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복간한 ‘신동아’와의 특별한 기억
창간호는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 알 수 있어
1964년 복간한 ‘신동아’ 보고 ‘한일협정’ 토론
전국 헌책방 돌며 느끼는 소소한 행복
평범한 가정집 지하의 비밀 서고
특색 있는 잡지 많이 나오길 기대
잡지 수집가 김효영 씨는 창간호 8000여 권을 비롯해 1만5000여 권의 서적을 수집했다.
잡지 수집가 김효영(76) 씨의 말이다. 김씨는 대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1만5000여 권의 서적을 모았다. 서적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잡지다. 수집한 창간호만 8000여 권에 달한다. 박봉의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잡지 수집에 들인 돈도 엄청나다. 스마트폰을 통해 대부분의 콘텐츠가 유통되는 오늘날, 김씨에게 종이로 된 잡지가 주는 의미를 묻고 싶었다.
‘신동아’ ‘사상계’ 두고 토론하던 대학생 시절
10월 8일 가을비가 내리던 날. 경기 성남시에 있는 김씨 자택을 방문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가정집과 다를 바 없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헌책방이나 작은 도서관이 연상되는 지하 공간이 나타난다. 14평(46㎡) 남짓 크기의 서고에는 그가 50년 넘게 모아온 1만여 권의 책이 이중삼중으로 꽂혀 있었다. 오래된 나무나 비에 젖은 흙에서나 맡을 수 있는 향기가 공기에 감돌았다. 김씨는 “리모델링 때문에 책을 좀 치워놓았는데도 이렇게 많다”고 웃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오늘처럼 습한 날에는 책이 상할 것 같다.
“20년 전 집을 지을 때 지하 서고 벽을 이중으로 만들었다. 환풍기와 제습기도 돌리고 가끔 난로도 켠다. 잘 보존하려고 애를 쓰는데 쉽지 않다. 공사가 끝나면 책을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한다.”
- 잡지를 무척 ‘사랑’하는 거 같다. 언제부터….
“초등학생 때 ‘학원’(1952년 11월 창간)이나 ‘새벗’(1952년 1월 창간)을 읽은 기억이 난다. 1964년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잡지를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 1964년, 그해는 ‘신동아’가 복간된 해이기도 하다.
“그해 9월 복간호가 나왔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두꺼운 전공 교재 위에 잡지 한 권을 얹어 들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복간한 신동아와 계간지 ‘사상계’가 큰 인기였다. 그걸 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 있었다. 잡지에 나온 내용을 두고 학생들끼리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내가 신입생 때는 한일협정 문제가 주요 화두였는데,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담이나 평론이 모두 잡지에 실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류주현 작가의 소설 ‘조선총독부’도 인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소설은 신동아 복간 후 3년간 연재됐다. 일제 치하에 살던 국민들이 겪은 핍박과 독립투사의 치열한 투쟁, 친일파 인사들의 횡포 등을 그린 대하 장편소설로 등장하는 인물만 1700명에 달한다. 김씨가 말을 이었다.
“‘조선총독부’에 이어 연재된 소설 ‘야호’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신동아는 당대에 정치나 사회 문제를 주로 다뤘지만 문학 작품도 많이 실었다. 독자들로부터 독후감을 받기도 했는데, 한번은 내가 보낸 글이 신동아에 뽑혔다. 내 독후감이 실린 잡지라고 생각하니 애정이 생기더라. 현재 갖고 있는 잡지 대부분은 창간호가 전부인데, 신동아는 특별하게 꾸준히 모았다. 합하면 420권 정도 될 거다.”
전국 헌책방 돌며 모은 창간호 8000여 권
잡지 수집가 김효영 씨는 “1960년대 대학생들은 ‘신동아’나 ‘사상계’에 나온 내용을 두고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창간호를 보면 만드는 데 참여한 이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첫 열매를 틔우기 위해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했을 것 아닌가. 물론 개중에는 억지로 쫓겨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책도 있다. 그런 건 보통 오래가지 못한다. 빨리 져버리는 꽃이 되는 거다. 창간호를 보다 보면 시대 상황도 알 수 있다.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편집 레이아웃이나 책 크기, 종이 질도 세월에 따라 달라진다.”
김씨가 모은 창간호는 모두 8000여 권에 달한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수집한다고 해도 22년이 걸린다.
- 아무나 할 일은 아닌 거 같다.
“전국에 안 가본 헌책방이 없다. 주말만 되면 서울 청계천에 있는 고서점 거리는 물론 인천, 수원, 대전까지 책을 찾으러 다녔다. 부산도 두어 번 갔더랬다. 그래도 구하기 어려운 책은 경매를 통해 수집했다.”
- 헌책방이 점점 사라지는데….
“예전에 자주 가던 책방이 많이 사라졌더라. 나도 요즘엔 인터넷 검색으로 책을 찾긴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이 운영하는 헌책방에 가면 주인들과 사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책 도사’인 주인이 손님 취향에 맞는 책도 추천해 준다. 개인적으로 새로 창간호가 들어왔다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대형 중고 서점에 가면 각자 검색해서 필요한 책만 사서 나오지 않나. 예전에 수집하며 느끼던 소소한 재미가 사라졌다(웃음).”
김씨가 전국의 헌책방을 돌며 수집한 서적은 잡지뿐은 아니다. 각기 다른 분야의 ‘100년사(史)’를 다룬 책 2000여 권도 그의 소중한 보물이다. 김씨는 “다니는 교회에서 100년사를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관련 자료를 찾던 중 다양한 분야를 다룬 ‘100년사’의 세계가 방대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수집한 ‘100년사’ 책 종류는 다양하다. 학교나 교회 역사를 다룬 책부터 ‘주조(酒造) 100년사’ ‘가요 100년사’ ‘포스터 100년사’ 같은 책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김씨는 “이 중에는 시중에 팔지 않는 책도 많다”고 말했다.
- 이런 책은 어떻게 구할 수 있나.
“다짜고짜 발행한 곳에 전화를 거는 거지 뭐(웃음). 당연히 그쪽에서는 의아해한다. 내가 교수나 도서관장도 아니지 않나. 물론 흔쾌히 보내주는 경우도 있고, 안 되면 또 헌책방을 도는 거다.”
“특색 있는 잡지 계속 나오길 기대”
2019년에는 50년 역사를 이어온 잡지 ‘샘터’가 폐간 위기를 맞으며 잡지 산업 위기가 가시화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잡지가 매년 창간호를 발행한다. 50년간 창간호를 수집해 온 김씨는 “종이 잡지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종이에는 특유의 질감과 향기가 있다. 후에 읽은 내용을 떠올릴 때도 그 감촉과 향으로 인해 기억도 잘 나고 다시 찾아보기도 쉽다. 스마트폰처럼 아무리 좋은 디지털 기기가 나와도 잡지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자기만의 특색을 가진 잡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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