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 씩 책 한 권을 고재석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내면은 별반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해 서열을 나누는 습관에 길들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위아래로 나누고 누군가의 위로 올라서서 아래를 ‘착취’하고자 하는, 조선 사대부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책은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구축된 ‘동아시아적 위계 구조’를 통해 우리 사회를 비추어 보고 있습니다. 흔히 유교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이라고 하죠. 나를 닦아 남을 교화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냉소적으로 표현컨대, ‘나를 수양해 앎의 수준을 높이면 나에겐 남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착취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조선은 본고장인 중국보다 더욱 유교 이념을 공고히 다진 나라지요. 그 유산은 대한민국에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나이와 학벌과 자본을 잣대 삼아 세상을 정의하고 신분을 대대손손 세습하려 합니다.
‘나와 내 자식은 부르주아(성안 사람)로 남겨야 한다’. 산업화 세대건 386세대건 조선 사람 모두가 마음속에 품은 뜻입니다. 특히 386세대는 세습을 위해 ‘자본’ 없이는 ‘학벌’을 얻을 수 없게 만들고 있지요. 아니, 이제는 권력 자체를 영구화하려는 모습도 엿보입니다. 반정(反正)으로 새 임금을 옹립한 공신들은 상대를 적폐로 몰아 멸문시키려는 듯합니다.
뭐, ‘백성’ 입장에서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밥만 먹을 수 있다면 누가 임금이건 신경 쓸 필요는 없죠. 그렇다고 상대방이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폐위돼 유배된 왕을 아직도 떠받들고 있는 그들에겐 폐족된 자신들의 복권만이 중요할 뿐, 정작 백성의 삶 따위에는 1의 관심도 두지 않고 있으니까요.
바꿔야 합니다. ‘공신’이든 ‘적폐’든 뒤엎고 ‘백성’ 아닌 ‘시민’으로 살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조선 대신 대한민국에서 살아야 합니다. ‘옛날’ 대신 ‘내일’을 얘기해야 합니다. ‘내일’을 되찾기 위해 ‘오늘’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제’를 산 산업화 세대와 ‘오늘’을 사는 386세대를 넘어, ‘내일’을 살기 위해 청년 세대가 일어서야 합니다. ‘지금’ 일어서지 않으면 당신들에게 ‘나중’은 없습니다. 4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