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을 겨냥한 공소장
대통령 묵인 또는 지시 암시한 공소장
다시 불기 시작한 탄핵 바람
盧 ‘사법개혁’ 역주행하는 文·秋
추미애 장관이 ‘X우먼’이 될지도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일 청와대에서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추미애 장관은 왜 이런 이례적 결정을 내렸을까? 추 장관이 독자적으로 내린 판단일까?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 또는 청와대 비서진의 요구로 내린 결정일까? 논란이 일던 와중에 2월 7일 ‘동아일보’가 공소장 전문을 공개했다. 공소장 전문을 읽어보니 추 장관의 이례적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될 대목에서조차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쓰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을 겨냥한 공소장이었다.
대통령 관련해 또 어떤 표현 등장할지…
공소장 서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특히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 청와대 참모진만의 일탈이었다면 굳이 대통령을 포함할 필요가 없는 대목이었다. 그 외에도 이런 표현이 곳곳에 등장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활용’ ‘현직 대통령과 30년 지기’ ‘현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대통령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대통령비서실이 나서’.기소된 이 중 상당수가 청와대 비서실의 핵심 인사기도 하지만, 공소장은 청와대 비서실의 다수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나선 부분을 자세히 적시했다. 이 부분 또한 대통령의 묵인이나 지시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난 1월 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광철 민정비서관 관련 부분은 제외돼 있다. 두 사람에 대한 기소 여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총선 이후로 미뤄졌다. 만약 기소가 된다면, 그 공소장에는 대통령과 관련해 또 어떤 표현이 등장할지 궁금하다.
공소장 공개 이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공소장에 어떤 내용이 나왔다고 해서 그게 사실인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였다. 한병도 전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장환석 전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변호인단은 입장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공소장에는 대통령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을 통해, 대통령이 선거개입에 관여하였다는 인상을 주려는 표현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공소장은 피고인들의 혐의를 유죄로 입증하고자 법원에 제출하는 공문서이지, 정치선언문이 아니다. 심히 우려스럽다.”
검찰은 왜 이런 위험한 공소장을 작성했을까? 수사 원칙에 따른 소신일까?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일까?
동아일보가 공소장 전문을 공개한 직후 권경애 변호사는 이렇게 지적하고 나섰다. “공소장 내용은 대통령의 명백한 탄핵 사유이고 형사처벌 사안인데도 그분(문 대통령)은 가타부타 일언반구가 없다. 이곳은 왕정이거나 입헌군주제 국가인가?”
법무법인 해미르 소속인 권 변호사는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이어서 더 눈길을 끌었다. 보수 성향 변호사들도 나섰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2월 10일 시국선언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것이 확인될 경우 이는 대통령이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野 ‘탄핵 추진’ vs 與 ‘탄핵 쿠데타’
보수 야당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심재철 당시 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2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은 선거 공작의 몸통이 문 대통령일 것이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갖게 됐다”면서 “문 대통령이 몸통으로 확인되면 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곧바로 탄핵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바람이 분 것이 2016년이다. 4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탄핵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탄핵 바람 덕분에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다. 그런데 다시 탄핵 바람이 불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문 대통령은 과거 탄핵 바람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2004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에서 물러나 있던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에서 간사 변호인 역할을 수행하며 국회 소추위원단을 상대로 방어전을 치러냈다. 그 공을 인정받아 2004년 5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고, 2005년 1월 다시 민정수석직에 복귀했다. 노 당시 대통령은 2006년 당시 문재인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물론 여당인 열린우리당조차 코드 인사라며 반대했다. 결국 문 전 수석은 2007년 대통령 비서실장에 기용됐다. 문 대통령에게는 탄핵 바람을 전면에 나서 막아낸 경험에 더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경험까지 더해졌다. 이 정도면 탄핵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설령 탄핵 국면이 오더라도 방어에 자신이 있을 것이다.
