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호

기업 경영의 거인을 사상가로 다시 보다 [책 속으로]

경제사상가 이건희 풍부한 기초 자료 바탕으로 직조한 ‘거인’의 삶과 사상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1-10-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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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문명 지음, 동아일보사, 400쪽, 2만4000원

    허문명 지음, 동아일보사, 400쪽, 2만4000원

    “전통 제조업에서 첨단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을 이끌며 지구촌에서 싸구려 취급을 받던 ‘메이드 인 코리아’를 초일류 반열에 올려놓은 위대한 경영자 이건희 회장의 삶과 생각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허문명 동아일보 기자가 쓴 ‘경제사상가 이건희’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10월 25일 1주기를 맞는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 능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가 회장으로 취임한 1987년, 삼성전자는 국내 3위 기업에 불과했다. 해외에서는 더더욱 존재감이 없었다. 이 회장은 그 회사를 진두지휘해 20세기 말 전자업계 세계 최고이던 ‘소니’를 넘어서게 했다. 21세기 초엔 애플과 ‘맞짱’ 뜨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과 기업인들이 ‘세계 일류 DNA’를 갖게 만든 것 또한 이 회장의 ‘업적’으로 손꼽힌다. 저자는 이 탁월한 성취의 바탕에 이 회장의 ‘삶과 생각’이 있다고 본다. 이 회장이 생전에 남긴 다양한 육성 자료와 공개 및 미공개 인터뷰 내용, 주변인 증언 등을 길잡이 삼아 그 실체를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의 큰 줄기다.

    저자는 ‘인간 이건희’를 기업인 범주에 두지 않는다. 남다른 통찰을 갖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타 ‘이건희 평전’과 분명히 구별된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하던 모습. 삼성은 이후 ‘질적 대전환’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제공]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하던 모습. 삼성은 이후 ‘질적 대전환’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생전 말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와 가까이서 일한 ‘삼성맨’들은 하나같이 회장에 대해 “경청의 달인이었다.”고 평한다. 그럼에도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라는 구호성 멘트를 제시한 데서 알 수 있듯 “사물이나 상황의 본질을 짧은 말로 축약해 사람들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뛰어났다.” 저자는 이 회장 곁에서 그 발언들을 듣고 곱씹어 생각했을 많은 인물 인터뷰를 통해 고인이 남긴 ‘삶과 생각’을 입체적으로 직조해 낸다.

    그 과정에서 길어 올린 통찰들, “삶의 질이 바뀌어야 제품의 질이 바뀐다” “과거에 기업을 경영하려면 돈, 사람, 설비, 기술이 필요했다. 지금은 시간이 새로운 경영 자원으로 부각됐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기업 경영의 요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맥가이버처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발상이다” 등의 메시지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6년 9월 미국 뉴욕 타임워너센터에 있는 ‘삼성 체험관’을 둘러보고 있다. 이 회장 재임기 삼성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 일류 브랜드로 성장했다.  [삼성전자 제공]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6년 9월 미국 뉴욕 타임워너센터에 있는 ‘삼성 체험관’을 둘러보고 있다. 이 회장 재임기 삼성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 일류 브랜드로 성장했다. [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이 평소 경영진에게 구체적 성과를 내도록 ‘닦달’하지 않았다는 것, 그보다는 ‘업(業)의 개념’ 같은 창의적 조어를 일종의 ‘화두’로 던짐으로써 직원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가도록 이끌었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꼼꼼히 취재한 이 회장 기초 자료를 독자 앞에 풍성히 제시한다. 그 덕에 ‘거인’이 가졌던 미래 비전과 기업가 정신을 그의 목소리로 생생히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앞으로 반도체와 스포츠 분야 등에서 보여준 이 회장의 업적을 추가로 정리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향후 역사적, 인문학적 깊이를 더해 고인의 삶을 다각적으로 조망하는 평전 작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독자로서 즐거운 기대를 품고 기다릴 생각이다.

    #이건희리더십 #이건희1주기 #이건희경영론 #허문명기자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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