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캠프, 구조조정 앞둔 회사의 모습”
“15년 전 설치던 사람이 캠프 들어와…”
“실무진과 후보가 소통할 기회 적어”
“尹, 너그러운 성격이라 쳐내지 못해”
정치 입문 동시에 권력 중심부, 성공 도취
“차라리 김종인이 캠프 와서 싹 구조조정 해버려야”
특수부 검사 기질, ‘짬뽕’ 조직에는 안 맞아
파벌 달라도 정비 필요하다는 데 의견 일치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외교안보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은 박근혜와 다른데…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캠프 종합상활실장에서 물러난 지난 9월 말,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 인근에서 만난 윤 전 총장 캠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윤 전 총장 캠프는 이마빌딩 9층에 입주해 있다. 이 관계자는 캠프에서 장 의원에게 우호적인 측으로 분류된다. 장 의원은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등 사실상 캠프 실무를 책임지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아들의 무면허 운전 및 경찰관 폭행 사건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김 전 위원장과 장 의원은 구원(舊怨)이 있다. 두 사람은 지난 4월 서로를 “홍준표 꼬붕(김종인의 말)”, “노태우 꼬붕(장제원의 말)”이라 표현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캠프 내부에서도 장 의원에 우호적인 쪽은 대체로 김 전 위원장에 대한 호감도가 낮았다. 윤 전 총장이 김 전 위원장에게 빨리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보는 쪽은 장 의원의 영향력이 커지는 데 비판적이었다.
한데 앞선 관계자의 말에서 드러나듯, 장 의원과 가깝던 측에서도 ‘김종인 등판론’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기류가 형성됐다. ‘여의도 차르’라고 불리는 김 전 위원장이라도 와서 장악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보는 거다. 한 래퍼(장 의원의 아들 용준 씨)의 일탈이 예기치 않은 나비효과로 이어진 셈이다.
자세히 보면 캠프 처지에서 뼈아픈 대목이 엿보인다. 파벌이 달라도 캠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데서 의견이 일치하는 모양새가 연출돼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온 데는 윤 전 총장 본인의 책임이 크다. 복수의 캠프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매주 열리는 회의에 불참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한 야권 인사는 “후보가 반드시 회의에 참석할 필요는 없다. 박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박 전 대통령은 개인적인 말실수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나. 윤 전 총장은 실수가 잦으니 캠프 실무진이 올리는 보고를 좀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전 총장과 실무진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윤 전 총장 캠프는 ‘매머드급’으로 평가받을 만큼 규모가 큰 편이다. 이와 관련 윤 전 총장 캠프 관계자는 “규모 탓이겠지만 군소 후보에 비하면 실무진과 후보가 직접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10월 초 윤 전 총장 손바닥에 적힌 ‘임금 왕(王)’자 논란에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후보와 대변인 간 메시지가 통일되지 않아 혼란이 가중했다. “주로 손가락 위주로 씻으신 것 같다”(10월 4일 김용남 대변인)는 해명은 외려 상황을 희화화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말았다.
10월 13일에는 윤 전 총장 스스로가 “이런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게 맞다”고 밝히며 논란을 자초했는데, 당내에서 “감정적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같은 달 19일 윤 전 총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말해 큰 파장을 낳았다. 후보가 논란 요소가 다분한 행보를 하고 캠프가 이를 “그런 취지가 아니다”라며 수습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부터), 홍준표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 유승민 전 의원 등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이 10월 15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1대1 맞수토론에 앞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스1]
“파리가 떼로 앉아 있는 게 훤히 보인다”
현안 보고 체계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9월 26일 열린 TV토론에서 윤 전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꺼낸 ‘종전선언’에 대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내놓은 담화문을 놓고 “못 들었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정무와 공보를 담당하는 인력만 십수 명에 달하는데, 제 기능을 100% 발휘하고 있지 못한 꼴이다.캠프의 태생부터 이런 문제가 예견됐다는 시각도 있다. 윤 전 총장 캠프에는 과거에 극렬히 대립한 친이계(親이명박계)와 친박계(親박근혜계)가 공존하고, 옛 안철수계와 황교안계까지 가세했다. 민주당의 뿌리 중 하나인 옛 DJ(김대중 전 대통령)계까지 참여했다. 확장성을 꾀하기 위해 세(勢)를 불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규합의 명분이 흐릿하다 보니 여러 파벌이 어색하게 함께하는 형태가 됐다.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구(舊)동교동계 인사들을 영입했을 때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역사적 화해’ 혹은 ‘동서화합’이라는 정치적 명분이 있었다. 반면 윤 전 총장 캠프가 앞세운 명분은 중도확장인데, 이것이 오롯이 ‘윤석열 브랜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마땅한 설계도 없이 지어진 덩치만 큰 가건물 꼴이다.
