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한국 맥주보다 맛있는’ 대동강맥주 맛의 비밀

대동강맥주 수출 성공 힘입어 삼일포위스키도 출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20-02-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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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사는 사람만 마시는 비싼 술

    • 영국 양조장 인수해 기술 획득

    • 러시아 발티크맥주 벤치마킹

    • 中기업이 라이선스 생산하기도



    [신원건 동아일보 기자]

    [신원건 동아일보 기자]

    대동강맥주는 북한이 자랑하는 수출품이다. 2012년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화끈한 음식, 따분한 맥주’라는 제목의 서울발(發) 기사에서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떨어진다고 혹평하면서 화제가 된 술이다.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 청와대 게시판에는 대동강맥주를 수입해 달라는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신동아’가 20대 청년 5명과 함께 대동강맥주를 시음해 봤다. 청년들은 하나같이 “한국 맥주보다 맛있다”면서 놀라워했다. 생전의 김정일은 “남조선 맥주는 정말 맛없다”고 혹평한 적이 있다. 세계 맥주 애호가 사이에서 대동강맥주는 ‘레어템(희귀 아이템)’으로 통한다. 한국 맥주보다 맛있다는 평가를 듣는 대동강맥주 맛의 비밀은 뭘까.

    “조선의 매력 알리는 도구로 만들라”

    첫째로는 북한 당국의 전폭적 지원이 꼽힌다.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술을 좋아한다. 김정일은 와인과 코냑을 즐겼고 김정은은 ‘맥주 마니아’다. 김정일은 “맥주를 조선의 매력을 알리는 도구로 만들라”고 지시했으며 2002년 대동강맥주공장을 찾아 “사시사철 인민에게 신선한 맥주를 공급하게 됐다”면서 흡족해했다. 

    둘째는 깨끗한 물이다. 산업화가 더딘 데다 산지가 많아 신선한 물을 공급받는 게 수월해 품질 유지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대동강맥주는 대동강 상류 지역의 맑은 물로 빚는다. 



    셋째는 쌀이다. 대동강맥주는 일곱 종류(1~7번)가 생산되는데 만성적 쌀 부족을 겪으면서도 원재료의 쌀 함량이 30%, 50%, 80%, 100%다. 쌀과 보리를 섞어 맥주를 제조한다. 쌀 함량이 많을수록 깔끔한 맛이 난다. 보리 100%인 1번은 쓴맛이 강하다. 북한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은 보리 70%, 쌀 30%인 알코올 5.5%의 2번이다. 2017년부터 보리 대신 밀을 사용한 밀맥주와 떼기식통맥주(캔맥주)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대동강맥주 외 금강맥주, 룡성맥주, 봉학맥주가 북한에서 유명하다. 수출도 하는 대동강맥주가 대표선수 격인데 대동강맥주공장의 역사는 길지 않다. 

    북한 당국이 2000년 180년 전통의 영국 양조장을 인수한다. 양조기를 분해해 부품을 평양으로 옮긴 후 다시 조립해 대동강맥주공장을 세웠다. 2002년 4월부터 맥주를 생산했다. 김정일은 대동강맥주공장을 잇따라 현지지도하면서 질을 더욱 높이라고 주문했다. 


    대동강맥주 2호 中기업이 라이선스 생산

    대동강맥주축전. [조선중앙TV 캡쳐]

    대동강맥주축전. [조선중앙TV 캡쳐]

    대동강맥주공장이 건립된 때는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직후다. 식량 부족을 겪으면서도 맥주 공장을 건설할 만큼 김정일의 맥주에 대한 관심은 깊었다. 2002년 5월 30일 노동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보통 때 평범한 날에 일떠선 공장이라면 이렇게 정이 가겠습니까.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난의 사선 천리를 헤친 지 얼마 되지 않던 그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을 위해 그토록 귀중한 자금을 들여 마련해 주신 공장이니 더 정이 가는 것입니다.” 

