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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생 논객이 본 九旬 ‘신동아’의 현재적 의미

[창간 90주년] 선진국의 조건…지성인이 잡지에 실릴 글 쓰는 것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1983년생 논객이 본 九旬 ‘신동아’의 현재적 의미

  • ● 기획 단계부터 ‘오래 살아 있는 글’ 생각
    ● SNS에서 알 수 없고 通讀해야만 알게 되는 것
    ● 月 1회 한국 사회 전체 조망하는 지적 특권
    ● 2020년 이후 새로 나타난 필자들
    ● ‘옛 주사파’ 봉달호·민경우, 민노당 출신 나연준
    ● 조국 사태 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했던 담론
    ● 발행 주기 긴 매체는 권위 지닌 담론지 성격
    ● 우리의 ‘포린 어페어스’와 ‘포린 폴리시’ 필요
필자는 ‘신동아’에 ‘노정태의 뷰파인더’를 연재하고 있다. 다른 필자들과 달리 매주 원고를 쓴다. 한 주가 끝날 무렵 이슈들을 정리하고, 고민해 담당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낸다. 어떤 주제를 다루면 좋을지 간단한 상의한 후 늦어도 수요일까지는 원고를 마감한다. 편집부에서 받아서 편집하는 원고가 내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부의 논의 과정과 절차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접수된 원고는 편집을 거쳐 매주 일요일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2020년 9월 이후 벌써 1년 넘게 이어지는 매주의 작업 루틴이다.

무엇이 ‘오래 살아 있는 글’인가

이러한 루틴은 방금 뜬 뉴스 속보를 보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소감을 남기는 것과 전혀 다른 노력을 요구한다. 주말까지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시사 현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수요일 마감 이후에 사실관계가 달라진다 해도 글을 바꿀 필요가 없도록 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하루가 다르게 뉴스의 풍향이 바뀌고 엎어지는 나라라는 데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철옹성 같았던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장동 건으로 이렇게 큰 위기를 겪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비극적인 일이긴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 보는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권력형 성폭력 문제로 갑작스럽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줄은 또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하여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고, 그 여파로 국민의힘에 30대 당대표가 탄생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다. 그렇다 보니 원고 마감과 발행 사이에 시간 간격이 멀리 떨어져 있는 시사 칼럼을 쓴다는 건 대단히 아슬아슬한 일이다. 마치 짙은 안개가 자욱한 산속에 홀로 떨어져 어떻게든 길을 더듬어 찾아나가야 하는 것과 같다. 원고를 써서 보낸 후 발행될 때까지, 어지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소재를 찾아서 적절한 방식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마감과 발행 사이의 시간적 간극. 이는 필자가 쓰는 ‘뷰파인더’뿐 아니라 ‘신동아’에 실리는 모든 글의 필자와 기자들이 지니는 숙명이다.

그러나 세상일에는 모두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많은 경우 가장 큰 단점이 동시에 가장 큰 장점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동아’ 지면에 올라오는 글 역시 마찬가지다. 원고가 마감되는 시점과 발행되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짧게는 며칠, 길게는 열흘이 넘는 기간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한다.



이건 단지 글쓰기의 기술적 차원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글의 소재를 정하고, 방향성을 잡고, 기획하는 단계부터 ‘오래 살아 있는 글’을 생각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SNS를 뜨겁게 달구는 소재를 따라갔다가 이틀 뒤에 여론이 바뀌어 낭패를 보는 일을 겪지 않으려면, 시사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향해 깊숙이 찌르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월간지 通讀에서 찾는 지적 특권

전국 방방곡곡에 초고속 인터넷이 깔린 지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하나씩 들어 있는 스마트폰은 24시간 사람들을 인터넷에 연결해 주는 초소형 단말기다. 이제 독자들은 일간지마저 ‘어제의 뉴스’일 뿐이라며 ‘새 소식’이 아닌 ‘헌 소식’으로 취급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며칠 전에 쓴 글, 한 주나 두 주 전에 쓴 글을 읽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있다. 오히려 발행 주기가 길기 때문에 갖는 독특한 가치가 있다. 앞서 설명했듯, 더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글쓰기가 갖는 독특한 힘이 있는 것이다. 언론의 역사가 긴 나라와 문화권에서는 이미 널리 퍼진 상식이다. 일간지는 인터넷과 속보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지만, 오히려 발행 주기가 더 긴 매체들은 특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필자가 이 지면에서도 곧잘 인용한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대표 사례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시간으로 매주 목요일 밤에서 금요일 새벽 사이에 인터넷으로 기사 업데이트를 완료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요일 저녁까지는 원고가 모두 들어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웹으로 올라올 기사를 편집하면서 동시에 지면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쇄된 잡지는 주말 이전에 발송을 시작하지만 대체로 다음 주 초에 서점과 신문 가판 등으로 배본된다. ‘이코노미스트’는 태생적으로 ‘며칠 전의 뉴스’를 보도하는 매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그 단점을 장점으로 역이용하고 있다. 잡지를 펼치면 지난 한 주간 전 세계에서 벌어진 모든 소식을 압축한 ‘The World This Week’가 보인다. 정치에 두 페이지, 경제에 한 페이지나 두 페이지를 할애하는데, 다른 매체를 안 보더라도 그 세 쪽만 읽으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대략적으로나마 빠짐없이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요약 정리는 해당 호에 실린 기사에 대한 길잡이 역할도 한다. ‘이 소식이 더 궁금하면 본문 몇 쪽을 보시오’라는 취지의 안내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며칠 느린 대신 한 주의 소식을 총체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탁월한 구성이다.

