’으로 운영됐다. 반면 ‘신동빈의 뉴롯데’는 한국 시장에 무게를 실으면서 ‘일본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가는 셈이다. 

    다만 호텔롯데 상장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016년 상장을 추진할 당시만 해도 호텔롯데의 기업 가치는 15조 원이었다. 하지만 신 회장이 국정 농단에 연루된 데 이어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악재가 터지면서 실적이 악화했다. 황각규 롯데 부회장은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호텔롯데 상장과 관련해 “사업 안정화가 이뤄진 다음에 진행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신 회장은 올해 인사에서 호텔롯데에서 잔뼈가 굵은 송용덕 부회장을 롯데지주 대표이사로 전면 배치했다. 또 재무 전문가인 이봉철 사장을 호텔&서비스 BU장으로 선임했다. 호텔롯데 상장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그룹의 핵심적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유통과 화학 부문의 경쟁력 회복도 신 회장이 떠안은 과제다. 

    우선 유통 부문 변화가 시급하다. 신 명예회장 때만 해도 ‘백화점의 시대’가 이어지며 롯데그룹은 업계 1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온라인 시대’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롯데는 아직 이렇다 할 변화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롯데케미칼 실적 부진, 그룹 전체 타격 줄 수도

    롯데그룹의 캐시카우 구실을 해온 롯데케미칼 역시 글로벌 업황 악화에 시름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은 전년 대비 9.9% 줄어든 7조712억 원, 영업이익은 51.4% 감소한 6932억 원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은 그룹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이에 신 회장은 지난해 말 세대 교체에 가까운 대규모 인사를 진행했다. 또 조직 개편과 대대적인 인력 재편 등을 통해 전열을 재정비했다. 

    롯데그룹이 신 명예회장 시절 정권들로부터 특혜를 받으며 성장해 온 데다가 지속해 갑질 이미지로 비판받아왔다는 점도 신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는 올해 신 회장의 신년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우리 사회와 공생을 추구하는 ‘좋은 기업’이 되자. 롯데가 하는 일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믿음이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뉴롯데’의 큰 그림은 그려졌다. 이는 신 명예회장의 존재와 별개로 진행돼온 일이다. 롯데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신동빈 체제의 ‘뉴롯데’ 만들기가 진행돼 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신 명예회장의 별세는 실질적인 의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롯데의 2세 시대 경영이 더욱 본격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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