보수 야당들은 총선 국면에서 탄핵론을 끊임없이 제기할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당연히 역공세를 취할 것이다. 이미 공방전은 시작됐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월 11일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 국가 비상 상황에도 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의 이런 태도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참으로 고색창연한 구시대적 선거 기획이다. 선거를 앞두고 극한 정쟁에 불을 지피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정치 퇴행”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전략기획자문위원장이기도 한 친문(재인)계 핵심 최재성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2월 13일 심재철 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탄핵론을 ‘탄핵 쿠데타’로 규정짓고 나섰다. “국정농단 세력이 채 심판을 받기도 전에 도리어 탄핵 추진을 공언하니 놀랍고 공포스럽다.” “국정 중단 탄핵 쿠데타가 시도되고 있다.”
盧 때는 공소장 공개가 사법개혁
2005년 1월 21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민주당 역시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역공을 취하되 저강도로, 반박보다는 해명 위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최근 구설에 오른 이해찬 대표가 발언을 자제하고, 이인영 원내대표가 보수 야당의 탄핵론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런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적 판단이다. 누가 돌발행동으로 역풍을 유발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최재성 의원의 반박도 다소 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추미애 장관의 행보는 어떨까? 추 장관은 장관 임명 직후부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강공을 이어가고 있다. 검찰 직제 개편과 대규모 인사에서도 ‘윤석열 사단’ 해체에 방점을 뒀다.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수사팀도 실무진 정도만 상징적으로 남겼다. 새로 투입된 검찰 고위 간부들이 기소에 반대하면서 검찰총장에 대한 항명 파동이 불거지기도 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최근에는 공소장 비공개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수사와 기소까지 분리하겠다고 나섰다.
추 장관이 공소장 비공개 방침을 밝힌 직후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법무부가 규정, 즉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칙에 따라서 결정했고, 청와대는 그 사안에 대해 알고 있다.” 사전에 조율을 거쳤다는 의미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언급했다. “사전인지, 사후인지 밝히기 어렵다. 다만 상황은 정확히 알고 있다.” 사전이라면 사실상 지시를 내렸다는 뜻일 테고, 사후라면 최소한 묵인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검찰 고위직 인사 당시 검찰총장과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 추 장관은 이렇게 언급했다.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추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수사권은 검찰에 있지만 인사권은 장관과 대통령에게 있다.” 먼저 인사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한 윤 총장의 행동을 두고는 “인사 프로세스에 역행하는 것이다.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초법적인 권한과 지위를 누린 것이다.”
검찰 기소권은 대통령이 갖는 행정권의 일부다. 검찰이 대통령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한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거치면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기소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 온 결과가 현행 체제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공소장 공개를 사법개혁 차원에서 결정한 까닭이다. 그런데 정권이 역주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추미애 자기 정치, 총선에 악재 유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보단체인 ‘참여연대’와 ‘민변’조차 반대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2월 5일 논평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이 사건에 대해 판단할 기회를 제약하는 것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청와대 전직 주요 공직자가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건 관계인의 명예 및 사생활 보호나 피의사실 공표 우려가 국민의 알 권리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도 없다.”민변 역시 2월 12일 김호철 회장 명의의 공식 논평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법무부가 해당 사건이 갖는 무거움을 제대로 헤아렸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국민에게 정보를 제대로 알려야 하고, 수사나 재판 등에서 사안을 감추거나 진행에 관여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정권의 우군인 정의당조차 공소장 비공개가 “무리한 감추기 시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의 수사·기소 분리 방침 발표를 두고는 민주당 안에서조차 탄식이 흘러나올 정도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문제를 제기해 미래통합당을 공격할 호기가 왔는데, 이 이슈가 돌출했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검찰개혁 여론몰이를 이어가야 총선에 유리하리라 판단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는 추 장관이 당 대표 시절 드루킹 사건을 고발해 김경수 경남지사를 비롯한 우군을 곤경에 처하게 만든 것과 같은 상황으로 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문재인 전 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려다 무산될 무렵 추미애 전 의원이 대안으로 거론된 적이 있다. 그때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이 한 말이 기억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소설이다.” 소설 같은 일을 문재인 대통령이 자기 손으로 현실로 만들었다. 추 장관을 선택한 것은 결국 문 대통령이다. 추 장관이 자기 정치로 총선판에 악재를 유발하더라도 부담을 떠안아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신동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