‘신동아’도 마찬가지다. 필자의 글을 인터넷으로만 보신 분들이라면 서점에서 ‘신동아’ 최신호를 한 부 구입해,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해 보시기를 권한다. 물론 ‘이코노미스트’처럼 전 세계의 소식을 넓고도 깊게 다루는 경지에는 못 미친다. 애초에 염두에 두는 독자층이 다르기도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달 ‘신동아’를 통째로 읽는 것은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뉴스의 미로에서 클릭하며 길을 잃는 것과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SNS의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뉴스인지 개별적인 사용자의 코멘트와 감정적 반응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휩쓸리는 것과는 더더욱 비교할 수 없다. 매달 한 권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 하루나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 단위로 세상을 바라보고 뉴스를 기획하며 글을 쓰는 이들의 노고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신동아’는 한 달에 한 번, 한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체적으로 조망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건 종이에 인쇄된 ‘신동아’를, 정독하지 않더라도 훌훌 넘겨서라도 보는 사람만 맛볼 수 있는 지적 특권이다.

‘신동아’의 주요 필자들이 지난해 12월 7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모였다. 왼쪽부터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 봉달호 편의점주. [지호영 기자]

‘신동아’의 주요 필자들이 지난해 12월 7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모였다. 왼쪽부터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 봉달호 편의점주. [지호영 기자]

‘내로남불’의 담론적 기원 찾기

이렇게 긴 호흡으로 만드는 잡지이다 보니 그 속에 실리는 원고도 다른 매체와는 사뭇 다르다. 필자가 쓰는 글을 스스로 칭찬하는 민망한 행동을 하려는 게 아니다. ‘신동아’를 꾸준히 봐온 독자라면 다들 알고 있을, 2020년 이후 새롭게 나타난 필자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담론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물론 여러 갈래가 있지만, 한마디로 ‘전대협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드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 몸을 담았거나 대단한 운동 경력이 있거나 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연령대이거나 사고방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2021년의 우리는 이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전혀 놀라지 않으며, 오히려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식’이 퍼진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동아’ 지면을 통해 몇몇 필자가 목청 높여 운동권적 사고방식과 문재인 정권의 관계를 지목하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세상의 인식이 달라졌다. 주사파(주체사상파) 지하조직 출신으로 이후 통일운동을 ‘찐하게’ 하다가 생활인의 길을 걷고 있는 편의점주 봉달호(필명),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사무처장 출신의 학원 원장 민경우, 민주노동당 활동을 뒤로하고 호남과 진보의 정치적 타락을 규탄하는 역사연구가 나연준의 활약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문재인 정권의 뇌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은 모두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며 세상과 소통해 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용감한 내부 고발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은 ‘신동아’라는 매체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시사 문제를 다루면서도 담론적인 깊이를 확보할 수 있는 지면, 그것이 조국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했다는 소리다. 조국 사태는 단지 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특정 세대와 계층이 지니고 있는 집단의식의 삐뚤어진 기원을 직시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내로남불’ 같은 표현을 써가며 기득권이 된 왕년의 운동권을 비웃기는 쉽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됐는지, 왜 여전히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지, 이런 점에 대해 유의미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후딱 써서 SNS에 올린 후 ‘따봉’을 긁어내는 그런 식의 글쓰기로는 그와 같은 깊이에 도달할 수 없다. 며칠 뒤에 읽어도 유효한 글, 몇 달이 지나도 의미가 있는 글, 그런 것을 써야 한다고 처음부터 작정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신동아’가 시사 월간지로서 지니는 단점은 이렇듯 ‘신동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 돼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루살이가 아닌 글이 필요한 까닭

