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제약업계, CSR 날개 달고 해외 진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3-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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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요 제약사 15개 모여 ‘제약바이오CSR연구회’ 결성

    • CSR 잘해야 글로벌 경쟁력 생긴다

    • 기부·자선활동 넘어 환경·사회·지배구조(ESG)까지

    • 다국적 제약사에도 문호 개방, 국내 제약산업 성장 계기 될 것

    제약바이오CSR연구회 오세권 회장(오른쪽)과 김준형 총무. [김도균 객원기자]

    제약바이오CSR연구회 오세권 회장(오른쪽)과 김준형 총무. [김도균 객원기자]

    다국적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1월 ‘새로운 지속가능성 약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제품 생산 및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과 물 사용량, 쓰레기 양 등을 각각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업 마이크로소프트도 연초,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마이너스’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기업 운영 과정에서 배출하는 탄소보다 더 많은 탄소를 지구 대기에서 없애겠다는 의미다. 

    과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사회공헌활동’의 다른 이름 정도로 여겨졌다. 최근에는 다르다. 해당 기업의 환경(Environmental) 및 사회(Social) 측면과 지배구조(Governance) 등을 포괄하는 용어로 쓰인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1월, 앞으로 투자 대상을 선택할 때 기업의 ESG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화석연료 관련 매출이 전체 매출의 25%를 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유럽연합, ESG 공시 의무화

    일동제약 임직원은 지난해 2월 아프리카 케냐 무하카 지역을 찾아 의료봉사를 했다. 일동제약 구성원 94%는 월급의 최대 0.5%를 정기 기부하는 ‘나누미’ 활동도 펼치고 있다(왼쪽). 한미약품 임직원은 1981년부터 꾸준히 헌혈을 실천해 지난해 대한적십자사 회장 표창을 받았다. [일동제약 제공, 한미약품 제공]

    일동제약 임직원은 지난해 2월 아프리카 케냐 무하카 지역을 찾아 의료봉사를 했다. 일동제약 구성원 94%는 월급의 최대 0.5%를 정기 기부하는 ‘나누미’ 활동도 펼치고 있다(왼쪽). 한미약품 임직원은 1981년부터 꾸준히 헌혈을 실천해 지난해 대한적십자사 회장 표창을 받았다. [일동제약 제공, 한미약품 제공]

    우리나라 주요 제약기업이 최근 공동으로 ‘제약바이오CSR연구회’(CSR연구회)를 구성한 건 이런 달라진 세계 흐름을 연구하고 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다. 1월 출범한 CSR연구회 오세권 회장(43·한미약품 CSR팀 팀장), 김준형 총무(37·일동홀딩스 CSR팀 과장)를 만나 조직 이유와 활동계획, 향후 목표 등에 대해 들었다. 

    -제약업계가 CSR 관련 기구를 만든 이유가 있나. 

    오세권: “제약산업은 의약품 개발 및 생산으로 인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본질적으로 CSR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각 사별로 사회공헌활동을 꾸준히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진 국제 환경에는 잘 대응하지 못한 면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오세권: “유럽연합(EU)이 2018년부터 500인 이상 고용 기업의 ESG 공시를 의무화했다. 이제 환경, 사회, 지배구조 이슈를 잘 관리하지 못하는 회사는 유럽 진출이 어려워진다. 투자 유치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블랙록뿐 아니라 세계 주요 자산운용사 상당수가 투자기업 선정 과정에서 ESG를 중요하게 본다. 이는 국내 제약업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약 2200조 규모의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제약산업이 성장하려면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다. 더 늦기 전에 CSR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이에 공감한 각 제약사 CSR 담당자들이 2년쯤 준비해 최근 공식 기구를 만들었다.” 

    - 뜻을 같이한 회사는 어디어디인가. 

    김준형: “국내 제약사 가운데 CSR 전담팀을 둔 곳은 동아제약, 유한양행, 일동홀딩스, 한미약품 4개다. 이들을 비롯해 녹십자, 대웅제약, 보령제약, 종근당 등 국내 주요 제약 기업 15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최근 몇몇 다국적제약사 쪽에서도 연락이 온다. 머잖아 참여 기업이 나올 것 같다. CSR연구회는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모든 제약업체에 열려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회사가 함께할 거라고 본다.”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오세권: “일단은 제약업계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CSR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힘쓸 생각이다. 2010년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만든 기준(‘ISO 26000’)을 보면 CSR의 핵심 주제는 모두 7개다. △지배구조 △인권 △노동 관행 △환경 △공정운영 관행(반부패 등)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와 발전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 활동 거의 전부가 CSR과 연결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많은 이가 ‘CSR=자선활동’ 또는 ‘CSR=기부’ 정도로 여긴다. 이를 바꿔야 CSR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연구개발, 고용 창출도 CSR

    -오 회장이 몸담고 있는 한미약품의 CSR은 좀 다른가. 

    오세권:
    “2017년부터 국내 제약기업 중 유일하게 CSR보고서를 내고 있다. 연구개발(R&D), 일자리 창출, 윤리·준법·인권경영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성과를 소개한다. 최근 보고서에는 전년에 비해 폐기물 재활용률이 24% 상승하고, 폐기물 배출량은 18% 줄었다는 내용도 담았다.” 

    한미약품 홈페이지 CSR 코너에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실시한 ESG 평가 등급도 공개돼 있다. 2017년 환경(B), 사회(B+), 지배구조(C)를 종합해 ‘C’등급을 받은 한미약품은 이듬해 모든 분야 평가가 개선돼 ‘B+’ 등급을 기록했다. 김준형 과장은 이에 대해 “지금 단계에서는 개별 기업이 ESG를 신경 쓰고 관련 지표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했다. 

    “최근 국민연금이 ESG 평가에 기반을 둔 책임투자 확대를 선언하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ESG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제약사 상당수는 그 내용조차 잘 모른다. 관련 예산은커녕 담당자도 따로 두기 힘든 상황에서 ESG 평가를 받는 것 또한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를 개선하고자 CSR연구회에 ‘ESG 분과’를 만들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각 기업이 자가 진단을 해볼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 과장의 설명이다. CSR연구회는 또 국내 제약산업이 시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각 회원사가 진행하는 사회공헌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동 봉사활동도 진행할 방침이다.

    ‘국민 산업’의 사회적 책임

    -지금까지 CSR은 기업이 잘못을 저질러 사회적 눈총을 받을 때 이를 돌파하는 수단으로 쓰인 면도 있지 않나. 

    오세권: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어디 거액을 기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또 뭘 잘못해서 저러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제약사들은 의약품 기부를 비롯한 각종 사회공헌활동을 하면서도 괜한 오해를 살까봐 드러내놓고 알리지 않곤 했다. 이번에 CSR연구회를 만들며 이런 풍토를 바꿔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회원사의 사회공헌활동을 소개하는 백서 또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좀 더 시민 가까이로 다가가겠다. 또 공동으로 다양한 봉사활동도 진행할 생각이다. 

    나는 제약산업을 국민산업이라고 생각한다.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 시장을 지배하면 약품 품절이나 가격 담합 등의 상황이 생길 때 정부가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그러면 국민 건강에 큰 위협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제약업계가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체계적인 CSR을 통해 국민의 응원을 얻고, 해외 진출 교두보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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