    대동강맥주는 북한에서 잘사는 사람만 마시는 비싼 술이다. 평양에서 640㎖ 1병당 1.5달러에 팔린다. 일반 주민은 ‘감주’라고 일컫는 막걸리나 중국에서 수입한 싸구려 고량주를 주로 마신다. 술안주는 두붓국, 명탯국, 만둣국 등이다. 쪽파, 말린 조갯살, 인조고기 무침, 말린 낙지(북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라고 칭한다)도 술안주로 인기다. 

    중국에서도 대동강맥주가 잘 팔린다. 식당에서 중국 맥주보다 4배가량 비싼 20~25위안(3400~4200원)에 제공된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랴오닝(遼寧)성 둥강(東港)에서 대동강맥주 2호를 라이선스해 생산하기도 한다. 중국이 자본을 대고 북한이 기술과 노동을 제공하는 형태로 합작이 이뤄졌다. 

    북한에서는 한국과 달리 유럽식 맥주가 대세다. 한국 맥주 산업은 미국 맥주 영향을 받은 일본 맥주를 벤치마킹하면서 시작됐다. 미국 맥주는 유럽 맥주와 달리 옥수수 같은 부가물(adjunct)을 많이 넣는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버드와이저, 밀러, 코로나 같은 맥주가 ‘부가물 라거’다. 부가물을 넣으면 도수가 낮아져 소비자층이 넓어진다. 맛이 개운해 청량감이 커지는 대신 향이나 풍미는 옅어진다. 

    대동강맥주는 유럽 맥주 중에서도 러시아 발티카맥주의 영향을 받았다. 발티카맥주도 알코올 도수나 재료, 가공법에 따라 0~9번으로 넘버링한다. 김정일이 2001년 8월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발티카맥주 공장을 견학하기도 했다. 

    평양에는 200개 넘는 대동강맥주 비어홀이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경흥관맥주집이다. 1~7번 대동강맥주와 가스맥주(생맥주)를 판매하며 과자와 말린 해산물을 안주로 낸다.

    북한의 國酒는 평양소주

    북한에서 맥주는 술이라기보다는 음료 대접을 받는다. 평양을 방문한 한국 측 인사가 식사 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면 “선생은 술은 안 드시고 맥주만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평양의 부유층 신세대는 햄버거에 곁들여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북한의 국주(國酒·나라의 술)는 대동강식료공장에서 개발한 평양소주다. 알코올 21%, 23%, 25%는 평양소주, 30%와 40%는 평양주라고 한다. 평양주와 평양소주는 한국의 ‘처음처럼’이나 ‘참이슬’처럼 주정에 물을 섞은 희석주가 아니라 증류주다. 쌀과 옥수수를 원료로 한다. 

    한국에서 팔리는 이른바 ‘대동강 페일에일’은 북한과 무관한 맥주다. 붓글씨로 쓴 것처럼 보이는 상표로 인해 북한산처럼 보이지만 수제 맥주 회사 더부스가 덴마크 기업과 합작해 만든 맥주다. ‘대동강 페일에일’이라는 브랜드명으로 판매하려 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에 따르면 대동강 물을 실제로 사용해야 브랜드명에 지명을 쓸 수 있다. 대동강의 ‘동’자 부분에 censored(검열됐다)라는 작은 글씨를 새겨 넣어 ‘대○강 페일에일’로 팔리는 이유다. 

    북한은 최근 대동강맥주의 성공을 디딤돌 삼아 ‘삼일포위스키’를 출시했다. 북한이 자체 브랜드로 수출하는 경공업 제품은 담배와 술이 유이(唯二)하다. 

    신동아와 함께 대동강맥주를 시음한 청년들에게 “편의점에서 4캔에 1만 원에 팔면 마실 거냐”고 물었다. 답은 “당연하죠, 한국 맥주보다 맛있어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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