발행 주기가 긴 매체는 대체로 권위를 지니는 담론지 성격을 지닌다. 미국을 대표하는 양대 국제정치 잡지인 ‘포린 어페어스’와 ‘포린 폴리시’를 떠올려보자. 미국의 외교관 조지 캐넌이 쓴 ‘긴 전문(The Long Telegram)’은 냉전시대 미국의 대전략이 됐는데, 그 내용은 캐넌 본인에 의해 수정 증보돼 ‘포린 어페어스’에 실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포린 어페어스’의 지면을 통해 민주주의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포린 폴리시’가 매년 선정하는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명’의 명단은 한 해의 이슈와 지적 담론을 추적하는 가장 믿음직한 바로미터 중 하나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리는 ‘포린 어페어스’ 2021년 11/12월호 기고문을 통해 “대만 함락은 민주주의의 대재앙이며 그것을 막기 위해 무슨 일이건 하겠다”고 천명했다. 셀 수 없이 길게 이어지는 사례 중 일부다.

이 모든 묵직한 담론이 두 달에 한 번 발행되는 국제 시사 격월간지에 실린다. 앞서 우리가 한국의 ‘신동아’를 두고 이야기한 모든 원리가 ‘포린 어페어스’와 ‘포린 폴리시’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내일 당장 뒤집히지 않을 이야기. 몇 주 후에도 유용할 논의. 몇 달, 혹은 몇 년 후를 내다보는 분석과 전망이 아니면 월간지나 격월간지의 발행 주기가 주는 한계를 이겨낼 수가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담론 중 적잖은 것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고, 그중 일부는 실제로 세상을 크게 뒤흔들기도 한다.

우리 현실은 어떨까. 앞서 ‘신동아’를 통해 이루어진 2020년 이후의 성공 사례를 거론하긴 했지만,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아쉬울 뿐이다. 정치인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정치인이 오직 SNS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정치인과 논객들은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오늘 썼지만 며칠 뒤에 사람들이 읽어도 좋은 글, 몇 달 뒤에도 유의미한 담론, 우리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과도한 기대일까.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이 글의 말미에도 붙게 될 필자의 약력 중 하나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부득이하게 생략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꼭 넣는 약력이다. 왜일까?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이 폐간된 이후 쭉 자유기고가로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포린 폴리시’의 한국어판을 만들면서 필자가 실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떤 잡지의 편집장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 잡지에 실리는 모든 원고를 읽고 또 읽는다는 말과 같다. 또 잡지를 둘러싼 외부의 맥락도 계속 고려해야 한다. 제작비라든지, 외주 디자이너의 섭외 및 의사소통이라든지, 인쇄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상하고 회피하는 방법 등, 직업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것 투성이다.

2000년 11월 25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오른쪽)이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접견하는 모습. 두 사람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 지면을 통해 민주주의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동아DB]

2000년 11월 25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오른쪽)이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접견하는 모습. 두 사람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 지면을 통해 민주주의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동아DB]

한국의 ‘포린 어페어스’와 ‘포린 폴리시’

하지만 필자가 배운 건 잡지를 만드는 실무 기술뿐만이 아니었다. ‘포린 폴리시’의 한국어판을 만들었던 2년이 안 되는 기간에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을 배웠다.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경영하는가?’

미국은 자타 공인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지닌 나라다. 그 군사력의 바탕에는 다른 나라들을 훌쩍 앞지르는 과학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대서양,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으며 여타 강대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지는 않은 데다가 넓은 국토에 석유, 천연가스, 기타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 심지어 미국의 중부 대평원은 세계적인 곡창지대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미국의 힘을 그런 물질적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이 볼 때는 가당찮게 들리겠지만,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을 만들었던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다. 미국은 그 나라의 지성인들이 두 달 간격으로 나오는 잡지에 실릴 수 있는 글을 읽고 쓰는 나라다. 두 달 후에도 유의미한 글을 쓰기 위해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고심하는 수많은 엘리트가 있는 한,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는 앞으로도 굳건할 것이다.

지난 90년간 ‘신동아’는 한국의 대표적인 시사 월간지로서 그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매체였으며, 군사독재 시절에는 신문 지면에 담아내지 못하는 행간과 진실을 풀어내기 위해 기자들이 찾는 ‘대나무 숲’으로 기능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는 후진국이 아닌 스스로를 발견하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 우리만의 답을 찾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지적 성장을 해야 할 때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의 ‘포린 어페어스’와 ‘포린 폴리시’가 필요하다. ‘신동아’의 지나온 90년을 축하하며 다가올 90년을 기대하는 이유다.

#조국사태 #시사월간지 #포린폴리시 #포린어페이스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2021년 11월호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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