그래서인지 ‘파리 떼’ 논란은 중도·진보 성향 그룹이 특히 주목하는 윤 전 총장 캠프의 리스크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9월 13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권경애 변호사 등이 주도하는 ‘선후포럼(대선 이후를 생각하는 모임·SF포럼)’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윤 전 총장을 겨냥해 “파리 떼에 둘러싸여 5개월 동안 헤맸다”고 혹평했다. 이어 “15년 전에 설치던 사람이 캠프에 들어와 있다. 일반 국민이 보기에 ‘무슨 새로운 사람이냐’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윤 전 총장 지지를 선언한 진보 성향 법학자 신평 변호사(사법연수원 13기)는 10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캠프에 가담하지는 않았다”며 “윤 전 총장 캠프에도 파리가 떼로 앉아 있는 게 훤히 보인다”고 썼다. 신 변호사는 7월 이후 윤 전 총장과 두 차례 회동하면서 현안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윤 전 총장이 직접 캠프 합류를 제안했지만 외곽에서만 측면 지원을 하고 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했다.
“윤 전 총장이 정치초년생이다 보니 이런 걸(‘파리 떼’ 논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익 추구를 위해 캠프에 들어온 사람도 많이 있다. 윤 전 총장이 좀 더 용기와 결단력, 지혜를 발휘해 쳐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사실 윤 전 총장이 의외로 너그러운 사람이다. 너그럽고 모나지 않은 성격이다. 윤 전 총장이 배워나가는 과정이니까 조금 더 이 판의 생리를 알면 (윤 전 총장 내면에) 숨은 지도자로서의 단호한 결기가 나타나겠지.”
‘성공의 적은 성공’
캠프의 약점이 계속 노출될수록 윤 전 총장의 리더십에도 생채기가 난다. 캠프 내부에서는 파벌과 상관없이 이를 또렷이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 전 총장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지지율이 외려 독(毒)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 가건물로도 분양이 잘되니 혁신의 동력이 좀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비교적 초창기에 윤 전 총장 캠프에 합류한 핵심 관계자는 “차라리 1, 2차 경선에서 홍준표 의원에게 크게 패했다면 내부적으로 위기의식이라도 가졌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윤 전 총장 캠프)는 ‘정치인 윤석열’을 좋아해서 합류한 사람보다 온갖 군데로부터 이해관계 때문에 온 사람이 훨씬 많고 입김도 세다. 재능 있는 젊은 실무자도 많이 들어와 있는데, 지금처럼 해도 지지율이 유지되니 입김 센 사람들이 계속 큰소리치고 젊은 실무자들의 재능은 썩히고 있는 꼴이다.”
당내 안팎의 비판에 직면한 윤 전 총장 캠프는 뒤늦게나마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10월 17일에는 대구·경북(TK) 지역(대구 수성구 갑) 최다선(5선) 의원인 주호영 의원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공식 합류했다. 같은 달 24일에는 김태호·박진 의원과 심재철 전 의원, 유정복 전 인천시장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됐다. 중구난방이라 혹평받던 공보 조직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기존 5인 대변인 체제를 김병민 대변인 단독 체제로 바꿔 메시지 통로 일원화를 꾀했다. 나머지 김용남·이두아·윤희석 대변인은 공보특보로 자리를 옮겼다. 이상록 대변인은 홍보특보로 이동했다. 이전에 비하면 비교적 체계를 갖춘 셈이지만 궁극적 변화라고까지 보기는 어렵다.
“성공의 적은 성공”이라는 말이 있다. 윤 전 총장은 이미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른 채 정치에 입문했다.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대선 여론조사 당내 선두 자리를 꿰차면서 단숨에 권력 중심부에 섰다. 그의 곁에는 수십 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줄을 서면서 ‘친윤계’가 형성됐다는 표현도 나왔다. 정치 신인인데도 당을 뒤흔드는 세력과 위상을 갖게 된 셈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간의 성공 모델에 도취되기 쉬운 환경이다. 소통하기보다는 자기 중심적으로 정치 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커진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윤 전 총장이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 ‘어차피 후보가 된다’ ‘어차피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 말을 자유롭고 시원하게 해도 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여론 지지율이 유지되니 실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안 한다”고 꼬집었다.
특수부 검사의 대권 도전
윤 전 총장 특유의 기질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은 자신의 권한을 아래로 좀체 이양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속도전과 보안이 동시에 요구되는 특수부 검사에게는 적합한 기질이다. 하지만 팀워크를 맞춘 지 채 1년도 되지 않고, 무엇보다 각각의 정치적 뿌리가 달라 “짬뽕 같다”는 말까지 듣는 조직에서는 약점이 될 공산이 크다. 자칫 아랫사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들을 수 있어서다.윤 전 총장 캠프 사정에 밝은 한 야권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캠프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캠프에 컨트롤타워가 없는데, 이것은 캠프의 역할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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