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이어진 약 3km 도로 구간에 자가용 운행을 전면 금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길에는 버스, 택시만 통행하게 하는 대신 차도와 안전거리를 확보한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보도를 넓힌다면?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붐비는 도로에서 바로 이런 실험을 시작했다. 사람이 쾌적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그 실험 현장에 다녀왔다.
자가용 운행이 금지된 샌프란시스코 마켓스트리트를 ‘도시의 명물’ 전차가 달리는 모습. 마켓스트리트와 연결된 도로에서 오는 자가용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형광색 조끼를 입은 도시교통국 직원이 통제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자전거연합 회원들이 자가용 없는 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다..
1월 29일 오전 11시 40분, 돌비연구소 본사 앞을 가봤다. 마켓스트리트와 교차하는 일방통행 도로인 9번가에서 오던 차가 마켓스트리트 쪽으로 우회전하려고 교차로에서 깜빡이를 켜고 있었다. 그러자 차량 통행을 안내하려고 현장에 있던 SFMTA 직원이 다가가 제지했다.
“여기서 우회전 안 됩니다. 직진하세요. 이제 마켓스트리트에 자가용 못 다녀요.”
“아니, 언제부터 이랬어요?”
“오늘부터요!”
운전자는 깜빡이를 끄고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10여 분을 지켜봤다. 그사이 차 석 대가 우회전을 시도하다 같은 안내를 받고 직진했다. 운전자들이 딱히 항의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지난해 보행자 18명 숨진 도로
지나가는 차가 보이지 않는 마켓스트리트 버스 정류장에서 승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마켓스트리트에서 전동스쿠터를 타고 있는 남성.
이를 위반하면 응분의 처벌이 뒤따른다. 샌프란시스코 경찰과 SFMTA에 따르면, 자가용 운행이 금지된 구간에서 자가용을 몰다가 걸리면 벌금 238달러에 벌점 1점을 물린다. 사실 주말이나 공휴일에 번화가 도로 통행을 제한하는 정책은 그동안 여러 나라, 도시에서 펴왔다. 하지만 주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도로의 자가용 통행을 상시적으로 금지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고 급진적이다.
샌프란시스코가 이런 프로젝트를 시행하게 된 건 ‘차가 아니라 사람이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도로에서, 나아가 도시 전체에서 굴러다니는 차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 해마다 샌프란시스코 도로에서 일어나는 보행자 사고가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SFMTA 자료를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마켓스트리트 구간에서 일어난 인명피해 사고는 123건에 달한다. 2014년 이후 매년 평균 100건 이상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4건 중 3건에서 보행자나 자전거를 탄 사람이 다쳤다. 지역 시민단체 ‘WalkSF’에 따르면 2019년에도 같은 구역에서 18명의 보행자가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샌프란시스코는 마켓스트리트에서 자가용 운행을 금지했지만 차단벽을 설치하진 않았다. 대신 신문 방송을 통해 알리고 현장에서 SFMTA 직원과 경찰이 운행을 통제했다. 그러나 첫날이어서 그런지 금지된 도로를 달리는 자가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단속하는지 궁금해 확인해 보기로 했다.
돌비연구소에서 50m 정도 떨어진 교차로로 이동했다. SFMTA 직원이 다른 도로에서 마켓스트리트로 진입하려는 자가용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진 방향에서 들어오는 자가용은 막지 못했다. 왜 저렇게 달리게 두느냐고 묻자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위한 도시’의 조건
마켓스트리트 보도에 설치돼 있는 자전거 전광판. 사진 촬영 당일 그 시점까지 2241대의 자전거가 이 도로를 지나갔다고 적혀 있다.
근처에 있던 경찰관에게 다가가 자가용 운전자를 적발하면 벌금을 물리느냐고도 물어봤다.
“오늘은 일단 구두 경고만 할 겁니다. 아무래도 첫날이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는 벌금을 물리게 되겠죠.”
시내 주요 도로의 자가용 통행을 금지해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샌프란시스코의 목표는 아직 많은 여정을 남겨두고 있다. 차질 없이 추진되면 2025년 마무리된다. 예산은 6억400만 달러에 이른다. 2월 5일 환율로 계산하면 대략 7100억 원 수준. 보도를 넓히고, 신호체계를 개편하고, 가로등도 개선해야 한다. 자가용 운행 금지는 말 그대로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크게 볼 때 차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도시를 지향하는 샌프란시스코 도시 정책의 일부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해 1월부터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실내주차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규정을 폐지했다. 사람이 살 집을 지을 때 차를 위한 공간을 반드시 마련해야 할 의무를 없앤 것이다. 공동주택을 지을 경우 이전까지는 일정 규모 실내주차장을 확보해야 했지만 조례 개정으로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 덕에 주거 공간을 더 늘릴 수 있게 됐다. 이 또한 차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정책인 셈이다.
잠시 그 배경을 살펴보자. 샌프란시스코에서 건물을 신축할 때 실내주차장 확보 의무 규정이 생긴 건 1950년대다. 1973년 이후 의무 주차 공간을 축소하는 등의 개정이 진행됐지만 전면 폐지는 이번에 처음 시행된 것이다. 자가용 수를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해 교통체증을 완화할 뿐 아니라 건축비용을 줄여 집값을 낮추는 효과도 얻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아파트를 지을 때 주차장 대신 주거 공간을 늘리면 주거비용이 그만큼 낮아질 수 있다.
달라진 도시에 환호하는 사람들
마켓스트리트 자가용 통행 금지를 축하하려고 몰려나온 샌프란시스코자전거연합 회원들.
필자가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매번 빠지지 않고 지나치던 마켓스트리트. 수십 번은 오갔던 이 도로가 이렇게 한산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 순간, 저만치 앞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몰려왔다. 도로 위에 차가 줄어서 그런지 자전거도로가 무척이나 넓게 보였다. 그 길을 따라 얼핏 봐도 100대는 넘을 듯한 자전거가 끊임없이 달려왔다. 자전거에는 해시태그 마켓스트리트2020(#MARKETSTREET2020)라고 쓰인 깃발이 꽂혀 있었다. ‘와우’ 하고 함성을 지르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시민단체 샌프란시스코자전거연합(SF Bicycle Coalition) 소속이었다. 마켓스트리트에 자가용 운행이 금지된 걸 축하하러 나온 무리였다. 사진을 찍으니 자전거를 타던 한 남성이 브이(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했다.
자전거족이 우르르 지나가고 얼마 뒤 건너편 자전거도로에도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서너 명씩 지나갔다. 이제는 샌프란시스코의 단거리 이동수단이 된 전동스쿠터를 탄 남성도 보였다. 마침 도로에 버스, 택시 한 대 지나지 않아 전동스쿠터족 한 명이 도로를 전세 낸 듯했다.
샌프란시스코시청 옆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돌아가려고 마켓스트리트 트위터 본사 앞 보도를 걷던 중 2m가 훨씬 넘는 키다리 전광판을 만났다. 전광판엔 이날 하루 이곳을 지나간 자전거 수가 기록돼 있었다. 1월 29일 낮 12시 34분 현재 기록은 2245. 그 2245대의 자전거에 탄 사람들 모두가 안전한 도로를 달리며 환호했으리라. 전광판을 쳐다보는 필자 옆으론 믿기지 않게 한산한 도로를 보며 환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