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 기자]
“최종원 선생님과 ‘연극계의 살아 있는 전설’ 전무송 선생님 헌정 공연을 기획했어요. 서울과 대구·경북 연극인들의 협업을 통해 노년의 인생을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김 교수는 초등 5학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극단 ‘딱따구리’에 입단한 아역배우 출신. 성인이 된 후에는 극단 ‘사다리’(1992)에 들어가 지방공연을 했는데, 1996년 공연을 하러 가던 차 안에서 쓰려져 병원에 실려 갔다. 당시 의사는 단순 복통이라고 진단했지만 입원 10일 뒤 서울대병원으로 올라와 네 차례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의 병명은 장간정맥 혈전증으로 인한 장괴사. 혈전용해제 등으로 응급치료를 해야 했지만 오진(誤診)으로 치료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응급치료를 하지 않아 장이 90% 넘게 괴사돼 대부분 잘라내야 했어요. 의료사고죠. 서울대병원에서 7개월간 입원했다가 개복한 채 배변용 튜브를 꽂고 퇴원했는데, 의사는 살 가망이 낮다고 하더군요.”
천직이라 생각한 배우 생활은 접었지만 그렇다고 삶까지 접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살았다. 중고교에서 연기를 지도하면서 어린이 연기 지도책 ‘맹꽁이 아저씨와 훔쳐보는 연기나라’를 펴냈고, 2004년에는 교수가 됐다. 그사이 그의 장 기능은 기적처럼 회복했고, 2015년 병원을 찾아 성공적으로 봉합 수술을 했다.
“제가 누워 있으면 아버지는 이쑤시개 100여 개를 테이프로 묶어 매일 제 발바닥을 꾹꾹 눌렀어요. 피가 잘 통해야 한다며 지압을 해주셨는데, 참 많이 울었어요. 제가 배우에서 교육자와 평론가로, 이제 연출가로 ‘3막 인생’을 사는 것도 아버지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기회가 되면 다시 배우로서 ‘4막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웃음).”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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